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인정 안 되는 ‘사각지대쪽방’
각종 복지서비스서 제외되는 세입자
쪽방 기준 모호하니 지정도 들쑥날쑥
서울시, ‘사각지대쪽방’ 논의에 크게 반발

고한길 씨가 작은 플라스틱 통에 죽은 빈대와 진드기를 모아와서 보여주고 있다. 사진 하민지
고한길 씨가 작은 플라스틱 통에 죽은 빈대와 진드기를 모아와서 보여주고 있다. 사진 하민지

80대 고한길 씨는 3년 넘게 공공개발이 미뤄지고 있는 동자동 쪽방촌에 산다. 그가 사는 곳은 사각지대쪽방. 쪽방과 다름없는 환경의 비적정주거이지만 쪽방으로 분류되지 않는 곳이다.

고 씨는 지난달 13일, 서울시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사각지대 쪽방 실태 파악 및 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여했다. 그는 질의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플라스틱 통 하나를 높게 들었다.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호흡하며 말했다.

“이게, 이게 뭔지 아십니까? 이게 진드기에다가, 아이고 숨 차. 빈댑니다, 빈대! 이걸 한두 마리씩 잡으니까 사람이 기가 막힙니다. 이거 들고 국회라도 가가지고 소독이라도 해달라고 내 몸을 벗어 볼까요? 전부 깊은 상처투성이입니다.

왜 이렇게 세월은 갈수록 비참하고, 국가에서 해준다는 쪽방(주민에 대한 복지서비스 등)마저도 (나는 제외되고) 내가 무슨 잘못한 전과가 있습니까?”

고 씨는 쪽방촌 건물에 살지만 공식적으로 쪽방주민이 아니다. 그래서 서울시가 지원하는 쪽방촌 빈대퇴치 방역 대상자가 아니다. 또한 쪽방상담소, 동행식당, 동행목욕탕, 온기창고 등 쪽방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 복지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 문제 많은 서비스인데 이 서비스를 이용조차 할 수 없다.

문제는 또 있다. 만약 동자동에 민간개발이 진행된다면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서더라도 입주 대상자로 인정되지 못할 수 있다. 공공개발이 예정대로 재개돼도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서울시, 대구시, 광주시에 있는 사각지대쪽방 사진들. 사진 하민지
서울시, 대구시, 광주시에 있는 사각지대쪽방 사진들. 사진 하민지

- 법적 정의조차 없는 ‘쪽방’

‘사각지대쪽방’이란 무엇일까. 이를 정의하려면 ‘쪽방’이 뭔지 정의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쪽방에 대한 법적 정의는 없는 상태다.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쪽방촌의 역사를 1960년대부터 추정한다. 산업화로 촉발된 도시화 과정에서 대규모로 이주한 빈곤층이 대도시에 정착하며 쪽방촌이 형성됐다고 본다. 즉, 가난한 사람들이 쪽방이라 불리는 비적정주거에서 살아온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아직 법적 정의조차 없는 것이다.

공식적인 정의가 없다 보니 쪽방의 정의도 기관마다 다르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쪽방상담소에 등록된 곳을 쪽방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2002년에 11개 쪽방 밀집 지역에 쪽방상담소가 설치(이후 1개소 폐쇄로 현행 10개)된 이후 현재까지 추가로 설치된 적은 없다.

이 때문에 구로구 가리봉동·구로2동과 관악구 대학동 등은 주거지원이나 복지서비스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구로구 쪽방의 경우 과거 구로공단 노동자가 살던 일명 ‘벌집’에서 현재는 일용직 중국 동포를 포함해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쪽방촌으로 바뀌었다.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은 고시생이 떠나고 쪽방촌이 됐다. 고시생 취침용 등으로 만들어진 곳은 가난한 중장년 1인 가구의 주거지가 됐다.

지방자치단체도 쪽방을 뚜렷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서울시는 2022년에 제정한 조례에서 ‘쪽방주민’을 ‘시장이 별도로 정한 쪽방밀집지역에서 거주하는 자’로 정의했다. 같은 해 조례를 제정한 대구시도 ‘‘쪽방생활인’을 상당한 기간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21년 연구에서 쪽방을 “일정한 보증금 없이 월세 또는 일세를 지불하는 0.5~2평 내외의 면적으로 취사·세면·화장실 등이 적절하게 갖추어지지 않는 주거공간”으로 봤다.

김준희 연구원이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김준희 연구원이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 기준 들쑥날쑥… 이 방은 화장실 있다고 쪽방 불가, 저 방은 화장실 있어도 쪽방 가능?

