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홈리스 추모행동]
올해 서울서 사망한 홈리스 404명
반빈곤운동단체와 홈리스 당사자 자체 추산
정부 공식 통계 無… “생존 위해 사망 통계 마련하라”
영하 15도 한파 속 홈리스 동료 추모

사망한 홈리스의 영정과 이름, 사망장소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바닥에는 국화꽃잎들이 있다. 사진 하민지
사망한 홈리스의 영정과 이름, 사망장소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바닥에는 국화꽃잎들이 있다. 사진 하민지

2023년, 서울에서 사망한 홈리스 404명. 정부나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가 아니다. 반빈곤운동단체와 홈리스 당사자들이 자체 추산한 숫자다.

2023홈리스추모제기획단(아래 기획단)은 지난 22일 오후 7시, 서울역 광장에서 ‘2023 홈리스 추모문화제’를 열고 서울의 거리에서 살다 사망한 홈리스 404명의 넋을 기렸다.

2023 홈리스 추모제 현장. 사진 하민지
2023 홈리스 추모제 현장. 사진 하민지

- 홈리스 생존 위해 사망 통계 마련하라

기획단 추모팀에 따르면 서울 홈리스 사망자 404명은 △무연고 사망자 중 주소가 쪽방, 고시원 등이어서 홈리스 상태로 추정되는 사람 △기획단이 거리와 마을에서 만나온 사람 △홈리스 이용 시설이 제공한 정보 등으로 추린 숫자다.

정부는 홈리스 사망 데이터를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누가,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홈리스 사망 데이터를 집계하는 기관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정확한 집계라고 할 수 없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노숙인 의료지원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한국 전체 인구의 연령별 사망률보다 노숙인의 사망률이 4배 높다는 통계가 있다. 건강보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조사지만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이용자와 노숙인생활시설 이용자 일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전체 홈리스의 사망 통계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홈리스 사망 집계는 일관된 방식 없이 시설과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 있다. 시설은 사망자 발생 시 사망통계를 작성해 시·군·구청장에게 보고하고 있지만 보고된 정보가 어디에서 어떻게 누적되고 관리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추모제 참가자가 “이름 없는 삶과 죽음은 없다, 홈리스의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추모제 참가자가 “이름 없는 삶과 죽음은 없다, 홈리스의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정확한 홈리스 사망 데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사회적 부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단 추모팀은 “홈리스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가난의 결과다. 이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에 이름을 붙이는 건 추모와 재발 방지를 위한 첫 단계”라며 “홈리스 사망 데이터를 축적하고 평가하는 건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전략 개발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홈리스 죽음을 넘어 생존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기획단 추모팀은 정확한 홈리스 사망 데이터 집계를 위해, 시설을 통한 보건복지부 수합을 요구했다. 이들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일시보호시설, 생활시설, 쪽방상담소의 사망통계를 복지부가 수합, 분석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거리생활자의 일부와 시설, 쪽방주민 사망자의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추모팀은 이외에도 △전국적인 무연고 사망자 부고 게시 통합 운영 △전국 지자체 ‘공영장례 조례’ 개정해 사별자의 애도할 권리 보장 △장제급여 인상 △장례의 공공성 강화 위한 공설장례식장 확대 설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예를 갖춘 봉안시설 마련 △‘무연고 사망자 봉안 기간 10년’으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 등을 요구했다.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 서가숙 씨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 서가숙 씨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이제 이별의 인사를 할 때… “사랑합니다, 나의 친구”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영하 15도 한파 속에서 사람들은 떠나간 홈리스 동료를 뜨겁게 추모했다.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학생인 서가숙 씨는 고인이 된 여성홈리스 동료들에게 추모사를 바쳤다.

“40대 중반 안 씨, 얼굴은 시커멓고 말랐다. 나와 대화를 많이 했다. 건강은 안 좋지만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간암으로 죽었다고 했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주소가 서울이 아니라서 우리와 함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분홍 스웨터에, 분홍 보자기에, 조그맣게 봇짐 싸고 다니는 40대 중반 언니. 언니가 스타벅스 근처에서 서서 담배를 피웠던 게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언니가 통 안 보였다. 듣기로는 아프다고 사람들한테 119 불러달라고 해서 실려 갔다고 한다. 나중에 경찰을 통해 별이 됐다고 전해 들었다.

68년생 56살 임 씨, 늘 빙그레 웃기만 했다. 어느 골목에서 세 시간 동안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고 열흘쯤 있다 떠났다. 무서운 순간을 다 겪고 홀로 떠난 그녀를 생각하면 맥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보따리도 챙기지 못하고 여행을 떠난 많은 님을 떠나보내며, 채 식지 않은 뜨거운 재를 뿌리며, 허망하기도 안타깝기도 했지만 행복하소서. 편히 쉬소서. 고이 잠드소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신을 기억합니다. 이름 없는 꽃이지만 향기 있는 꽃이었습니다.” (서가숙)

이어 서 씨는 “여성홈리스는 거리에서 꼼짝 않고 비닐이나 파라솔로 가리고 잠을 잔다. 잘 때도 다 가리니까 사람들은 여성인지 모르지만 여성홈리스는 광화문, 충정로역, 영등포, 평택, 대전, 서울역 어디에나 있다. 70~80대 여성홈리스도 거리에서 지내고 있다”며 “요즘 안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추운데 따뜻한 방에서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합창교실에서 노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합창교실에서 노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22년 넘게 거리생활 중인 이기천 씨는 텐트촌에 살 때 만난 동료, 정계훈 씨와 바람(가명) 씨를 추모했다.

