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 버스가 와도 알 수 없어
휠체어 이용자, 버스정류장에 접근 못 하기도
장애인 8명, 서울시‧경기도 등 지자체장 상대로 소송
장애인들 “대중교통서비스 차별, 책임은 국가와 지자체에”

시‧청각장애인과 지체·뇌병변장애인 당사자 8명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자신이 사는 지역의 지자체장을 상대로 ‘버스정류장 이용에 대한 장애인 차별 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19일 오후 2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버스정류장의 차별적 구조를 알렸다.

시청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버스정류장 운영,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장애인 버스정류장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시청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버스정류장 운영,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장애인 버스정류장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대중교통서비스에서 배제된 장애인, 법원이 차별 판단해달라”

소송에 나선 장애인은 시각장애인 3명, 청각장애인 2명,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뇌병변장애인 3명 등 총 8명이다. 이들은 버스정류장을 이용하다 차별을 겪고 장추련에 상담을 신청했다. 이에 장추련은 상담사례를 모아 이번 소를 제기하게 됐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재단법인 동천, 사단법인 두루, 법조공익모임 나우 등이 법률지원과 소송대리를 맡는다.

이번 소송을 진행하는 장추련은 “단순히 버스정류장을 제대로 설치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추련은 “보편적 대중교통서비스 안에서 장애인이 고려되지 않은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심각한 차별행위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서 “그 책임은 국가와 지자체에 있으며, 대중교통서비스의 대중 안에는 장애인도 포함돼야 한다는 것을 법원이 명확히 판단해 달라”고 밝혔다.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발언 중이다. 그는 “장애를 고려한 버스정류장 즉각 설치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발언 중이다. 그는 “장애를 고려한 버스정류장 즉각 설치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원고 중 한 명인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시각장애인이다. 곽 활동가는 서울 시내 버스정류장을 이용하면서 많은 차별을 겪었다. 버스정류장에 점자블록이 없거나 있어도 파손된 곳이 많아 버스정류장 자체를 찾기가 어려웠다. 또한 점자노선도가 설치된 곳이 없어서 어렵게 버스정류장에 도착해도 이곳에서 어떤 버스를 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몇 번 버스가 오고 있는지 소리로 알려 주는 음성안내 장치는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장치가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곽 활동가는 “음성안내만 믿고 버스를 탔다가 낭패 본 적이 많다. 나 혼자 버스를 타려면 오는 버스를 일일이 다 손으로 잡은 다음에 기사에게 몇 번 버스인지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 버스를 타고 싶어서 이번 소송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강상수 광주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장애인도 이용하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강상수 광주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장애인도 이용하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광주광역시에 사는 시각장애인 강상수 광주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동료 장애인이 겪은 차별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강 활동가는 “청각장애인 지인은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에 버스 도착 등을 알리는 전자문자안내판이 설치돼 있지 않아서 승차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규탄했다.

강 활동가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 지인도 차별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버스정류장 진입로가 너무 좁고 울퉁불퉁해서 지인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정류장에 접근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또한 공간이 협소해 휠체어 회전 등 이동 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정류장은 휠체어 이용자에겐 접근 불가능한 곳”이라고 성토했다.

강 활동가는 “이 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해 광주광역시에서 여기까지 왔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지자체장을 상대로 소송하기로 했다. 국가는 우리의 말을 외면하지 말고 하루속히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라고 말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김동림 김포장애인야학 활동가가 소장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휠체어를 이용하는 김동림 김포장애인야학 활동가가 소장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현행법 어기는 지자체장들… “차별상태 시정하라”

원고 8명은 서울특별시, 경기도 김포시, 광주광역시 등에 거주 중이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가 거주하는 곳의 지자체장이다. 서울시의 오세훈 시장·정문헌 종로구청장·김길성 중구청장, 경기도의 김동연 지사·김병수 김포시장, 광주광역시의 강기정 시장·김병내 남구청장·문인 북구청장 등 총 8명이다.

원고가 각 지역의 교통공사나 국토교통부 등이 아니라 지자체장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이유는 도로법과 지방자치법때문이다. 도로법 2조에 따르면 버스정류장은 ‘도로의 부속물’이다. 지방자치법 14조와 시행령에는 도로의 부속물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건 시·도 및 시·군·자치구의 사무라고 되어있다. 즉, 차별 없는 버스정류장 운영의 책임은 시장, 도지사, 구청장 등 지자체장에게 있는 것이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서울시는 이동권 보장하라.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장애인도 이용하자!”라고 적힌 피켓을 양손에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참가자가 “서울시는 이동권 보장하라.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장애인도 이용하자!”라고 적힌 피켓을 양손에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모든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버스정류장 기준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명시돼 있다.

두 법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점자블록, 유도 및 안내시설(점자안내판, 시각장애인용 유도신호장치, 전자식 신호장치)을 설치해야 하며 안내판의 경우 점자안내와 음성안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시‧청각장애인 모두를 위해서는 버스정보안내단말기(BIT, Bus Information Terminal)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버스 노선이나 도착예정시각 등의 교통정보를 전자문자와 음성안내로 제공하는 편의시설이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서는 휠체어의 출입과 회전 등이 가능하고 휠체어 이용자와 시각장애인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동선을 적절하게 분리해야 한다.

원고가 차별을 겪은 정류장에는 이런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서울시 종로구 서대문·서울시교육청 정류장의 경우 점자블록이 없다. 버스정보안내단말기는 설치돼 있었지만 정류장과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정류장에서는 이용이 불가능했다. 또한 정류장 진입로에 가로수가 설치돼 있고 보도의 폭도 좁아서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드나들 수 없었다.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대중교통 이용자는 다양한 교통수단 중 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장애인의 버스 이용률은 30%대에 그친다. 고령자 등 다른 교통약자의 버스 이용률이 약 60%인 걸 생각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해 9월, 대한민국에 ‘장애인이 버스에 접근 가능하도록 환경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지자체장은 이 권고를 이행하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에 소송대리인단은 지자체장에게 차별상태를 시정할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고 설명했다.

원고와 소송대리인단은 19일 낮,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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