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남매 둔 유방암 4기 어머니 김미하 씨
의왕시에 주거 대책 요구해도 “오래 살라는 말만”
부모연대, 경기도에 발달장애인 돌봄체계 마련 촉구

1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김미하 씨가 옆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복건우
1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김미하 씨가 옆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복건우

“제가 몇 달 더 살고 못 살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먼저 가더라도 발달장애가 있는 제 아이들은 지역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미하(59)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발달장애인 남매를 둔 김 씨는 지난해 8월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해 5월 추적 검사 이후 눕지도 앉지도 못할 정도의 극심한 통증으로 알게 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현재 간을 시작으로 척추, 갈비뼈, 다리, 허리, 림프절 등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있다. 오는 설 연휴에 3차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해야 하지만, 아이들이 홀로 남겨질 수도 있다는 공포와 막막함부터 앞선다.

길어야 6개월에서 1년 정도 살 수 있다는 시한부 판정이었다.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암 환자이지만, 가장 큰 걱정은 두 중증발달장애인(기존 장애 1급) 자녀의 돌봄 공백이다. 현재 그의 가정에는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다. 남편은 2021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딸 전지우(지적장애·가명·28) 씨는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센터가 끝나는 오후 6시부터는 김 씨가 딸의 나머지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나 김 씨의 몸이 나빠지며 자녀를 돌보는 게 사실상 어려워졌다. 숱한 고민 끝에 그는 지우 씨를 군포시에 있는 장애인 365쉼터에 보냈다. 앞서 의왕시로부터 임대주택 긴급 입소를 거부당한 데다, 의왕시에는 딸을 맡길 만한 쉼터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지우 씨는 집이 아닌 주간보호센터(주간)와 365쉼터(야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들 전태민(자폐성장애·가명·24) 씨는 월 150시간의 활동지원시간을 받았으나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22시간이 삭감되어 월 128시간(하루 4시간꼴)을 이용하고 있다. 최근 보호자 입원 등 긴급돌봄지원의 필요성을 인정받아 300시간을 추가로 받았다. 태민 씨에게는 총 428시간(하루 14시간꼴)의 활동지원시간이 나오지만, 여전히 하루 10시간은 김 씨가 집에서 아들을 돌봐야 한다.

중증발달장애인(기존 장애 1급) 아들 전태민(가명·위 사진 오른쪽) 씨와 딸 전지우(가명·사진 맨 아래) 씨가 어머니 김미하 씨와 함께 웃어 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미하 씨 제공
중증발달장애인(기존 장애 1급) 아들 전태민(가명·위 사진 오른쪽) 씨와 딸 전지우(가명·사진 맨 아래) 씨가 어머니 김미하 씨와 함께 웃어 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미하 씨 제공

지우 씨가 머무는 야간 쉼터와 태민 씨가 받고 있는 추가 활동지원시간은 각각 오는 1월, 3월 이용이 종료된다. 그 이후에 지우 씨가 의왕시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 김 씨는 말기 암 환자의 몸으로 두 자녀를 돌봐야 한다.

김 씨에게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녀가 시설에 가길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죽더라도 자녀가 지역사회에서 앞으로의 삶을 잘 꾸려갔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때그때 생기는 돌봄 공백을 채우는 방식이 아닌, 중증발달장애인이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 자녀가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내가 죽기 전에 아이들의 자립을 위한 개인별 지원계획을 갖추는 건 특혜가 아닌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겁니다.”

남매에게는 각자의 집이 필요하다. 두 사람 모두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 중증발달장애인으로, 두 활동지원사가 20평짜리 집으로 온다면 김 씨까지 총 다섯 사람이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해야 한다. 지우 씨가 태민 씨보다 낯선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쉼터에서 생활하는 지우 씨에게는 공공임대주택과 생활지원서비스를 결합한 장애인 지원주택이, 집에서 생활하는 태민 씨에게는 생활 전반에 걸쳐 주거지원을 제공하는 돌봄주거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이때 돌봄주거서비스는 활동지원서비스 외에 태민 씨처럼 집에서 살아가는 재가장애인의 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현재 경기도에는 없는 제도다. 김 씨는 중증발달장애인에게 이러한 주거지원서비스가 주어진다면 그의 자녀 역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 발달장애인과 가족, 사회 보호망 밖에서 ‘강요된 죽음’

김 씨의 사례를 접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경기지부는 지난 13일 경기도에 ‘발달장애인 주거 유지 지원대책 요구안’을 전달했다. 김 씨의 상황을 고려해 오는 3월까지 시급히 장애인 지원주택과 돌봄주거서비스를 시범운영하고, 당사자 필요에 따른 24시간 활동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2021년 기준 경기도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은 5만 7,000여 명으로 국내 발달장애인 인구(25만 명)의 20%가 넘는다. 앞서 경기도에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이 수차례 이어졌다. 지난해 3월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어머니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8살 발달장애 아들을 살해했다. 같은 해 6월 안산시에서는 20대 발달장애 형제를 홀로 키우던 60대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죽음의 연쇄는 국가 지원 없이 가족 돌봄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경기도는 즉각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그해 6월 발달장애인 주거지원 확대를 위해 24시간 통합돌봄, 자립생활 정착금 상향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추가 활동지원시간 외에는 어떠한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부모연대는 16일 오후 경기도청 북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지사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주거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16일 오후 경기도청 북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동연 경기도지사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주거유지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16일 오후 경기도청 북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동연 경기도지사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주거유지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마련하라니 “어머님이 오래 사셔야죠”

이날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연대 활동가 40여 명은 의왕시에 발달장애인·가족 위기 지원 전담체계 마련을 요구했다. 경기도에는 31개 시·군별 지원주택 및 돌봄주거서비스 공급계획을 수립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미범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여전히 장애가 있는 아이는 시설로 보내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진다”며 “정부는 한시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고 부모가 없어도 발달장애인 자녀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경기도는 2021년 이미 장애인 지원주택 조례를 제정한 광역도시”라며 “올 상반기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도내 자치구 절반 이상에 발달장애인 자녀를 위한 주거지원서비스와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김미하 씨는 김동연 지사에게 전하는 호소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치료받는 틈틈이 경기도와 의왕시에 두 아이를 위한 지원계획을 요청했지만 긴급 지원은커녕 ‘어머님이 오래 사시는 게 답’이라는 말만 들었다”며 “어떻게 발달장애인 자녀의 자립을 위한 지원체계보다 아픈 부모가 오래 사는 게 정답일 수 있느냐”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김 씨와 부모연대 활동가들은 김 지사에 거듭 만남을 요청하며 경기도 장애인자립지원과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지원대책 요구안을 설명하고, 경기도와 오는 2월 다시 만나기로 합의했다.

박범준 경기도지사 비서관은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요구안에 필요한 제도와 예산을 더 살펴봐야겠지만 어머님 건강을 고려해 2월 초까지 최대한 맞춰서 (면담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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