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홈리스 추모행동]
서울스퀘어, 서울역 홈리스 강제퇴거
1인 시위 이후 퇴거행위 줄었지만 여전
중구 물청소 시 물 맞고 쫓겨나기도
홈리스 당사자 “쫓아내는 건 기본권 침해”

지난 6월 20일, 서울스퀘어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홈리스행동이 사건이 발생한 지하보도로 내려가서 이어 말하기를 하고 있다. 사진 홈리스행동
지난 6월 20일, 서울스퀘어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홈리스행동이 사건이 발생한 지하보도로 내려가서 이어 말하기를 하고 있다. 사진 홈리스행동

- 물 맞고 쫓겨나는 홈리스

“딱 4시예요. 나가야 되는 시간이 새벽 4시. 딱 4시 되면 물 뿌려요. 물 안 맞으려면 그 전에 나가야 해. 서둘러야 해. 내가 볼 때는 물총 같아 보이더라구. 나 진짜, 저 위에서 예고도 없이 물총 맞고 물 먹었어요.

근데 진짜 짜증 나는 건 물총을 쏘는 게 아니야. 딱 잠들려고 할 때, 그때 나가라고 하는 거야. 얼마나 성질나요? 너무 성질나. 자야 되는데.”

14일 오후 8시, 서울역 앞 지하보도에서 만난 에버그린(가명)은 인사를 나누기 전에 말부터 쏟아냈다. 침낭 같은 건 안 주고 지겨운 귤이나 나눠주고 가버리는 기독교인들, “노숙자”를 “사람 새끼” 취급도 안 하는 경찰들, 대한민국 정치와 교육 문제까지 한참 얘기하고 나서야 에버그린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60대 초반 여성. 홈리스 생활을 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자격증도 땄지만 삶은 쉽지 않았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면서 노래 실력을 살려 합창단 활동을 한다.

날이 추워지니 기자들이 와서 말을 많이 거는 모양이다. 에버그린은 “형식적으로 쓰지 말고 리얼하게(사실적으로) 써야 돼. 그게 핵심이야. 리얼한 게 뭐냐고? 지금 내가 사는 게 리얼이지, 뭐가 리얼이야?”라고 말했다.

에버그린은 또 “(기자로서) 우리(홈리스) 삶을 쓰려면 제대로 쓰라고. 제대로 안 쓸 거면 뭐나 베풀고 쓰라고 해. 와서 말만 시키지 말고. 주는 거 없이 말만 받아가. 제대로 쓰지도 않고. 도둑년들이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딸꾹질하듯이 빈손을 오므렸다.

서울스퀘어와 연접한 서울역 지하 연결통로에는 이곳을 관리하는 부서가 서울시 중구청임을 밝히는 표지판이 있다. 그런데 민간기업인 서울스퀘어 보안직원이 홈리스를 강제퇴거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규탄하고자 홈리스행동은 ‘이곳은 공공시설물이며 서울스퀘어가 홈리스를 쫓아내고 괴롭히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표지판 아래 붙였다. 사진 홈리스행동
서울스퀘어와 연접한 서울역 지하 연결통로에는 이곳을 관리하는 부서가 서울시 중구청임을 밝히는 표지판이 있다. 그런데 민간기업인 서울스퀘어 보안직원이 홈리스를 강제퇴거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규탄하고자 홈리스행동은 ‘이곳은 공공시설물이며 서울스퀘어가 홈리스를 쫓아내고 괴롭히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표지판 아래 붙였다. 사진 홈리스행동

- 중구 “주무시는 분들 일일이 깨우면 청소 작업에 딜레이가…”

“야, 너도 한마디 해. 이 사람(기자)이 증인이야. 우리한테 물 뿌리고 쫓아내는 놈들에 대해서 너도 얘기해.” 에버그린이 한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장애자’ 동생인데 진짜 착해요. 나 배고플 때 자기 것 나눠주고. 그러니까 사람이 의리라는 게 생기잖아.” 에버그린은 여기까지 얘기하고 산타 복장을 한 기독교인들을 향해 자리를 떠났다.

에버그린이 말한 “물 뿌리고 쫓아내는 놈들”은 서울시 중구다. 정확히 얘기하면 중구가 계약한 청소업체다. 중구 치수과는 22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분기마다 한 번씩 (지하보도) 대청소를 하고 있다. 청소 2주 전에 안내문을 크게 (출력해서) 지하보도마다 부착해 고지한다”고 설명했다.

