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지원가 사업 예산 23억 원 복구?
알고 보니 고용 목표 인원 100명 늘었다
발달장애인들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고 비판
사업이 보건복지부로 넘어가기까지 했다
“우리는 노동자다. 복지의 대상자가 아니다!”

이 기사는 발달장애인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썼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의 ‘이해하기 쉬운 정보 제작 기준’을 참고했습니다.

- 한 문장에 하나의 정보만 담는다.
- 단순한 문장 구조로 짧게 작성한다.
- 구어체로 작성한다.
- 줄임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 복잡한 단어, 어려운 단어, 전문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 어렵지만 사용해야 하는 단어는 쉬운 설명을 함께 제공한다.
- 어려운 단어가 많은 경우 별도의 단어목록을 만들어 설명을 제공한다.
-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로 기재한다.
- #, &, ~, % 등의 문장부호 사용을 자제한다.

발달장애인들이 “동료지원가 살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인들이 “동료지원가 살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인들이 열심히 투쟁해서 동료지원가 사업(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연계사업) 예산 23억 원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들은 여전히 기획재정부를 규탄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23억 원이 살아난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아닙니다. 기획재정부가 고용 목표 인원을 100명이나 늘려 버린 것입니다. 예산은 똑같은데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월급은 더 줄어듭니다.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은 작년 12월 27일 오후 3시,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기획재정부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은 “기획재정부는 보여주기식으로 예산 복구하고 사실은 동료지원가 사업을 망쳤다. 우리와 함께 다시 계획을 세워라”라고 외쳤습니다.

한 활동가가 “23억으로는 400명이 먹고 살 수 없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23억으로는 400명이 먹고 살 수 없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예산은 사실상 줄어들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전 장관은 작년 10월 26일에 “동료지원가 일자리가 축소되지 않도록 적극 살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의 강력한 투쟁 덕분에 기획재정부 장관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 23억 원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기획재정부가 고용 목표 인원을 100명이나 늘렸습니다. 작년엔 고용 목표 인원이 300명이었는데 올해부턴 400명이 됩니다.

발달장애인들은 “현실적인 고용 목표 인원은 265명이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동료지원가의 월급을 최저시급 수준으로 유지하고, 사대보험에도 가입해야 하고, 퇴직금도 적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슈퍼바이저 월급과 참여자 수당도 높여야 합니다. 이걸 다 하려면 예산이 더 필요한데 지금은 너무 적습니다.

송효정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사무국장은 1월 3일에 한 전화 통화에서 “고용 목표 인원을 고집할 게 아니라 동료지원가 사업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은 “현실적인 고용 목표 인원을 300명에서 265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작년에는 고용 목표 인원을 다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작년에 동료지원가로 고용된 사람은 187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료지원가 남태준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동료지원가 남태준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동료지원가 남태준 씨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현재 우리는 일자리를 잃게 될까 봐 다 두려워하는 중입니다. 저 남태준 활동가를 포함한 모든 동료지원가가 울상인 상태입니다. 이거는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잘못 짠 거라고 봅니다. 동료지원가 일자리를 완전히 정규직화 하라!” (남태준)

동료지원가로 일하는 박경인 씨도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물가가 올라가서 살기가 힘들어요. 발달장애인도 월급 받으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월급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동료지원가 사업이 이렇게 엉망이 되는 걸 보면서 대한민국 정치, 정말 무서워졌어요.” (박경인)

- 낮은 사업 실적? 발달장애인 탓이 아니라 정부 탓이다

고용 목표 인원 300명을 다 채우지 못한 건 누구 때문일까요?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는 ‘실적이 낮다’, ‘예산을 제대로 다 쓰지 못한다’면서 발달장애인 탓을 했는데 사실일까요? 발달장애인들이 능력이 없어서 벌어진 일일까요? 동료지원가 사업이 가치가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이 사업을 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업을 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와 기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은 하루에 3시간 일하면서 20명의 참여자를 만나야 하는 실적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동료지원가의 업무를 지원하는 사람을 슈퍼바이저라고 하는데요, 슈퍼바이저는 기관당 1명만 인정됐습니다. 기관이 슈퍼바이저를 여러 명 뽑아도 1명에 해당하는 수당 50만 원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적은 운영비도 문제입니다. 이렇게 적은 예산을 가지고 동료지원가 월급도 주고, 슈퍼바이저 수당도 주고, 사업 실적 보고와 회계 같은 서류 작성까지 다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는 동료지원가로 일하던 설요한 씨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동료지원가 사업을 하는 기관에서도 동료지원가를 더 채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은 “그렇지만 우리는 중증장애인이 보람을 갖고 일하는 일자리를 유지한다는 이유 하나로 버텨왔다. 최저임금조차 보장하기 어려운 사업을 만들어 놓고 채용 인원만 늘리다니, 이건 ‘보여주기식 사업 살리기’일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박경인 씨는 크게 분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면 누가 동료지원가 사업을 하려고 할까요? 아무도 일을 안 하려고 할 거고 그러면 또 실적이 낮아질 겁니다. 실적이 낮다고 동료지원가 사업을 없앨 거라고 우리를 협박할 겁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왜 그렇게 하시나요? 당장 2024년 1월부터 동료지원가 사업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답이 안 나옵니다. 우리의 미래가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박경인)

