오는 8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국가보고서 심의 예정
인권위, 별도 독립보고서 초안 공개… 시민사회 “구체성 떨어져”
시설 소규모화, 정신장애인 비자의입원에 인권위 소극적 권고만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시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작성한 2·3차 독립보고서 초안을 공개하고, 위원회에 제출하기 전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는 토론회가 열렸다. 인권위 독립보고서에 대한 일종의 ‘첨삭’이 진행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공통으로, 인권위 독립보고서 권고 내용의 구체성이 떨어지며 날카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시설 소규모화와 정신장애인 비자의입원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소극적인 권고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토론회 현장. 패널들이 앉아 있다. 사진 하민지
토론회 현장. 패널들이 앉아 있다. 사진 하민지

- 한국 정부, 오는 8월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두 번째 심의

한국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에 2008년 비준했다. 협약에 비준한 국가는 4년에 한 번씩 협약 이행 사항에 대한 국가보고서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제출한다.

2011년, 정부(보건복지부)는 1차 국가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했다. 위원회의 최종 견해가 나온 건 2014년이다. 위원회가 정부에 전달한 최초의 성적표였던 셈이다. 성적표는 엉망이었다. 당시 위원회는 총 66개 항에 걸쳐 정부가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에 2·3차 병합 국가보고서가 제출됐다. 이에 대한 위원회 심의는 오는 8월 진행될 예정이다. 1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가 나온 지 8년 만이다.

인권위는 정부가 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국내 기구로 지정된 곳이다. 따라서 정부가 제출하는 국가보고서와 별도로 ‘독립보고서’를 제출한다. 시민사회 또한 별도의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 위원회는 이 같은 보고서들을 모두 검토한 후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종 견해를 해당 국가에 전달한다.

발표 중인 안은자 인권위 장애인차별조사 1과 과장. 사진 하민지
발표 중인 안은자 인권위 장애인차별조사 1과 과장. 사진 하민지

- 산정특례 종료 후 대책 없는데… 국가보고에서 자화자찬 늘어놓은 한국 정부

인권위는 2014년 위원회의 1차 최종견해 권고 이후, 정부가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후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제도 도입 △교통약자법 개정(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특별교통수단 (광역)이동센터 운영) △장애인복지법 15조 개정(정신장애인 적용 제외 폐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협약 25조 마호(보험 제공 시 장애인 차별 금지) 유보 철회 △선택의정서 비준, 국무회의 통과 등을 언급하며 정부가 “장애인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점도 지적했다.

정부는 국가보고서에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후 시행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아래 종합조사)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 목표와 달리, 종합조사로 인해 활동지원 시간이 감소하거나 수급자격이 탈락된 장애인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활동지원 시간이 감소한 장애인에게 3년간 감소한 시간을 보전하는 ‘산정특례’를 적용했지만, 이마저도 7월부터 순차적으로 종료될 예정이다. 이에 장애계는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다며 크게 반발 중이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질병관리본부 브리핑 방송에서 수어·문자통역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일이 또 일어났다. 인권위는 “선별진료소, 이동지원, 자가격리 시 일상생활 지원 등 감염병 대응 전반에서 문제가 속출했다”고 언급했다. 특히 장애인거주시설, 정신병원 폐쇄병동 등에 감염자가 발생했을 경우 정부가 해당 시설을 완전히 봉쇄하는 ‘코호트 격리’를 진행해 시민사회의 큰 비판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원회는 2014년 1차 최종 견해에서, 한국의 대체의사결정제도인 ‘성년후견제도’에 우려를 표하고 조력의사결정으로 전환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의 법적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부는 위원회 권고를 따르지 않고 국가보고서에 “성년후견제도는 협약이 금지하는 차별이라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상 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한 것이다.

