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부산으로 가을소풍 함께 가요~!”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절규를 실은 《소금꽃나무》가 출간된 그 해, 우리는 딱 100년 전 이웃 나라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국가권력에 의해서 무고하게 사형당한 한 혁명가를 한국 땅에 소개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틈틈이 번역 작업을 했다. 그리고 올해 8월 말 드디어 책이 나왔다. 4차 희망버스가 시동을 건 바로 그날이었다.

‘100년쯤 후에나 자신이 왜 죽었는지를 누군가가 말해줄까’ 하며 사형장으로 끌려갔던 이 혁명가의 한 맺힌 절규가 허공을 헤매다가 이제야 유유히 흘러가는 빛의 흐름에 합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착취당하고 탄압받는 노동의 현실에 국경이 없듯이 자본의 폭압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사투와 연대에 너와 나의 구별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 그 혁명가의 일관된 주장이기도 했으니, 그 빛이 어디에서 발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래도 이 혁명가를 잘 소개하고픈 우리의 마음은 마음이고 잘 팔릴 책도 아니기 때문에 기대도 안 했었다. 인세 같은 것은.

그런데 조금의 돈이 나온다니, 이 돈(!)을 어쩌나. 우리 중 누군가가 희망버스를 밀자고 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요동치는 희망의 맥박을 생으로 느꼈다. 세상에 희망에 투자하지 않을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알 일이다. 우리의 투자처가 여기 ‘희망버스’인 이유를 간단히 밝히겠다.

큰 흐름을 타는 것은 투자의 상식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라는 김진숙 동지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우리 노동자들과 우리의 자녀는 모두 다 비정규직이라는 잠재적 실업상태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아무리 ‘고속’으로 달려도 내쫓기고, 그 어떤 ‘재능’이 있어도 내쫓기고, 무거운 철강을 거뜬히 물 위에 띄우는 신의 손을 가져도 내쫓기는 현실을 두 눈으로 보았다. 해고는 부당하다고 아무리 절규하고 애원해도 “청와대, 노동부, 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운 좋게 버티고 있을지 몰라도 ‘다음 차례는 우리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하다.

이 불안에 대비해서 우리의 미래를 지켜줄 곳은 어디인가. 우리는 진지하게 투자처를 물색해야 한다. 농담이 아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니까 깨지는 거야!”라고 하던 김진숙 동지가 크레인 위에 조용히 깃발을 꽂자 노동자들이 거짓말같이 하나둘씩 모였다. 조금 지나자 다단계식으로 모여든다. 더 많은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실어 나르자고 희망버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고 또 달린다. 큰 흐름을 타야 하는 것은 투자자들의 상식이다.

▲한진중공업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가 농성 중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

‘희망’에 투자하고 보험금 타자

물론 선거에서 대통령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고 국회의원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잘 듣는 투자처는 저항하는 노동자, 연대하는 노동자, 우리의 각양각색 불안에 ‘희망버스’라는 이름을 붙인 노동자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국회의원들도 정치가들도 ‘희망버스’를 타려고 한다. 죽은 사람도 타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도 타고 저 나라 사람도 탄다. ‘희망버스’는 거리로 거리로 내몰리며 신음하던 우리 노동자들을 서로 만나게 했고, 억울하게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했고, 이 나라 사람과 저 나라 사람을 만나게 했다. 승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악랄한 독점재벌의 착취로 얼룩진 대한민국을 새로운 노동운동의 산실로 탈바꿈시킨 이 ‘희망버스’에 과감히 투자해서 나중에 보험금을 타 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영구불변할 것 같던 모 영화제작사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휴대전화도 자동차도 영원하지 않다. 강철도 영원하지 않다. 영원한 것은 ‘희망버스’라는 이름을 가진 깨어 있는 노동자의 연대, 이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100년 전 이웃 나라의 그 혁명가도 “노동자가 자각하여 단결하면 이 단결에 대적할 힘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1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진실이다.

 

내일로 가는 5차 희망 버스
“10월 8일, 부산으로 가을소풍 함께 가요~!”

송경동(시인)

그간 참 많은 사람이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희망의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다시 그런 희망의 버스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못 가니 형편이 안 되는 분들이 탈 수 있게 해달라는 수많은 후원이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적지 않은 후원금을 주유비로 내어준 분들도 많다. 호주에서, 독일에서, 일본에서, 미국에서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다.