“계훈 동생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 그래서 그런지 매일 술이라 당연히 건강은 안 좋아졌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때가 많았지. 계훈 동생이 왜 주거지원을 안 받았는지 나는 알고 있지. 텐트에 있으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그마한 방에 들어가면 외로우니까 그랬잖아.

그렇게 사람 좋아했던 계훈 동생이 1월에 텐트 밖에 있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이나 놀랐어. 거기는 여기보다 따뜻한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나의 이웃 바람 씨, 바로 옆 텐트에 살았는데 나를 ‘아저씨’라고 불렀지. 바람이 텐트촌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을 때 텐트를 쳐준 기억이 나네. 그때부터 나의 이웃이 됐지. 바람은 첫날에 하루 종일 잠만 자더니 잠에서 깬 뒤로 밥도 안 먹고 술을 마셨어.

바람이 살아온 이야기는 나도 잘 알지 못하지만 술로 힘듦을 견뎌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 4월쯤 바람이 사람에게 맞아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어. 거기는 여기보다 안전한지 궁금하구나.” (이기천)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도 계훈 씨를 향해 추모발언을 했다.

“몇 년 전 만났을 때부터 무척 다정하게 대해주셨고 언제나 참 쾌활한 분이셨습니다. 작년 (홈리스)추모제를 마친 다음 날 계훈 님이 차갑게 꽁꽁 언 몸으로 텐트 바로 옆에서 발견됐는데요.

계훈 님이 제게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젊은 시절, 노동조합 쟁의부장으로 8시간 노동 쟁취를 요구하며 활동했던 시절이 자신에게 너무나 빛나는 시간이었다고요. 그 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편안히 잠드셨기를 바랍니다.” (김윤영)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위원장이 강홍렬 씨를 향해 추모사를 바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위원장이 강홍렬 씨를 향해 추모사를 바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위원장은 주민회에서 조직위원으로 활동하던 강홍렬 씨를 추모했다.

“고인은 1957년 부산에서, 중산층에 유복한 가정에서 5남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젊은 나이의 이상을 펼쳐 나가던 중 결혼 생활이 파탄을 맞으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고인은 마음을 굳게 먹고 지방의 돼지농장, 닭농장 등에서 일했습니다. 지병이 악화되면서 농장생활을 할 수 없어지자 서울역 건너편 양동 쪽방촌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고인은 양동쪽방주민회 조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방송국 인터뷰, 시청 앞 집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면서 형제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을 술로 풀던 중 8월 12일 오전 10시경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고인의 장례식은 9월 24일, 양동쪽방주민 1호장으로 치러졌습니다.

평소 주위 사람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시고 본인보다 어려운 이웃을 챙기며 항상 따뜻하게 옷을 만져줬던 홍렬이 형. 분명 좋은 곳에 가셔서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부디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꿈을 마음껏 펼쳐 주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홍렬이 형.” (박종만)

김원 사진작가가 이대영 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원 사진작가가 이대영 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김원 사진작가는 동자동 쪽방주민이자 자신의 친구인 이대영 씨에게 울먹이며 추모사를 전했다.

“이대영 님은 지난 10월 25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11월 7일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11월 17일에 무연고 장례가 있었습니다.

이대영 님을 처음 만난 건 7~8년 전의 일입니다. 동자동 쪽방촌 공원에서 제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환하게 웃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멋있게 포즈를 취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다리가 불편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걷지 못해 몇 년 동안 쪽방 밖을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제 친구였습니다. 저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종이 거북이를 만들어 제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주에 보자며 인사하고 돌아서는 제게 그는 늘 고맙다고 했는데요. 이제 이별의 인사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나의 친구 이대영, 고맙습니다.” (김원)

2023 홈리스 추모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현수막에 “홈리스에 대한 혐오와 차별 금지, 당사자 권리를 중심으로 한 정책 시행!”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2023 홈리스 추모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현수막에 “홈리스에 대한 혐오와 차별 금지, 당사자 권리를 중심으로 한 정책 시행!”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더 이상 이렇게 보낼 수 없어… 더 나은 세상 만들 것”

2023 홈리스 추모문화제 참여자는 권리선언문을 통해 △모든 홈리스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집을 보장 △홈리스의 공공장소 머물 권리 보장 △홈리스 추모와 애도의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하며 “우리의 추모는 고단했을 당신의 삶을 기억하며, 더는 당신을 이렇게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우리 곁을 떠나간 동료들이 가난과 차별 없는 그곳에서 영면하길 바란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한다”고 선언했다.

추모제 이후 참여자들은 서울역 앞 지하보도, 서울스퀘어 빌딩 앞, 양동 쪽방촌, 동자동 쪽방촌 인근을 행진했다.

서울스퀘어 앞에 서 있는 행진대오. 서울스퀘어는 서울역 앞 지하보도 홈리스를 강제퇴거시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스퀘어 앞에 서 있는 행진대오. 서울스퀘어는 서울역 앞 지하보도 홈리스를 강제퇴거시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행진 중인 2023 홈리스 추모제 참가자들. 현수막에 “고단한 삶이셨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행진 중인 2023 홈리스 추모제 참가자들. 현수막에 “고단한 삶이셨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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