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동료지원가 예산 전액 삭감, 폐지 위기
동료지원가 활동으로 삶이 바뀐 발달장애인들, 투쟁 나서

피플퍼스트서울센터는 발달장애인자기옹호단체이며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입니다. 줄여서 ‘피플서울센터’로 적습니다. 이 글은 피플서울센터가 썼으며,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2022년 우수사례공모전에 제출해 고용노동부장관상을 받은 원고를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은 줄여서 ‘동료지원가사업’으로 적습니다. 2024년 정부 예산안에서 동료지원가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습니다. 이 사업 폐지를 막기 위해 동료지원가사업 활동을 널리 알리고자 작성되었습니다.

동료지원가사업 폐지를 막기 위해 함께 활동하는 서울지역 발달장애인단체는 피플서울센터, 광진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피플퍼스트성북센터로 11명의 동료지원가가 일하고 있습니다.

[글] ‘동료지원가사업 폐지’로 발달장애인들이 시위를? 그게 대체 뭔데?
[카드뉴스] ‘동료지원가사업 폐지’로 발달장애인들이 시위를? 그게 대체 뭔데?
* 카드뉴스는 [글]에 담긴 내용을 간략하게 줄여서 만들어졌습니다.

피플서울센터는 지난 2017년도 4월부터 영등포구에서 운영되고 있는 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입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권리 확보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이 함께 일하며, 자조모임, 동료상담, 권리옹호, 교육 활동 등을 합니다.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활동과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운영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활동의 중심이 되는 공간”을 지향하는 우리 센터에는, 전체 실무자의 60%에 해당하는 7명의 발달장애인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 중 5명이 동료지원가 사업의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한 최초의 민관 협력 사업입니다. 발달장애인(동료지원가)이 발달장애인을 만나 상담과 자조모임 등의 활동을 하고, 발달장애인(참여자)에게 새로운 사회적 활동의 기회를 갖도록 돕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2017년도 처음 피플센터가 개소했을 때 발달장애인인 센터장과 동료상담가가 활동했습니다. 자조모임 등을 꾸려 발달장애인들을 만났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활동을 원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재원이 없어, 만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에게 ‘우리 함께 일하자!’고 제안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회 없는 권리, 그것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다 이 사업이 시행되었던 2019년도, 우리는 5명의 발달장애인을 동료지원가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9월 18일 오전 7시경, 한국피플퍼스트 소속 활동가들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충무로에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기습 점검했다. 이날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활동가 9명을 포함해 총 25명이 연행됐다. 사진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지난 9월 18일 오전 7시경, 한국피플퍼스트 소속 활동가들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충무로에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기습 점검했다. 이날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활동가 9명을 포함해 총 25명이 연행됐다. 사진 피플퍼스트서울센터 

- 첫해의 기억

사업이 진행된 2019년 첫 해, 이 일자리 사업은 지금보다 더 철저히 ‘실적’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증장애인인 동료지원가는 하루 3시간 근무합니다. 동료지원가 1명당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중증장애인 20명의 참여자를 5번씩 만나야 하고, 이 참여자 중 6명에 대해 취업연계활동을 진행했다고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동료지원활동이 이 실적에 미치지 않는다면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하더라도 채우지 못한 실적만큼의 월급을 다시 고용노동부에 반납해야 했고요. 지금까지 상담 경험이 거의 없던 동료지원가들이 스스로 참여자를 모으고, 상담을 하거나 모임을 꾸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적의 압박에 동료지원가 K는 스스로를 “보험설계사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발등에 떨어진 불인 실적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은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동료지원가 자신이 이 사업에 대해 이해하고, 동료지원을 하기 위한 정보를 가져야 하는 것이었지요. 익숙하지 않은 일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2019년도 무더운 여름을 지나는 두 달 동안 동료지원가를 포함한 센터장과 동료상담가, 슈퍼바이저, 근로지원인들은 매일 2시간씩 공부했습니다. 칠판 한 켠에는 “20명×5회×48,000원(1회 상담 단가)”이, 다른 한켠에는 “우리는 피플퍼스트서울센터의 동료지원가입니다. 동료지원가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돕는 일을 합니다”란 문구가 사명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고 고민하며 동료지원가 5명을 포함해 7명의 발달장애인활동가는 발달장애인의 권리 중 특히 일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과, 일을 통해 비로소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던 외로움과 고립이 차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비발달장애인들은 동료지원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발달장애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기회의 박탈과 차별, 그것을 통과하고 동료지원가로 서있는 당사자들의 내면의 힘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눠진 이야기는 총 20종의 교육자료(PPT)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교육할 준비가 끝났고, 다 함께 외첬습니다.

“이제 사람들을 만납시다!!”

