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더 나은 통합교육 현장을 위하여

[편집자 주] 유명 웹툰 작가가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교권을 뒤흔든 사건이라며 크게 공분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히 ‘특수교사-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치부될 수 없다. 몇 언론에서 지적됐듯 특수교육 현장이 갖고 있는 오래된 어려움과 구조적 문제가 가시화된 것이다. 비마이너는 더 나은 교육현장을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고민하고 논의해야 하는지, 정부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목소리를 모아가고자 한다. 과거 특수교육 대상자였던 사람, (특수)교사, 장애부모, 장애인권활동가 등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연재한다.

나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엄마이자 대안학교 교사였다. 최근 공교육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련의 일들을 보며,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며 했던 고민과 갈등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딸, 아들 모두 이젠 다 커 청년이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교육하고 자립시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장애가 있는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비장애인인 딸도 한국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키우기가 무척 고달팠다. 많은 사람들이 그 엄청난 것을 해왔고 여전히 해내고 있다니 새삼 놀랍다. 어린이집부터 어려웠다.

“오늘은 집에 있을래. 보라반 선생님이 맨날 울어.”

친구 좋아하고 무엇이든 배우기를 좋아하는 딸아이는 일찍 일어나 어린이집 가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니 의아했다. 하긴 아이가 점점 생기가 없어지고 시큰둥하긴 했다. 알아보니 교사가 정원 20명을 훌쩍 넘긴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있었다. 원장에게 물어보니 넓은 교실이라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구청에 사실을 확인하려 전화를 했더니 조치를 취하겠다며 어린이집 이름을 물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법을 지키게 된 원장은 그 뒤로 일 년 내내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대안이 필요했다.

이웃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권했다. 내 아이를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를 우리가 키운다’는 가치가 마음에 들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둘째인 아들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다고 말하자 면담도 못 해보고 거절당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놓고 차별을 당하고 보니 화도 났지만 그보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키울 일이 막막했다.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다른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대표교사와 부모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분들이 말했다. 장애아 보육 경험은 없지만 같이 해보자고, 무엇을 준비하면 되냐고.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두 어린이집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 지점은 두고두고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거기가 안산 영차어린이집이다. 아들네 반 선생님은 1년 동안 일주일에 하루 통합교육 연수를 받으러 서울을 오갔고, 그날은 어린이집 부모들이 돌아가며 교사 대신 아이들을 돌봤다. 부모들도 함께 공부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같이 풀어나갔다. 덕분에 딸과 아들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나들이 다니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도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하며 교육소비자가 아닌 교육의 주체로 성장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 특수학교의 교실 풍경. 사진 비마이너DB
한 특수학교의 교실 풍경. 사진 비마이너DB

딸아이는 학교입학식을 손꼽아 기다렸다. 고모가 사준 책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아이는 큰길을 건너지 않아도 되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려스러운 점이 있어도 공교육이 다 그러려니 하며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지원했다. 아이가 1교시 수업할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무서워서 교실에 못 들어가고 왔어.”

선생님이 준호(가명)를 때렸다고 했다. 지난주 준호는 다른 아이가 맞을 때 웃었다는 이유로 엎드려뻗쳐 해서 30대 넘게 맞았고, 월요일에 등교한 딸은 교실 앞을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처음부터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는 했다. 담임교사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를 늘 맨 끝자리에 앉혔다.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여쭤보니 아이가 화장실 갈 때 편하게 가라는 배려라고 했다. 아이들 이름을 안 부르고 ‘야, 너’ 하는 것도, 소리를 지르는 것도, 등짝을 때리는 것도 연세가 있는 교사니까 그러려니 했다. 준호 체벌 사건으로 더는 그냥 보아넘길 수가 없었고 학부모들과 상의해서 비교육적인 체벌을 멈춰 달라고 요구했다. 교사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고 교장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교내에서 문제를 풀기가 어려웠다.