물 맞고 쫓겨났다는 에버그린의 말을 전했다. 주무시는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모두 이동하고 나면 청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니 “청소를 내가 하는 게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청소하는 분들 입장도 있을 것이다. 주무시는 분들을 일일이 다 깨우면 시간이 소요되고 청소 작업에 딜레이(지연)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20일, 홈리스행동은 서울스퀘어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 후 사건이 발생한 지하보도로 내려가 이번 사건을 규탄하는 스티커를 벽면에 붙였다. 한 홈리스 당사자가 벽면에 부착한 스티커엔 이러한 문구가 쓰여 있다. “서울역 앞 지하보도. 소유자 : 우리 모두(공공시설물). 금지사항 :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기(특히 서울스퀘어), 홈리스 쫓아내기, 홈리스 괴롭히기” 사진 홈리스행동
지난 6월 20일, 홈리스행동은 서울스퀘어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 후 사건이 발생한 지하보도로 내려가 이번 사건을 규탄하는 스티커를 벽면에 붙였다. 한 홈리스 당사자가 벽면에 부착한 스티커엔 이러한 문구가 쓰여 있다. “서울역 앞 지하보도. 소유자 : 우리 모두(공공시설물). 금지사항 :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기(특히 서울스퀘어), 홈리스 쫓아내기, 홈리스 괴롭히기” 사진 홈리스행동

- 임시주거비 받아도 빈대 득실대는 고시원밖에

에버그린의 “착한” 동생 ㄱ 씨는 홈리스 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IMF 이후 서울역 앞 지하보도와 쪽방을 왔다 갔다 하며 지냈다. 임시주거비를 지원받아 고시원에도 잠깐 살았다. 그런데 고시원에 빈대가 득실거려 더는 살지 못하고 서울역 앞 지하보도로 왔다.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긁어도 가려움이 가시지 않는다.

임시주거비를 지원받아도 입주할 수 있는 곳은 쪽방, 고시원 등 비적정주거가 대부분이다. 지원 상한액이 월 30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주거급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집을 찾다 보면 홈리스는 비적정주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쪽방과 고시원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홈리스가 임시주거비 지원 제도를 포기하고 다시 서울역 앞 지하보도 같은 거리로 나선다. (관련 칼럼: 모든 홈리스를 위한 적정 주거, 지금 당장! / 이동현)

빈대를 피해 서울역 앞 지하보도로 온 ㄱ 씨는 또 다른 강제퇴거를 경험했다. 그는 “내가 (홈리스 생활한 지) 20년 됐는데 그렇게 쫓아내는 건 처음 봤어요.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러네. 근데 다들 (쫓아내지) 못 하게 하니까 요즘은 또 잠잠하네요. 여기가 개인 땅(시설)이 아니에요. 근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당근 활동가가 서울역 앞 지하보도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 14일, 당근 활동가가 서울역 앞 지하보도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서울스퀘어, 법적 권한 없이 홈리스 강제퇴거시키는 중

ㄱ 씨가 말한 곳은 서울스퀘어(구 대우빌딩)다. 반빈곤운동단체 활동가들이 서울스퀘어의 홈리스 강제퇴거행위를 처음 목격한 건 지난 6월이었다. 홈리스 당사자들로부터 ‘올 3월에도 쫓아냈다’고 듣게 됐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에 따르면 서울스퀘어 보안직원은 서울역 앞 지하보도가 ‘법적으로 우리 관리 구역’이라며 홈리스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통로는 ‘법적으로’ 서울스퀘어의 관리 구역이 아니다. 이곳의 소유자와 관리자는 서울시 중구청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무상으로 귀속된 도시계획시설이다. 즉, 공공시설물이며 공공장소라는 뜻이다. (관련 칼럼: 서울스퀘어가 서울역 홈리스를 내쫓고 있다 / 재임)

공공장소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의 ‘지하연결통로 설치 및 유지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하연결통로 중 도시계획시설은 “사회·공중에의 100% 개방성 및 도시기반시설로서의 속성으로 인해 공적·공공적 사용에 제공”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서울스퀘어는 이 통로를 통해 빌딩으로 출입하는 손님에게 방해가 된다며 홈리스를 강제퇴거시켜 왔다.