이에 인권위는 “현행 후견제도에서는 당사자의 의지와 선호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고, 당사자가 지원을 거부하고 지원 관계를 언제든 종료하거나 변경하기 힘들어서, 협약이 의미하는 조력의사결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협약에 부합하는 조력의사결정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시민사회 “시설 소규모화는 탈시설정책 아니다 명시해야”

정부는 국가보고서에 탈시설정책으로 “거주시설 소규모화”를 언급했다. 정부는 “거주시설 문제점을 개선하고 장애인이용시설이나 소규모 그룹홈 형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거주시설 운영법인이 탈시설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해 8월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로드맵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시민사회는 강력하게 비판했다. 시설 ‘폐쇄’가 아닌 ‘소규모화’는 결국 거주시설 운영정책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정부 탈시설로드맵에서 했던 권고를 그대로 가져와 독립보고서에도 “다양한 장애인과 긴밀히 협의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권고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권고다. 거주시설 소규모화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인권위 독립보고서를 향해 “너무 많은 관계자를 고려한 착한 보고서”라고 비판했다. 최한별 사무국장은 “인권위는 국제 인권 동향에 기반해 한국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짚어줘야 한다. 그러나 날카롭게 비판해야 할 부분을 뭉툭하게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또한 최 사무국장은 “시설의 요소를 갖춘 주거 공간은 어떤 형태이든 시설일 수밖에 없다. 협약 19조는 ‘좋은 시설’, ‘장애인을 위한 마을’ 따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도시와 공동체에서 모든 유형·정도의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위가 추상적 권고안을 제시해 탈시설 반대를 말하는 이들이 오독할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장애인과 협의하라는 것은 핵심을 비껴간 채 표피만을 건드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켓에 ‘국가의 무관심이 정신질환자를 죽였다. 국가는 감옥같은 강제입원이 초래한 살인을 속죄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피켓에 ‘국가의 무관심이 정신질환자를 죽였다. 국가는 감옥같은 강제입원이 초래한 살인을 속죄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협약은 비자의입원 제도 금지하는데 인권위는 “개선하라”

비자의입원에 대해서도 인권위와 시민사회계의 의견은 엇갈렸다.

정부는 국가보고서에 “비자의입원 조항 삭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신 비자의입원이 가능한 요건을 대폭 강화해, 입원이 필요한 자·타해 위험이 모두 있는 때에만 보호자 동의 및 정신건강전문의 진단에 의해 입원이 가능하게 했다”고 서술했다.

또한 정부는 “2018년 5월부터 국립정신병원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신규로 설치해 입원심사를, 시군구 정신건강심사위원회에서 입원연장심사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신질환의 초기 집중치료 및 조기퇴원을 유도했다”고 언급했다.

인권위는 “(준)사법기관이 심사하는 미국·유럽과 달리 두 입원심사기관 모두 의료인을 위원장으로 하는 의료적 합의체로, 입원심사기관이 가져야 할 독립성과 중립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면심사가 아닌 서면심사를 하며, 입원연장결정에 대해 개인에게 통지하거나 불복수단 등을 실제 고지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서술과 달리, 비자의입원된 환자 연간 7만 8천여 건의 입원심사 중 위원회 결정으로 퇴원시킨 비율은 1% 내외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설치했다는 입원심사기관이 제 기능과 역할을 못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위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와 정신건강심사위원회를 일원화해 준사법적 성격을 갖는 별도의 독립적 심사기관으로 설치 △심사위원에 법조인과 의료인 외에도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공익적 제삼자 포함 △심사는 대면심사를 원칙으로 수정 △심사결과는 당사자에게 직접 통지하고, 불복절차 마련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협약에서는 비자의입원, 강제치료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허용하는 법률은 폐지하라고 명시돼 있다.

권오용 사단법인 정신장애인인권연대 카미 대표이사는 이 같은 사항을 지적하며 “인권위 독립보고서에는 비자의 입원, 보호의무자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는 듯한 권고안이 기재돼 있다. 협약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내용에 유감을 표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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