이처럼 쪽방에 대한 정의가 없다 보니 쪽방으로 인정되는 기준도 들쑥날쑥하다. 화장실이 딸렸거나 도배 등을 새로 했다는 이유로 쪽방으로 분류되지 않는 곳이 있는가 하면, 화장실이 있지만 쪽방으로 인정되는 곳도 있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쪽방에서 제외된 쪽방주민의 방은 여느 쪽방과 다르지 않다. 양팔을 다 뻗지 못할 정도로 작은 방도 있고 TV 한 대를 놓고 이불을 펴면 방이 꽉 차는 곳도 있다. 어떤 쪽방은 화장실과 싱크대가 있는 원룸 형태인데 쪽방으로 등록돼 있어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인해 쪽방에서 제외된 ‘사각지대쪽방’. 이곳에 사는 주민은 쪽방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복지서비스에 진입할 수 없다. 이 경우 복지서비스 제공여부는 담당자 재량에 맡겨지는 일도 일어난다.

김준희 연구원에 따르면 구로구의 한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는 ㄱ 씨는 ‘부엌은 재래식인데 화장실은 안에 있는 집이 있었다. 이 집은 (주거지원이) 될까 말까 고민하다가 신청해 봤는데 주민센터에서 안 된다고 돌려보냈다. 재차 신청했더니 (주거지원이) 됐다’고 말했다.

쪽방주민이 사각지대쪽방으로 이사할 경우 동행식당 식권 등 기존에 이용하던 복지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한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이상진(가명) 씨는 쪽방에 살다가 건물주가 ‘집을 수리해야 한다’고 요구해 계약 기간 만료 전 이사해야 했다. 평소 다리가 불편해 화장실 사용이 어려웠던 터라 화장실과 작은 싱크대가 있는 방으로 결정했다.

이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쪽방상담소에 동행식당 식권을 받으러 갔는데 ‘이사한 곳은 쪽방 등록이 안 된 곳이기 때문에 자격이 박탈돼 식권 수령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씨는 “그곳이 쪽방이 아닐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열악한 주거환경이었으며 건물 양옆, 뒤까지 쪽방건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쪽방일 줄 알았다.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70대 늙은이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서울시에 민원도 넣었지만 소용없었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결국 인근 쪽방으로 이사했다. 이 방은 화장실이 있음에도 쪽방으로 인정되는 방이다. 이 씨는 “면적이 전에 살던 곳의 반밖에 되지 않지만 쪽방상담소에서 지원하는 생필품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사각지대쪽방의 모습. “전농동 토굴집 외부. 비가 새는 지붕을 천막으로 감싸 이용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에 있는 사각지대쪽방의 모습. “전농동 토굴집 외부. 비가 새는 지붕을 천막으로 감싸 이용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일부러 사각지대쪽방 만드는 동자동 건물주, 이를 승인한 서울시

동자동 쪽방촌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보내며 서울시에 쪽방 등록 취소 요청을 하고 있다.

박승민 활동가는 “몇 달 전, 수십 년 동안 쪽방이었던 어느 건물이 쪽방에서 제외됐다. 건물주가 주민을 나가라고 내보내더니 서울시에 쪽방 등록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건물주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 건물은 그렇게 쪽방 건물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기재일 서울시 자활지원팀장은 지난 4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서울시에서 쪽방 관련 업무를 16년 동안 하면서 쪽방 등록을 취소해 준 사례는 딱 한 건뿐”이었다며 크게 반발했다.

기 팀장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민간개발을 요구하는 건물주들이 ‘서울시는 현장(쪽방촌)에 와보지도 않고 쪽방주민 수를 너무 많이 잡는다’고 주장했다. 건물주 측은 쪽방주민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유리하다. 민간개발 시 공공임대주택을 덜 지어도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에 반발한 서울시는 건물주들에게 ‘같이 가서 직접 세자’고 제안했다. 이 과정 중 건물주들이 ‘세입자를 다 쫓아내자’고 모의했다고 한다. 기 팀장은 실제로 세입자를 다 내쫓은 건물은 한 곳뿐이었으며, 이 건물에 대한 쪽방 등록을 취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 팀장은 “그 건물은 쪽방 치고는 상당히 양호한 곳이었다. 방 2개에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살다 살다 그런 곳(쪽방인데 그렇게 깔끔한 곳)은 처음 봤다. 건물주는 여인숙으로 변경할 거라고 했다”며 “세입자들은 다 쫓겨난 상태고 (건물주가) 더 이상 쪽방으로 쓰지 않겠다는데 그걸 우리(서울시)가 쪽방으로 우겨야 하는 이유가 뭔가? 내 건물이 아닌데 내가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기 팀장의 주장 중 선후 관계가 바뀐 게 있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4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건물이 텅 빈 상태에서 서울시가 쪽방 등록을 취소해 준 게 아니다. 쪽방 등록이 먼저 취소되면서 주민들이 떠나가게 된 것이다. (동행식당 식권 등)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니 주민들은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 그 건물에 사는 분이 계신다”고 설명했다.

