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구제소송 제기한 장애인, 소송비용 1천만 원 부담 위기
민사소송법의 ‘패소자 부담주의’, 공익소송에도 예외 없어
“사회적 변화를 위한 공익소송 가로막는다, 위헌적” 

15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익소송 패소자 부담주의’ 헌법소원 및 제도개선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슬하
15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익소송 패소자 부담주의’ 헌법소원 및 제도개선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슬하

현재 우리나라는 공익소송에도 예외 없이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한다. 이런 ‘패소자 부담주의’의 근거가 되는 민사소송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청구됐다.

2019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ㄱ 씨와 ㄴ 씨는 ‘지하철 단차’ 문제를 제기하며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를 상대로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고, 소송비용으로 한 사람당 5백만 원씩 총 1천만 원을 공사에 물어내게 됐다.

ㄱ 씨와 ㄴ 씨는 현행 민사소송법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등 법률단체와 시민단체는 15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의 전향적인 결정을 촉구했다.

- 차별 피해 구제받으려면 ‘패가망신’ 각오해라?

지하철과 승강장의 단차로 전동휠체어 바퀴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지하철과 승강장의 단차로 전동휠체어 바퀴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ㄱ 씨는 2019년 4월 신촌역 지하철 승강장에서 휠체어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끼는 사고를 당했다. ㄴ 씨 역시 충무로역 지하철에 휠체어 바퀴가 끼어 휠체어에서 추락하는 일을 겪었다.

2019년 7월 두 사람은 서울 지하철을 관할하는 공사를 상대로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모두 기각됐다. 공사는 두 사람을 상대로 소송비용을 청구했다. 지난해 12월 사법보좌관은 두 사람에게 각각 500만 원씩 공사에 지급하라고 했다. 

지난 2월 위헌법률심판도 제청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됐다. 이에 이들은 ‘패소자 부담주의’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헌법소원에까지 나서게 됐다. 

2019년 차별구제소송 때부터 두 사람을 지원한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두 사람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려면 당장 월세 보증금을 빼야 한다”면서 차별의 피해자가 권리를 구제받으려다 과도한 소송비용을 떠안는 현실을 규탄했다.

조미연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조미연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 민사소송법 98조, 109조 ‘공익소송’ 특수성 고려 없어

민사소송법 제98조는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제109조는 변호사 보수를 소송비용에 산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소송에 패소하면 변호사 비용을 포함한 소송비용을 상대방 것까지 내야 한다. 이는 형사소송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송에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공익적 성격을 띠는 소송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계는 공익소송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해왔다. 

공익소송은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국가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을 말한다. 공익소송의 청구인은 불이익을 당한 개인인 경우가 많은 반면, 상대는 국가 혹은 공공기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ㄱ 씨와 ㄴ 씨 역시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또한 공익소송의 특성상 현 상황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패소 확률이 높다. 이런 공익소송의 특수성을 고려해 2020년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역시 ‘공익소송 패소당사자의 소송비용을 감면하는 규정을 마련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번 헌법소원을 대리한 최용문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이번 헌법소원을 대리한 최용문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이번 헌법소원을 대리한 최용문 민변 변호사는 “소송에서 패소한 당사자에게 일률적으로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하라고 하면, 공익소송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동시에 열악한 지위에 있는 당사자를 보호하지 않아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면서 현행 민사소송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해외의 경우, 공익소송이 사회변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해 패소자의 부담을 면해주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소송결과에 상관없이 소송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식이지만, 공익소송에 대해선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one-way fee shifting)’를 적용하고 있다.

즉, 공익소송에서 이기면 소송비용을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고, 지더라도 상대방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공익소송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패소자가 사법제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해외사례를 참고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달 8일 공익소송의 경우 패소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해주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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