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사업 시작한 첫 해, ‘실적 부담’에 설요한 사망
근본적 제도 개선 하지 않은 채 ‘장애인 일할 수 없는 구조’ 방치
정부는 ‘취업 실적 저조’ 탓하며 전액 삭감
동료지원가 사업 참여 기관들 ‘비상’

2024년도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 지출계획안 총괄표 중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2024년도 예산안이 전액 삭감됐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예산 23억 100만 원을 내년도에 16억 1,900만 원으로 낮춰서 제출했는데 기획재정부는 이마저 모두 삭감했다. 
2024년도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 지출계획안 총괄표 중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2024년도 예산안이 전액 삭감됐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예산 23억 100만 원을 내년도에 16억 1,900만 원으로 낮춰서 제출했는데 기획재정부는 이마저 모두 삭감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 예산 23억 원이 전액 삭감된다. 일명 ‘동료지원가 사업’이라고 불리는 이 일자리는 중증장애인(동료지원가)이 장애인을 만나 취업을 연계해주는 사업으로, 비경제활동 또는 실업 상태에 있는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산이 사라졌으니 내년에 이 사업은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 장애인 일할 수 없는 구조 방치한 채 ‘취업 실적 저조’ 탓하며 전액 삭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 개 보장 등을 요구하며 2017년 11월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85일간 점거했다. 그 성과로 2019년 해당 사업이 만들어졌다. 취업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동료지원가는 올해 기준 월 89만 원(4대 보험 포함)을 받으며 60시간 일한다. 만약 자신이 상담하는 장애인이 실제 취업지원프로그램에 연계되면 연계수당으로 2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올해 6월 30일 기준 전국에서 187명이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다. 내년에 이 사업이 사라지면 이들은 바로 실직자가 된다.

예산이 전액 삭감된 배경에는 ‘실적 저조’로 불용 처리되는 예산이 지속해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첫해부터 중증장애인이 실제 수행하기엔 어려운 과도한 실적을 요구해서 장애계에선 지속해서 제도 개선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듣지 않았고 결국 사업 첫해인 2019년 12월 전남 여수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던 설요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월급은 적은 데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 게다가 10일에 있을 사업 점검을 앞두고 지나치게 많은 서류작업이 몰려 더욱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동료지원가 스스로 목숨 끊어, 2019년 12월 9일, 비마이너)

당시 고인은 한 달에 20회(4명*5회) 상담하고 이에 따른 상담일지 작성, 월 1회 이상 주간·월간 사례회의를 하고서 65만 9,650만 원(실수령액)을 받았다. 설요한 씨 사망 이후 제도는 조금씩 변화되어 왔으나 근본적인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동료지원가 개인에게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중증장애인을 취업에 연계시키는 것이 목적임에도 이것이 실제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비장애중심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이 취업할만한 곳은 많지 않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가 장애계와 함께 마련해야 함에도 이러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최근 예산만 꾸준히 삭감해 왔다. 장애인이 일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동료지원가 개인에게 떠맡겨 온 셈이다.

사업 첫해인 2019년 13억 4,900만 원이었던 예산은 이듬해인 2020년에는 29억 5,100만 원, 2021년에는 29억 1,400만 원이었다가 2022년에는 27억 6,800만 원, 2023년에는 23억 원으로 삭감됐다. 이번에도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16억 1,900만 원으로 낮춰서 제출했는데, 기획재정부가 이마저 전액 삭감하면서 사업은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2023년도 고용노동부 예산안 자료.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최근 5년간의 예산표. 
2023년도 고용노동부 예산안 자료.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최근 5년간의 예산표. 

- 내년에 전원 해고? 동료지원가 사업 참여 기관들 ‘비상’

매번 예산이 삭감될 때마다 사업에 참여하는 동료지원가 수는 줄었고, 동료지원가들이 만나는 장애인의 수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년에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 각 기관이 고용했던 동료지원가들은 전원 해고된다.

이로 인해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장애인단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는 8일 성명을 발표하고 11일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앞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11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사업 폐지를 규탄하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자협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11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사업 폐지를 규탄하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한자협

한자협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은 국가적 차원의 책임이자, 장기적으로 만들어 갈 과제이기 때문에 몇 푼의 예산이나 실적을 근거로 폐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면서 “중증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해당 사업은 폐기나 예산 삭감이 아닌 증액과 제도 개선을 포함하는 장기적 비전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번 예산 삭감은) 중증장애인의 노동할 권리는 물론,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해나가는 중증장애인의 생존권마저 앗아 가는 패악”이라고 규탄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도 15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활동하는 발달장애인 7명 중 5명이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는 “동료지원가 사업은 단순히 우리의 취업을 위한 일자리가 아니다.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는 우리의 소중한 일자리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이 일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모여 노력하고 함께 일하고 있는지 다 같이 모여서 소리 지르자”며 많은 참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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