박승민 활동가도 같은 얘길 했다. 박 활동가는 “해당 건물에 살던 주민들은 전날까지만 해도 쪽방주민이었는데 (서울시의 쪽방 등록 취소 이후) 하루아침에 쪽방주민이 아닌 게 됐다. 그래서 그동안 쪽방상담소에서 받았던 여러 지원이 즉시 끊겼다”고 비판했다.

박승민 활동가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박승민 활동가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 행정의 자의적 기준 말고 포괄적 정의 필요… 서울시 “쪽방 인정되는 건물로 이사 가셔라”

서울시는 ‘사각지대쪽방’이라는 용어 자체에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기재일 팀장은 “도대체 사각지대쪽방이란 말을 누가 하나? 쪽방이 사각지대인데 거기서 또 사각지대라니 무슨 말인가?”라며 따져 물었다.

또한 기 팀장은 “그러면 고시원과 쪽방은 어떻게 다른가? 고시원은 (쪽방보다) 넓나? 고시원은 화장실 하나를 여러 명이 쓰는 구조 아닌가? 보증금 없이 월세 내고 1.5~2.5평 정도이니 고시원도 쪽방인가? 그렇다면 서울에 쪽방은 10만 개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사각지대쪽방이라는 용어가 쓰이는 상황 자체에 분노했다.

그런데 기 팀장의 말과 달리, 쪽방으로 인정되는 고시원이 있다. 동자동 쪽방촌의 남산리빙텔, 남대문 쪽방촌의 25시고시원 등이다. 이동현 활동가는 “쪽방과 고시원의 차이는 관료가 (쪽방으로)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주민의 생활과 거주공간의 환경면에선 크게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서울시도 쪽방, 고시원, 여인숙 등 비적정주거 사이에 사실상 차이가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가 2017년에 발표한 ‘쪽방촌 실태조사를 통한 쪽방상담소 기능 재정립 방안’에 따르면 “주거취약계층이 이용하는 쪽방, 여관·여인숙, 고시원은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며 좁은 면적, 화장실 등 주거시설을 공유해야 하는 형태, 높은 월세 등을 나열한다.

서울시는 “고시원, 여관·여인숙과 쪽방이 제도적으로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관련 법규가 있느냐 하는 점”이라며, 고시원과 여관·여인숙이 관할 세무서에 신고해야 하는 영업의 형태로 이뤄지는 반면 쪽방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어 “다양한 형태의 용도를 가진 건물들이 쪽방상담소의 판단에 따라 쪽방 건물로 지정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면서, 당시를 기준으로 여관·여인숙 216개 동과 고시원 51개 동이 쪽방으로 지정됐다고 설명한다.

즉, 쪽방과 다른 비적정주거의 차이는 영업 여부뿐이며 쪽방을 지정할 땐 영업 여부와 관계없이 서울시 판단에 따라 지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서울시의 자의적 판단은 서울시의 쪽방촌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시는 2014년, 이른바 5개 쪽방촌(돈의동, 창신동, 남대문, 서울역, 영등포)에 동대문구 전농1동과 중구 중림동 지역을 쪽방밀집지역으로 포함했다. 전농1동은 창신동과 묶어 ‘동대문쪽방촌’으로, 중림동은 남대문과 묶어 ‘남대문쪽방촌’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2018년 서울시 쪽방촌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쪽방밀집지역에 전농1동이 제외되고 5개 쪽방촌만 명시돼 있다. 전농1동이 포함돼 있던 전년도 보고서에 비해 조사 대상 건물도 26동이 줄어들었다.

2023홈리스주거팀은 “2018년부터 쪽방에서 제외된 전농동 지역은 현재 도시정비형재개발사업(민간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나 쪽방주민에 대한 임대주택 공급 등 재정착 대책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이렇게 쪽방에서 제외될 경우 해당 주민은 다양한 복지 및 주거권 공백 상태에 처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토론회에서는 쪽방의 기준을 더 포괄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준희 연구원은 “쪽방을 면적, 보증금 유무, 거처 유형, 필수설비 여부 등의 기준으로 엄격하게 정의할 경우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취약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쾌적한 주거 생활 유지에 필요한 환경과 시설을 갖추지 못한 좁은 거처’ 등과 같이 포괄적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시는 쪽방이나 사각지대쪽방에 대한 기준 마련보다 쪽방으로 인정되는 곳으로의 이주를 제시했다. 기재일 팀장은 “동자동 쪽에 공실률이 꽤 있다. 그러면 (사각지대쪽방 문제를) 언론에 제보하고 맨날 나가서 난리 칠 게 아니라, 저 사람들(사각지대쪽방 주민)을 쪽방상담소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데로 옮겨주고 (사각지대쪽방 건물은) 구청에 불법 건축물로 얘기(신고)해서 그런 짓을 못 하도록 해야 한다. 왜 서울시 자활지원팀에 (사각지대쪽방 문제를) 물어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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