이에 반빈곤운동단체와 홈리스 당사자들은 지난 6월 27일부터 ‘화목한 지하도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피켓을 들고 지하보도에 서서 1인 시위를 하는 활동이다. 피켓에는 “홈리스 여러분! 서울스퀘어 보안직원이 자리를 옮기라고 명령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중앙지하도는 중구청 소유 공공부지입니다. 자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해당 시위 이후 ‘서울스퀘어 관리구간’이라고 적혀 있던 시설물 경계 표지판은 ‘중구청 관리구간’으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서울스퀘어의 퇴거행위도 잠잠해졌다. 이재임 활동가는 20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화목한 지하도 지킴이’ 활동 이후 홈리스 당사자들이 서울스퀘어에 직접 항의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많이 잠잠해졌지만 서울스퀘어 영업시간 전후로 퇴거행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에 따르면 중구 생활보장과 자활주거팀이 서울스퀘어에 홈리스 강제퇴거행위를 하지 말라고 전했다 한다. 하지만 1인 시위가 없는 날에는 여전히 서울스퀘어의 강제퇴거행위가 일어나는 중이다. 지난 22일, 해당 지하보도의 관리주체인 중구 건설관리과 도로행정팀에 문의하니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의 공존할권리팀은 ‘공공장소의 사유화·영리화 중단, 홈리스의 공공장소 이용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스퀘어, 서울교통공사, 서울시 누구도 (홈리스 강제퇴거 문제를) 책임지지 않고 있고, 보안직원들에 의한 강제퇴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민간이 영리 목적으로 공공장소를 배타적인 공간으로 사유화하는 횡포”라고 규탄했다. (관련 문서: 2023 홈리스추모제 요구서)

지난 14일, 변미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활동가가 서울역 앞 지하보도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피켓에는 “홈리스 여러분!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이 자리를 옮기라고 명령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중앙지하도는 중구청 소유 공공부지입니다. 자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 14일, 변미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활동가가 서울역 앞 지하보도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피켓에는 “홈리스 여러분!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이 자리를 옮기라고 명령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중앙지하도는 중구청 소유 공공부지입니다. 자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홈리스 당사자 “강제퇴거는 기본권 침해”

홈리스 당사자인 김정수(가명) 씨도 같은 얘길 한다. 김 씨는 “자기네들(서울스퀘어)이 원하는 시간 전에 여기 들어오면 나가라고 그래요. (서울스퀘어 영업시간이 끝나는 오후) 10시인가 11시 넘어야 들어오는 걸 허락하고. 내가 그렇게 함부로 당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가라고 하면 나갈 때가 있지”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김 씨는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큰돈을 잃는 피해를 봤다. 이후 술에 취해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흔이 넘은 어머니가 눈에 밟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홈리스 생활을 시작했다.

김 씨는 서울스퀘어에 법적으로 홈리스를 쫓아낼 권한도 없지만, 이와 상관없이 강제퇴거는 잘못된 거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인간을 세상에 보내실 때 우리 인간은 모두 권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권리를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데요, 이걸 기본권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뜻입니다.

그거(기본권)를 서울스퀘어가 뭔데 자기네들 멋대로 좌지우지하니까 그게 잘못된 거지요. 한 인간의 기본권은 누구도 자기네들 마음대로 제재할 수 없습니다. 제재하면 문제가 됩니다.”

또한 김 씨는 ‘화목한 지하도 지킴이’ 활동 이후 서울스퀘어가 홈리스를 쫓아내는 일이 줄어서 다행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홈리스센타(홈리스행동)’가 있어가지고서 우리(홈리스)를 대표해서 그런(서울스퀘어에 홈리스를 퇴거시킬 권한이 없다는) 주장을 해주셔서 감사한 것입니다. 화요일날하고 목요일날,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어필(1인 시위)을 하십니다.

이제 서울스퀘어는 우리를 멋대로 하지 못합니다. ‘화목한 지하도 지킴이’ 활동날에는 그놈들이 그냥 째버리는(도망가는) 것입니다. 홈리스센타가 안 나오는 날에는 제재하기도 하지만요.”

지난 21일, 서울스퀘어에 입장을 묻기 위해 연락했지만 아직 답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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