참여자를 모으기 위해 슈퍼바이저를 비롯해 모든 비발달동료들은 발달장애인들이 참여자로 있는 다양한 기관에 만남을 요청하고, 간담회를 열고, 자조모임을 꾸리는 등 백방의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주한 것은 발달장애인인 동료지원가를 향한 부정적 시선들이었습니다. “의도는 좋지만 발달장애인이 상담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참여자와 만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은 불어오는데, 실적은 ‘0’. 동료지원가들은 매일 발달장애인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 읽고, 기록하고, 준비된 교육자료를 읽고 연습했지만, 그것을 전달할 사람들도, 펼칠 공간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어렵게 어렵게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2곳의 협조를 얻었고, 50여 명의 발달장애인들과 만나 가을과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기어코 실적 미달에 따른 수백만 원의 반환금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고 설요한 님이 실적의 압박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자 모집을 위해 기관 모두가 노력했지만, 동료지원가들이 느끼는 실적의 압박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플서울센터의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과 원망, 분노와 같은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장례와 추모식에 참여했습니다. 2019년도 말, 희망찬 내일을 위해 시작된 일자리가 죽음과 맞닿으니, 사업의 참여 자체가 망설여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명의 동료지원가들과 계속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 마땅한 다른 방법을 찾을 길도 없었습니다. 반환금을 정리하고 다시 2020년도 사업운영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 함께 일한다는 것

동료지원가들에게 피플서울센터는 첫 직장이기도 하고, 여러 직장 중 한 곳이기도 합니다. 많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만나온 센터였지만, 실무자의 반 이상이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되자 예상치 못했던 장면들과 수시로 마주치게 됩니다.

동료지원가 P는 동료지원가로 일하기 전, 조립, 물품진열, 만두포장 등의 일을 거쳤는데, 고용기간은 모두 1개월 미만이었습니다. 센터 입사 초기, 당시 정신과 약물 복용량이 많아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화장실 실수가 잦았습니다. 낯선 환경에 따른 높은 긴장에서 온 실수가, 이전 직장에서 근로계약 해지 이유였다고 했습니다. P의 근무시간은 오후 1시부터 4시, 그러나 퇴근은 통상 밤 9시에 이뤄졌습니다. 야근하는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2~3시간의 퇴근 지원이 반복됐고, P에게 활동지원사가 배치되기 전 1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P와 같은 이유, 또는 다른 이유로 모든 동료지원가에게는 각자의 긴장이 있었고, 각기 다른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업무를 이해하고 진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근로지원인을 배치하기, 긴장을 낮추고 기분이 환기될 수 있도록 요청 시 수시로 때론 종일 산책 함께하기, 불충분한 정보로 상황이 왜곡되지 않도록 설명 또는 상담 진행하기, 참여자를 만나는 모든 과정을 세분화해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석할 수 있도록 짝꿍 조력인 배치하기, 빠트리지 않고 약 먹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 가족 및 주거지원 기관과의 상담을 통해 지원 공백 줄이기, 생활 및 위기 지원하기 등 많은 과정과 내부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노동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과 기반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여럿의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와 함께 일하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2019년 5월부터 동료지원가로 근무한 P는 2021년도 12월 31일 건강이 악화되어 퇴사했지만, 또렷한 눈빛과 발음으로 자립을 외치고, 자조모임의 리더로 참여자를 모으고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다른 동료지원가들 역시 2019년도와는 다른 ‘오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교육 자료를 만들고, 회의에 참여할 회의안을 만들고, 업무일지를 작성하고, 특별한 이슈에 관해 토론하고, 동료상담을 위해 출장길에 오르기도 합니다. 동료지원가 S는 한 인터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한 뒤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갈등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동료지원가’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된 발달장애인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노래를 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하늘로 뻗고 있다. 우비를 입은 그의 등에는 “고용노동부 장관 만납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노래를 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하늘로 뻗고 있다. 우비를 입은 그의 등에는 “고용노동부 장관 만납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넘어야 할 산

지난 4년 동안 피플센터가 가장 노력한 것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회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동료지원가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피플서울센터 운영 전반의 내용과 정보를 공유하고, 동료지원가 실적에 대해 고민하고, 참여자 중 직업연계를 포함해 추가 지원이 필요한 경우 방법을 찾고, 역할을 나누는 모든 과정이 주간회의에서 진행됩니다. 2019년도 50분을 넘기지 못했던 회의는 현재 2~3시간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료지원가의 모든 활동은 실적과 더불어 참여자의 삶을 더 나은 방식으로 변화하는데 모이고 있습니다. 동료지원활동이 곧바로 참여자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발달장애인의 조건이 일자리에 닿기까지 넘어야 하는 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긴 시간 동료지원가사업을 운영하면서 갖게 된 피플서울센터의 고민입니다.

동료지원가사업 역시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동료지원가와 참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애씀이나 역동은 실적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참여자의 고용보험 가입 여부, 기계적인 만남 횟수, 취업연계나 교육 프로그램 연계 등 보이는 숫자만이 동료지원가사업의 의미를 산출할 뿐입니다. 더욱이 동료지원가가 열심히 참여자를 만나 중증장애인의 취업욕구가 높아져도 사회가 발달장애인에게 내어주는 ‘일자리’란 바늘구멍만큼이나 좁다는 점, 사업을 운영하는 데 민간의 실적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일자리로 연계하기 위한 공공의 역할은 협소하다는 점, 구조화되지 않은 지침을 제시할 뿐 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자원은 수행기관이 모든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점들입니다. 이런 조건은 이 사업의 또 다른 커다란 산으로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지원가사업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참여 기회는 분명 확대됐고,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활동(일)하며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발달장애인의 노동에 대해 사회적 질문을 던져, 중증장애인의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시행 4년을 맞이하며, 동료지원가사업에 참여하길 희망하는 지역 조직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삶터에서 노동자로서의 역사를 쌓고, 직장의 동료로서 인정받게 될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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