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연대 출범 14주년 결의대회 열려… ‘부모연대가’ 최초 공개
윤석열 정부, 후퇴한 정책 발표에 부모 활동가들 분노
‘최중증’ 발달장애인 구분 어떻게? 새로운 등급제 부활 우려도

이정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정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아이가 태어나면 학교에 가고 의식주가 해결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우리에게 이를 보장해주는 국가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산 앞에 무너지는 삶을 살아갑니다. 온 힘을 다해 싸워도 부족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까지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에게 극복을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극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식은 자식의 삶을 살고,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장애는 계속 장애로 남을 것입니다.” (이정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회장, 전남지부장)

영하 10도의 한파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2003년, 장애인교육권 확보를 위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 중심으로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설립됐다. 이들은 장애인교육권 쟁취를 위해 전국 교육청 순회 투쟁을 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한 후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였다. 그 결과 2007년 5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됐다.

이듬해인 2008년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 장애인교육권연대를 전신으로 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가 출범한다. 부모연대는 이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등 발달장애인 자녀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원체계를 요구하며 싸워왔다.

올해로 출범 14주년을 맞이한 부모연대는 1일 오후 2시, 여의도 한국판 T4 철폐 농성장(이룸센터)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장애인부모연대가’가 최초 공개됐다. ‘장애인 부모 활동가’의 정체성으로 싸워온 지 14년이 되었지만 이들을 대표하는 노래 하나 없었던 것이다. 민중가수 이혜규 씨가 장애인부모연대가를 부르고 내려가자 사람들은 ‘앵콜’을 외치며 뜨겁게 환호했다. 몸이 얼어붙는 한파에 무대 아래에서 패딩을 챙겨입던 이혜규 씨는 다시 패딩을 벗고 은은한 청록코트를 입은 모습으로 무대 위에 올라 부모 활동가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이틀 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평생 돌봄 강화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날이 서 있던 현장은 ‘장애인부모연대가’로 단단한 결의를 다지는 자리로 전환됐다.

내 아이를 끌어안고 참세상을 깨달았다

오늘 내가 죽더라도 너희의 내일을 위해

낡은 세상 깨부수고 새 길을 간다

삭막한 대지에 눈물 꽃 피어 새벽을 열지니

부모연대 깃발 힘차게 하나 되어 선언한다

차별 없는 대동 세상 장애 해방 새 세상

- 장애인 부모연대가 (글 창작모임 오각 / 곡 김종환 / 노래 이혜규)

장애인부모연대가를 부르는 민중가수 이혜규 씨. 사진 강혜민
장애인부모연대가를 부르는 민중가수 이혜규 씨. 사진 강혜민
민중가수 이혜규 씨가 장애인부모연대가를 부르고 내려가자 사람들이 ‘앵콜’을 외치며 뜨겁게 환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민중가수 이혜규 씨가 장애인부모연대가를 부르고 내려가자 사람들이 ‘앵콜’을 외치며 뜨겁게 환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윤석열 정부, 후퇴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대책’ 발표

복지부는 지난 11월 29일, “발달장애인의 평생 돌봄을 강화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맞춤형 지원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의와 선정기준을 마련하고, 내년에 특화서비스를 개발, 하위법령 제정 등을 통해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를 2024년 6월까지 제공하겠다고 알렸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주간활동서비스 이용 시간을 하루 7.5시간에서 8시간으로 확대한다고 했다.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급여를 차감하는 문제도 내년에는 다소 완화된다. 주간활동서비스는 단축형(월 85시간), 기본형(월 125시간), 확장형(월 165시간)으로 나뉘는데, 현재는 기본형 이용 시엔 22시간, 확장형 이용 시엔 56시간을 활동지원급여에서 차감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기본형의 급여량 차감을 폐지하고, 확장형의 경우 차감 시간을 56시간에서 22시간으로 축소하겠다는 게 복지부의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확장형 시간은 현재 월 165시간(하루 7.5시간)에서 내년에는 월 176시간(하루 8시간)으로 늘어난다.

