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당사자, 활동가 등 18명이 ‘지표개발연대’ 결성
탈시설가이드라인 이행지표에 이어 두 번째로 개발
위원회 최종견해 국내 적용 기준 초안 마련

탈시설가이드라인 국내 적용 이행지표 개발에 이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 최종견해 이행지표도 개발됐다. 장애인 당사자,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 인권 변호사, 교수 등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을 알리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 18명이 ‘지표개발연대’를 결성해 거둔 성과다.

위원회 최종견해 이행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포럼이 14일 오후 2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협약 최종견해 이행지표 개발 토론회’에서 공개됐다.

토론회 현장.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앉아 있다. 사진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
토론회 현장.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앉아 있다. 사진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

- 장애계 18명 모여 ‘지표개발연대’ 결성

김기룡 중부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 교수는 지난달 31일, 탈시설가이드라인을 국내에 적용할 이행지표를 공개한 바 있다.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탈시설가이드라인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일종의 체크리스트를 개발한 것이다. 탈시설 운동에 매진해 온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 5명이 김 교수와 함께 개발했다.

위원회 최종견해 이행지표는 김 교수를 포함해 총 18명이 ‘지표개발연대’를 결성해 개발을 완료했다. 지표개발연대에는 김주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국장 등 장애인 당사자와 정다혜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등 인권 변호사가 함께하고 있다.

다양한 장애유형과 권리를 포괄하기 위해 여러 장애인운동단체의 활동가도 뜻을 모았다. 장애인 노동권 운동을 하는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 발달장애인 운동을 하는 김수원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 정신장애인 운동을 하는 부민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활동가 등이 이번 이행지표 개발에 참여했다. 김 교수는 지표개발연대의 단장을 맡았다.

지표개발연대는 위원회가 권고한 최종견해 이행수준을 점검하는 이행지표를 개발하기 위해 4개월 동안 5번의 회의를 하고,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 교수는 “사실 이같은 이행지표는 정부가 개발하는 게 맞다. 그런데 국가가 최종견해를 잘 이행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끊임없는 점검도 필요하다”며 “민간 차원에서 국가의 최종견해 이행수준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정책 과제와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통해 국가가 최종견해를 올바르고 바람직하게 이행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 이번 이행지표를 개발했다”며 개발 배경을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이행지표가 담당공무원과 시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담당 공무원에게는 최종견해 이행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하면 좋겠다. 시민은 이행지표를 도구로 사용해 국가를 점검하고 감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룡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
김기룡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

- 타당성, 측정가능성, 실효성 등 원칙 세워 개발

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2·3차 병합 보고에 대한 최종견해를 전달한 건 지난해 9월이다. 최종견해는 협약 이행상황에 대해 위원회가 정부에 준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위원회는 최종견해를 통해 총 73개 항목에 걸쳐 정부가 협약을 얼마나 잘 이행하고 있는지 평가했다. 서론에 해당하는 1~3번은 일반적인 도입부로, 평가와 관련된 내용은 아니다.

평가는 4번부터 시작한다. 4번 ‘긍정적 측면’은 “다음의 입법 조치를 환영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a부터 e까지 5개의 ‘칭찬’이 나열돼 있다. 한국 공식 언어로 수어를 인정한 것, 점자를 한글과 동일한 지위로 규정한 것 등이다. 칭찬은 4번 한 항목이 끝이다. 5번부터 68번까지는 지적과 그에 따른 권고로 이뤄져 있다. 69번부터는 결론이 시작된다. 69~72번은 최종견해는 매우 중요하니 널리 알리고 반드시 이행하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마지막 73번은 2031년에 4~6차 병합 정기보고를 하겠다는 내용으로, 공지사항에 가깝다.

지표개발연대는 5~72번을 중심으로 이행지표를 개발했다. 이 중에서도 구체적인 권고 내용이 포함된 항목 36개를 추려 이를 중심으로 지표를 개발했다. 정부가 위원회의 지적을 수용하고 권고를 이행하고 있는지, 최종견해를 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지 등을 체크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

김기룡 교수는 이행지표를 개발하면서 타당성, 측정가능성, 실효성 등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전했다. 타당성은 이행지표가 권고 내용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측정가능성은 정부가 최종견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실제로 측정할 수 있도록 이행지표를 개발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측정가능성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많이 애썼다. 한국의 장애 관련 정보나 통계자료가 흩어져 있고, 민간 차원에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대한 자료를 수집해 지표형태로 제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원칙인 실효성은 한국이 최종견해를 이행하게 하는 데 이행지표가 효과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이행지표를 통해 장애정책이 변화되거나 계류 중인 장애인권리법안이 통과되는 등 실질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 현장. 참가자들이 토론 내용을 듣고 있다. 사진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

- 총 148개 이행지표 개발완료… “한국이 최초”

이같은 원칙을 가지고 36개 항목을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 지표개발연대는 총 148개의 지표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는 128개의 핵심지표와 20개의 보충지표로 구성돼 있다. 핵심지표는 최종견해의 내용을 드러내고 이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보충지표는 최종견해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데 추가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표를 뜻한다.

또한 148개의 이행지표는 49개의 정량지표와 99개의 정성지표로 구성돼 있다. 정량지표는 수량화된 정보를 통해 숫자, 비율, 값 등으로 표시할 수 있는 지표를 말한다. 정량지표의 경우 수치화된 평가 준거를 통해 이행, 부분이행, 미이행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 정성지표는 최종견해 이행 여부를 질적 자료 혹은 현황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다. 정성지표 또한 이행, 부분이행, 미이행 여부를 평가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최종견해 이행지표가 탈시설가이드라인 이행지표와 다른 점은 각 지표의 소관 부처나 기관 등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시했다는 점이다. 연구 결과, 보건복지부가 소관하는 지표가 가장 많았다(56개). 다음으로 법무부(21개), 고용노동부(11개), 행정안전부·교육부(10개) 순이다. 부처 외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5개), 방송통신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3개) 등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할 지표도 상당수 있었다. 복지부는 담당 지표가 가장 많은 부처임에도,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겼다며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개발에 참여한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해외에서도 협약을 지표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고 실제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그런데 최종견해로 지표를 만든 사례는 아마 한국이 최초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개발에 참여한 김동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최종견해는 한국 맞춤형 협약이라고 보면 된다”이라며 “이번 개발은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술회했다.

- 고생해서 만든 이행지표, 활용방안은?

김 교수의 발제가 끝난 후에는 이행지표를 국내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에 관해 토론이 시작됐다. 조은영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2과 조사관은 ‘SDGs 데이터 플랫폼’을 제안했다. 이 플랫폼은 통계청 통계개발원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SDGs는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즉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뜻한다.

유엔은 2015년 70차 총회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채택했다. 이에 따른 17개 목표(세부목표 169개)가 잘 이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각 국가에 책임기관을 두고 데이터를 생산·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도 이에 따라 SDGs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누리집에 접속하면 빈곤퇴치, 기아종식, 성평등달성 등 17개 목표가 국내에서 얼마나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은영 조사관은 지표개발연대가 개발한 이행지표를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개의 목표별 이행정도를 평가하는 세부 지표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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