실제 희망의 버스는 그 자체로 빵구가 날 수밖에 없는 고물버스, 허점투성이 버스다. 반값등록금 투쟁을 하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단순한 마음만으로 ‘반값버스’를 덜컥 진행하고, 아무리 빵구가 많이 나도 매번 다른 이미지의 스카프를 나눠주고 싶어했고, 아무런 대책 없이 밥은 먹고 살자고 5,000인분의 아침밥을 맞추기도 했다. 한진중공업에서 지금도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숨죽여 일하고 있는 1,500여명의 비정규직들에게 양말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해고자 가족분들을 함께 모시자고 무료버스를 운행하기도 했다. 장애인분들도 함께 가자고 전동휠체어를 실을 희망트럭을 운행하기도 했다.

모두 눈물겨운 일들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기백만원, 기천만원씩이 뭉텅뭉텅 빵구가 나는 무책임한 버스, 비상식적인 버스였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지향만큼이나 우선 출발부터 하고 보는 맹랑한 버스였다.

▲서울에서 진행된 4차 희망버스, 한진중공업 본사 인근에서 행진 중인 희망버스 참가자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즐거웠고, 신이 났다. 돈으로, 경제적 관점으로 무엇을 먼저 꺾거나 미루지 않았다. 독점과 사유와 교환가치의 감옥에서 풀려난 무한한 상상력이 열렸고, 모든 일이 가능할 듯했다.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고, 낙관이 있었다. 우리 자신들에 대한 용기가 있었다. 85호 크레인을 향해 가자는 우리의 제안이 모두를 아프게 할 수도 있지만 기껍고 좋은 제안이라고 믿었고, 그 마음들이 통했다. 희망버스 승객들 누구나 한 가지씩은 사람들과 나눌 것을 가지고 왔다.

그 과정에서 리어카로 밥을 실어나르고, 5,000인분의 어묵이 시위물품이 되어 고스란히 갇히기도 했다. 여름 부채에 그림을 그려온 어린이책 작가들, 희망진료소를 운영해준 보건의료인, 혹여라도 인권침해가 있을까 봐 달려온 법조인, 인권단체 버스, 매회 새로운 율동을 준비해 오던 늘품약사회 분들, 파견미술인들, 시낭송의 밤과 거리강연회를 준비해 왔다가 판도 펼쳐보지 못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던 문화예술인들과 교수학술인 버스, 다름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당당히 보여주던 퀴어버스, 농민들, 철거민들 등등. 보이지 않고, 전달되지 않지만 이 야만스런 사회에 대한 본질적 저항에 마음 한 줄기 보태겠다는 그 선한 의지들만큼 서로에 대해 큰 선물도 없었다.

그 모두의 힘으로 희망의 버스가 5차까지 달려가고 있다. 3차가 끝나고는 결국 근 3,000여만원의 빵구가 나기도 했다. 잘 풀리지 않는 한진중공업 문제와 경찰의 탄압 등이 겹치면서 사실 모두 힘겨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게시판을 통해 간단하게 빵구 사실을 알리자 여기저기에서 수리공들이 나타나 주셨다. 언론노조와 전국여성농민회, 시국대회, 화물연대 등에서 현장 모금을 열어주었고, 많은 분들이 선뜻 기름값을 넣어주셨다. 희망 승차권이라고 작은 표딱지 하나를 발행했는데, 이것이 실제 승차권이라 생각하시고 수천 명의 분들이 구매해주시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희망의 버스는 지난 운행 과정에서의 빵구를 다 때우고, 5차 기름값 일부까지가 채워진 상태다. 근 보름 만에 일어난 ‘억’(?) 소리에 가까운 일이었다. 4차의 기적 중 하나였다.

그리곤 며칠 전 위의 ‘미래영겁’님께서 다시 후원 기름값을 내주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알만한 분들이건만 부끄럽다고 이름과 책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 하신다. 기름값도 기름값이지만 글이 부족하다고 극구 부탁하니 글까지 써주셨다. 희망의 버스는 이런 모든 분들의 참여와 연대의 힘으로 굴러가고 있다. 이런 모든 분들께 희망버스 차장의 한 사람으로 따뜻한 마음의 감사를 드린다.

5차 희망의 버스는 10월 8일, 부산으로 85호 크렌나무를 찾아 떠나는 ‘가을 소풍’이다. ‘가을운동회’를 겸하자는 분들도 있었다. 모든 운동들의 운동회도 참 좋다. 그날이면 김진숙 님의 고공 농성이 270여일이고, 사수대 4명의 농성 역시 100여일이 된다. 그중 신동순 조합원이 단식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근 50여일 차가 된다.