한 활동가가 “동료지원가 사업을 복지가 아닌 노동으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그의 뒤로 국회의사당 본관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동료지원가 사업을 복지가 아닌 노동으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그의 뒤로 국회의사당 본관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동료지원가 사업이 복지부로? “장애인은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이 고용노동부에서 보건복지부로 가게 된 것입니다. 예산 23억 원이 보건복지부로 가면서 ‘장애인 동료상담’이라는 항목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동료지원가 사업’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동료상담과 동료지원가 사업은 다릅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하는 동료상담은 장애인 동료끼리 고민을 들어주고, 어려운 것은 함께 해결해 나가는 모임입니다. 동료지원가 사업은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동료 중증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고 취업을 도와주는 사업입니다.

게다가 하나의 당당한 일자리였던 사업이 복지부로 가면서 복지서비스처럼 돼 버렸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중증장애인인 우리는 더 이상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하나의 노동자로, 당당한 시민으로 대우받기를 바랐다. 중증장애인이 일하는 것 역시 ‘사람의 노동’이다. ‘장애인 노동’이 따로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고용노동부에서 일하는 동료지원가로 남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남태준 씨는 기획재정부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동료지원가 사업을 복지부로 이전하다니, 기획재정부는 장애인식 개선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중증장애인은 복지 수혜자로만 남기 때문입니다. 이게 뭡니까? 중증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라!” (남태준)

동료지원가 박경인 씨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동료지원가 박경인 씨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박경인 씨는 동료지원가 사업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러 간 추경호 기획재정부 전 장관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동료지원가 사업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추경호 기획재정부 전) 장관님은 ‘나 몰라라’ 하면서 국회의원(선거 출마) 준비를 하러 도망쳤다고 합니다. 동료지원가 사업을 복지부로 넘긴 것과 예산을 이렇게 정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도망가 버렸습니다.” (박경인)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기획재정부는 우리 사업을 남기는 척하면서 사실은 없애려는 거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기획재정부는 우리 사업을 남기는 척하면서 사실은 없애려는 거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발달장애인들 “동료지원가 사업을 우리와 함께 다시 만들어라”

발달장애인들은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를 향한 요구사항을 밝혔습니다.

첫째는 고용 목표 인원을 현실에 맞게 265명으로 조정하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은 “현재 고용돼 있는 187명의 고용은 유지하고, 265명까지 점차 늘리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둘째는 동료지원가 월급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년 월급은 89만 원이었습니다. 정부는 올해에도 89만 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작년보다 4만 원 올려서 93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93만 원에는 하루 3시간씩 주 5일 일한 것, 사대보험 가입과 퇴직금 적립에 드는 돈이 포함돼 있습니다.

셋째는 슈퍼바이저에 관한 것입니다. 작년에는 슈퍼바이저 수를 기관당 1명까지만 인정했습니다. 동료지원가가 몇 명이든 상관없었습니다. 수당은 1명에 50만 원이었습니다. 기관이 슈퍼바이저를 여러 명 뽑아도 50만 원밖에 못 받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은 “동료지원가 수에 따라 슈퍼바이저 수를 유동적으로 뽑고, 동료지원가 1인당 슈퍼바이저 수당을 36만 원 지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넷째는 참여자 수당입니다. 참여자는 동료지원가에게 일자리 상담을 받는 장애인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에게 주는 수당은 5천 원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은 “4100원 올려서 9100원을 줘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동료지원가에게 참여자를 6천 명이나 발굴하라고 압박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참여자 수를 3975명으로 적게 잡아서 실적 압박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연구비 신설에 관한 것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은 동료지원가 사업을 잘 만들기 위해 예산을 들여서 사업의 의미와 방향을 정리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