딸아이한테 학교에 적응하라고도, 적응하지 말라고도 할 수가 없어 대안학교를 알아보았다. 그런 교사를 또 만날까 봐 걱정되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낙담했던 것은 문제를 함께 풀어가지 못하는 공교육시스템이었다.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지만 원인을 찾고 바로잡기는 해야 하는데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대안교육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학력 인정이 안 되는 것, 무상교육을 포기하는 것은 억울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 내 자식만 대안학교로 가도 될까, 여기 남아 공교육의 변화를 함께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갈등에 홀가분하게 떠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대안학교를 선택했지만 다짐도 같이 했다. 나의 선택이 교육운동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대안교육이 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사회에 자극이 되도록 하겠다고.

아이들이 다니고 내가 근무하던 대안학교에는 정원의 10% 내외로 장애학생이 있었다. 한 반에 한두 명씩 장애학생이 있는 셈이다. 동네에 장애학생이 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학교는 특수학급이 없다. 담임교사(통합교사)가 개별화 교육계획 회의를 열고 수정수업계획안을 짜고 적용하며 장애학생의 학교생활을 지원한다. 특수교사(통합지원교사)는 담임교사나 교과 담당 교사들을 지원하며 통합교육을 위한 인력 배치, 장애학생의 개별 교육을 계획한다. 비장애학생의 인권교육, 학부모교육 등 학교의 장애‧비장애 통합문화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이라고 적힌 커다란 플랜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이라고 적힌 커다란 플랜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우리 반 민호(가명)는 의사 표현을 말로 하기 힘든 학생이었다. 교실 밖으로 나가거나 바닥에 드러눕는 것은 지원인력을 늘리거나 나머지 사람들이 익숙해지면 괜찮았다. 문제는 하루에 한두 번은 친구들을 때리거나 할퀴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와 통합지원교사는 민호가 어느 시간에 무슨 이유로 ‘어려운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고 기록했다. 아침을 먹고 온 날과 그렇지 않은 날, 특정한 수업 시간, 특정한 사람, 날씨까지 행동의 이유를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머지 15명의 학생들과도 민호와 잘 지내는 방법을 의논했다. 민호에게 덜 맞는 아이가 비법을 나누기도 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인사한다고 했다. 한 아이는 심심해서 그러는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우리 반 학생들 모두 쉬는 시간에 민호가 좋아하는 잡기놀이를 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행동도 차차 줄어들었다.

민호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글도 배우게 됐다. 친구들에게 공책을 나눠주고 싶어 하는 것이 동기가 되어 반 친구들 이름부터 읽게 됐다. 아이들은 민호에게 공책 받는 시간을 기다렸고 민호가 자신의 이름을 읽어주면 환호했다. 아이들이 민호를 고마워하며 응원하는 경험이 민호에게 안정감을 주는 듯했다. 어려운 행동을 할 때는 짧고 단호하게 주의를 주고 평화롭고 잘 지낼 때 집중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었다. 이 모든 과정과 결정을 학교의 교사들, 민호의 부모님은 물론 반의 학부모들과 공유했다.

이렇게 교사들과 부모들이 협력하고 소통을 해도 문제가 생긴다. 때로는 교사와 부모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쌓은 신뢰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 물론 딸과 아들도 대안학교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단단하게 자랐다.

그 사이 공교육도 많이 달라졌다. 딸의 1학년 담임 같은 교사가 더는 발붙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늘고 있고 문제가 생기면 학교공동체 안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여전하다. 학생들은 점점 다양해지는데 공교육은 그런 학생들을 담기에는 딱딱한 그릇이다. 어떤 학생이라도 존중받으며 배울 수 있게, 어떤 교사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할 수 있게, 부모와 교사가 협력할 수 있게 그릇을 말랑하게 다시 세팅해야 한다. 나는 대안교육을 선택했지만 공교육이 애달프다. 교육부는 애먼 학생만 잡으려 하지 말고 지친 교사 탓만 하지 말고 시스템을 유연하고 촘촘하게 만드는 데 공을 쏟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공교육이 장애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학생을 담는 큰 그릇으로 거듭나길 진정으로 응원한다.

필자 소개 
이남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사회적협동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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