그런데 소풍이라니 하며 나무라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우리는 아직도 너무 착하거나 평화롭거나 안이할 수 있다. 하지만 우선은 다른 방법이 없다. 눈물을 속으로 삼키면서 가는 소풍이다. 분노를 꾹꾹 누르며 가는 소풍이다. 김진숙 님이 평상심을 잃지 않듯, 너희가 아무리 우리를 탄압하고, 사람의 마음을 잃게 하려 해도 우리는 너희의 야만에 맞서 평화의 마음을, 폭력에 맞서 존엄함을 잃지 않겠다는 결의의 소풍이다. 언제든지 폭풍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경고의 소풍이다. 소박함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보여줄 새로운 문화의 소풍이다. 성숙한 사람들의 힘을 보여줄 연대의 소풍이다.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건강한 몸으로 이 평지로 걸어 내려올 그날까지 결코 희망의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는 의지의 소풍이다.

무엇보다 우리 서로 이렇게, 나눔과 연대를 실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체 시공간이 5차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여름 바빴던 마음들을 내려놓고 영도 바닷가 바람을 느껴보는, 우리는 진정 어디로 가야 하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5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성숙한 사람들의 문화가 저 야만스런 85호 크레인의 상황을 종식시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리 사회를 한층 더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거라 믿는다. 우리는 조금씩은 더 행복해져야 한다. 너희가 조금씩은 더 내놓아야 한다. 너희가 움켜쥔 그 모든 부와 사회적 가치는 실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안내]
정리해고 ∙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5차 희망의 버스
“가을 소풍” 부르릉!

▲5차 희망버스는 '가을 소풍'을 떠나는 느낌으로 기획됐다. 5차 희망버스 광고 포스터.

85호 크레인 고공농성 276일. 사수대농성 104일째. 신동순님 단식 55일째.
야만을 멈춰라! 조남호를 처벌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 이명박 정부가 책임져라!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보물찾기!
아름다운 이들의 가을 소풍, 가을 운동회!

■ 출발
- 서울 : 10월 8일(토) 12시, 시청광장 재능교육비정규직 농성장
- 전국 : 지역별로 계획을 잡아 출발합니다.
■ 도착 : 부산, 6시 도착(장소 추후 알림)
■ 참가비 : 3만 원
■ 입금 계좌 : 국민은행 702102-04-052110 문정현(희망버스) / 서울 참가자만 받습니다.

※ 참가비와 참가비 입금계좌가 지역마다 다르므로, 지역별 공지사항을 꼭 참고해 주세요.
※ 지역 버스 운행하시는 분들께서는 꼭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카페에 관련 내용을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문의 : 다음 카페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070-7168-9194(서울), 메일 hopebus@jinbo.net, 공식트위터 twitter@hopebus85

■ 승차 관련
- 각 단체, 노조, 모임, 커뮤니티 별로 5차 희망버스 참가를 논의, 결의해주시고, 참가자를 모아 일괄 신청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서울 승객들께서는 차량 대수 확정을 위해 9월 30일까지는 신청을 해주시면 좋습니다.
- 지역별 논의를 통해 5차 희망버스 지역참가단을 모아 출발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 단체별, 노조별로도 참가단을 결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가을소풍’답게 각 지역, 부문별로 함께 나눌 프로그램들을 준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10월 8일 첫 만남의 자리 주인은 각 지역, 부문의 평범한 버스들입니다. 각 지역버스 별로 3분 내외의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인사를 준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희망버스는 참가자들의 힘으로 만들어집니다. 각 지역, 부문버스별로 대당 10만원의 5차 희망버스 운행비를 모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5차 이전에 희망버스 지역 이야기마당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요청해 주시면 만나고 싶습니다. 그 외 지역별 실천을 위해 북콘서트, 촛불문화제, 선전 및 홍보 등을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어린이들과 함께 레고로 대형 크레인을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쓰시지 않는 레고들을 모두 가져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희망의 버스는 계속 달립니다.

※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전진(가안)
- 일시 : 10월 22일(토) 오후 4시, 서울
- 1부 :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 2부 :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천만상상(100만 행진 및 사회헌장 선포식)

※ 비정규노동자 가을운동회
- 일시 : 10월 9일(일), 연세대학교
- 희망버스 타고 부산 다녀와 함께 합니다.

(기사 제휴 =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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