복지부는 보호자의 입원, 경조사 등 긴급상황 발생 시 최대 1주일 24시간 돌봄을 지원하는 긴급돌봄 시범사업도 내년 4월부터 실시한다. 이외에도 복지부는 △발달장애인 소득 보장 및 일자리 지원 강화 △장애 조기 개입 및 장애아동 지원서비스 확대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강화 △발달장애인 가족 지원 강화 △지원 인프라 등 추진체계 강화 계획을 밝혔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들이 주먹을 쥐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들이 주먹을 쥐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발달장애인 중 ‘최중증’ 구분 어떻게? 새로운 등급제 부활 우려

이에 대해 부모연대는 당일 즉각 반박자료를 냈다. 부모연대는 보도자료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지원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욕구와 권리에 기반한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부모연대는 “문재인 정부 때 발표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가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라는 단어로 축소되었고, 발달장애인 중에서 ‘최중증’을 구분하려는 새로운 등급제 부활 계획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지원체계에 대한 허구성도 지적했다. 부모연대는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서비스는 활동지원서비스가 거의 유일한데 하루 최대 제공시간은 16시간에 불과하다”면서 “이를 판정하는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는 의료적 모델에 기반해 있고, 발달장애 특성을 반영하지 않아 하루 16시간 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간활동서비스 차감에 대해서도 “올해보다 차감 시간은 줄어들지만 여전히 차감은 존재한다”면서 “활동지원서비스와 주간활동서비스는 목적 자체가 다른 제도인데, 서로 다른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한다는 이유로 차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출범 14주년을 맞이한 부모연대 깃발이 여의도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진 강혜민
출범 14주년을 맞이한 부모연대 깃발이 여의도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진 강혜민

부모연대는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인원이 이를 필요로 하는 인원보다 현저히 적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애초 제시한 목표치에도 미달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2018년 정부 합동으로 발표된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에서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발달장애인을 4만 5천여 명으로 추정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까지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대상 인원을 1만 7천 명으로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내년 이용인원은 올해와 같은 1만 명으로 동결됐다.

이 외에도 부모연대는 “새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긴급돌봄과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는 현재 연구 중이거나 평가 이후 확대하겠다는 계획으로 구체적이지 않고 세부적인 실체를 확인조차 하기 어렵다”면서 “윤석열 정부는 설익은 ‘복지정책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주거지원, 노동지원, 낮 활동 지원, 교육지원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올 한 해 ‘발달장애인 참사’ 잇따라 발생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현 정부 정책에 의하면 재가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회장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발달장애인 주거 대책이 없다. 결국 재가장애인은 주거 대책이 없으니 시설에 가야 한다”라면서 “낮시간 서비스만 있고 밤시간 대책도 없다. 밤시간 대책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설 문을 닫게 하려면 지역사회 주거 대책이 나오고 재가장애인이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탈시설에 대해선 20년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재가장애인에 대한 대책은 없다. 우리는 자녀들과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외쳤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부모연대가 출범하던 14년 전에 발달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었지, 그들의 권리는 없었다. 발달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그 엄혹한 시절을 같이 지나왔다”면서 “우리가 주장하고 있는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미래에 존재하고 있다. 미래의 권리를 현재의 권리로 만들어가는 이 과정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박현철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현철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 결의대회에는 발달장애인 활동가도 참석해 윤석열 정부의 발달장애인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더했다. 박현철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센터장은 부모와 함께 살다가 2년 전 자립했다. 그는 자신의 자립 과정에 관해 이야기하며 “발달장애인 ‘돌봄 지원’ 체계가 아닌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면서 발달장애인 정책의 전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부모연대는 올해 반지하 폭우 참사를 비롯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발달장애인 참사’ 등에 대해 언급하며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하면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이 반복됐지만, 그 누구도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이어 “부모가 먼저 떠나더라도 우리 자녀는 자신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면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결의했다.

장애인부모연대가를 따라 부르는 부모연대 활동가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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