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를 보고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아내와 함께 보자고 약속한 걸로 기억했다. 그러나… 웁쓰. "저번 주에, 나 그거 보고 왔어."라며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는 것 아닌가. 이 배신감은 뭐지?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함께 보자고 한 건 다른 영화였단다. 그랬었나? 내 뇌세포의 작용방향은 전혀 다른 쪽(도가니)을 향하고 있는데…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속에 파묻히기 위해’ 중간에서 맨 앞자리를 선호한다.(휠체어를 타는 아내와 함께 갈 때는 절대로 앉을 수 없는. 휠체어석은 맨 앞이나 맨 뒤에 있다.)

 

영화는 자애학교의 신입 미술교사 인호(공유 분)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인호는 교장의 부드러우면서도 협박적인 이른바 ‘학교발전기금’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후에 이 기금의 정체를 알게 된 그는 복잡한 심경을 겪게 된다. 그리고 자애학교에서 그간 일어난 성폭력 사건이 인호의 자각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그간의 상처를 숙명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포기한 학생들은 인호의 손길을 어려워한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열었고, 지역에 인권운동을 하는 유진(정유미 분)이 가세하며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권선징악형 픽션과 다를 게 없다. 문제는 다음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서술한다. 해당 교육청은 방과 후에 일어난 일이니 시청을 찾아가라 한다. 이미 다녀온 시청에서도,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니 교육청을 찾아가라고 했다. 경찰서 역시 수사는커녕 학교 당국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척’만 한다. 피해 학생들과 인호의 편이라고 믿어왔던 검사도, 정의를 추구해야 할 판사도 당사자들의 한 줌 희망에 배신의 칼을 꽂았다. 장애인생활시설의 카르텔적 양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도가니’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실화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이야기의 축소판이다. 픽션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주체들의 실제 경험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음의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시청과 교육청은 이 사건의 책임을 서로 미룬다. 기숙사가 있는 이 학교는 학생들이 기숙사에 기거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보통 특수학교는 ‘부설’로 생활시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방과 후의 일들은 ‘생활시설 내에서의 일’로 간주한다. 교육청에서는 해당 사건을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발뺌할 수단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자애학교 뿐 아니라 특수학교 대부분이 그러하다. 사실 이러한 학교들은 학교이전에 복지시설로 설립된 것이고, 시설의 구성원이 늘어나고 학령기 아동과 청소년이 늘어나다 보니 학교시설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의 ‘생활하는 곳’은 보건복지부, 시, 군·구청 관할인 셈.

 

영화에 대한 반응은 ‘아, 그런 일이 있었어?’이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해 생활시설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감수성은 더욱 깊은 곳에 있다. 성폭력이라는 주제는 생활인들이 당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인권침해 중 하나다. 개개인 자치권을 시설의 관리자들에게 내놓기를 강요당하게 되어, 민주주의 일반에서 발하는 내 몸과 내 소유물, 자유의지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다. 다만 그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장애여성,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어린 학생들에 대한 성폭력은 일상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먼 이야기가 아닌 우리와 아주 밀접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언론이 전한 바를 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발생한 장애인 관련 성폭력 범죄는 385건으로 지난해 8월 187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상한 점은 이러한 사건이 법원에만 들어가면 판사는 이 범죄가 얼마나 중한지를 보는 것이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도 판사는 일단 피고들의 죄는 인정했지만, 오랫동안 사회봉사를 해왔다는 점을 근거로 가볍게 처벌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복지를 소수에게 떠넘긴 결과가 아닌지 의심해 보자. 결국 우리가 묵인한 결과이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너무 잔인한 일일까.

 

사실 장애인시설 내에서의 폭력은 꾸준히 폭로되어 왔다. 방송매체들의 현장고발프로그램에서 이러한 사건들이 드러났고, 그와 더불어 비슷하고 다양한 문제들(개인이 개인을 오랫동안 괴롭히는)도 그 나름의 심각성을 이야기해왔다. 10여 년 전쯤 해결된 청강장애인 특수학교 에바다학교는 장애인에 대한 일상적 폭력의 종합백화점이었다. 성폭력은 물론이고 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각 지역구 단위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이 있고, 국회, 경찰, 지방법원을 포함한 법체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야기(실제 사건이 아니라 작가의 언어가 들어가거나, 렌즈의 영상들)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이런 이런 짓을 한 못된 놈’을 양심의 교수대에 올려놓기 위함이 전부는 아니다. 독자나 관객이 해야 할 일은 ‘오! 이런 일이 있었네.’가 아니다. 더불어 이 글의 필자가 이러한 평을 쓰는 건 ‘장애인 문제가 이러합니다. 작가님, 감독님, 장애인 문제를 다뤄줘서 고마워요.’하며 관심을 구걸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서로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며, 권력(관계)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과 성찰을 권유하는 이유에서다.

 

'하늘의 별은 주위가 어두울수록 잘 보이는 법'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저 '하늘에 떠 있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보이는 별이 되고 싶기보다는,

지구의 대기권 밖에서 다른 별들과 어울리며 안부의 인사를 할 수 있는

그런 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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