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입어
2008년 여름 ‘동료상담’ 참여로 장애인운동 시작
자립생활센터‧야학 만들며 강원도 지역 투쟁 나서
신장 투석으로 오랜 시간 고생… “아까운 인재 잃었다”
강원도 속초에서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해온 속초 아우름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아우름센터) 이재균(46세) 소장이 병세가 악화되어 지난 14일 사망했다.
이 소장은 대학 졸업 후 20대 중반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를 입었다. 고인과 오랫동안 함께 활동한 김용섭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원주센터) 소장에 따르면 2008년 여름, 원주센터가 상지대 기숙사를 빌려 2박 3일 동안 진행한 동료상담에 이 소장이 참여하면서 장애인운동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김 소장은 고인을 처음 만났던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나도 강원도 살지만 속초 지역은 잘 몰랐어요. 그때 젊은 친구가 찾아왔는데,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강원도는 서울처럼 여러 정보를 제공받을 곳도 없고, 속초는 기차도 안 다니니까.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을까. 대단한 친구구나. 저는 그래도 손은 쓸 수 있는데 그 친구는 목(경추)을 다쳐서 손도 못 써요. 아예 전신마비. 그땐 장애인콜택시도 없고 활동지원서비스도 없을 때니…… 저도 그랬지만, 젊은 친구가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텐데 대단하죠.”
원주와 속초는 ‘강원도’라는 동일한 행정구역으로 묶이지만,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속초에서 원주 오는 길은 원주에서 서울 가는 길보다 더 오래 걸린다. 속초에서 원주까지, 자동차로만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2021년 기준, 속초시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운행 대수는 8대, 시내버스 39대 중 저상버스는 3대에 불과하다. 10년 전 상황은 더 처참했을 것이다. 그 거리를 20대를 갓 넘긴 전신마비 장애청년이 지인의 차를 빌려서 보호자 한 명을 대동하고서 찾아왔다는 것에 김 소장은 연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열정이 상당히 강했던 그 최중증장애인”은 2박 3일간 합숙하며 동료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 소장은 고인을 떠올리며 “대단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김 소장도 고인과 비슷한 나이대인 1987년에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입었다. 비장애남성으로 살다가 혈기 왕성한 20대에 장애를 입었을 때, 그 충격적으로 변하는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본인이 먼저 겪은 터였다. 김 소장은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 강원도의 열악한 장애인 현실을 바꿔나갈 동지로서의 관계를 맺어 나갔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서로가 있는 원주와 속초를 부지런히 오가며 지역 운동의 기틀을 다졌다. 고인은 김 소장이 있는 원주센터의 지원을 받으며 속초에서 2009년 5월에 아우름센터를, 이듬해 봄엔 아우름장애인야학을 만들었다. 2009년 아우름센터 개소 당시엔 마땅한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고인이 살던 아파트에서 개소식을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고인은 급작스레 신장장애를 얻었다. 김 소장은 “한 7년 전쯤”으로 그 시기를 기억한다. 신장장애가 더해진 후, 고인은 일주일에 세 번 신장 투석을 받기 위해 병원을 오가야 했고 그로 인해 그 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하기 어려워졌다. 활동지원시간이 부족해서, 활동지원사 연결이 안 되어서 그는 일상의 한 부분을 부모님께 의지해야 했다. 속초에서 강릉 아산병원에 투석 받으러 갈 때는 장애인콜택시가 잡히지 않아 고생했다.
그래서 이동권 투쟁을 “엄청나게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김 소장은 “속초시는 면담할 때마다 ‘노력하겠다’,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속초가 보수적인 색채가 짙고 지역 텃세가 세서 더욱 힘들었다”면서 “지역에서 연대하고 지원해주는 사람이 마땅히 없어서 그 친구(이재균)가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강원도에서 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개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최근까지도 서울에 큰 투쟁이 있으면 먼 길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김 소장은 새카맣게 변한 그의 얼굴이, 손이 늘 마음에 밟혔다.
“몸이 많이 안 좋았지만 지난 7월에 서울에서 열린 전동행진도 함께했어요. 그날 비가 엄청 많이 왔잖아요. 신장이 안 좋아지니 얼굴도 새카맣고 손톱도 다 새카맣게 되고…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죠. 420투쟁 때도 적극적으로 하고, 광화문 농성장도 같이 지키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했어요. 언변도 뛰어나고. 강원도 영동지방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장애인운동의 선구자인데 젊은 혈기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병마 때문에 세상을 떠난 게 너무 안타까워요. 강원장차연(강원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아까운 인재를 잃었어요. 강원도에 장애인 당사자로서 리더 역할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깐. 사람들이 다 서울 가서 활동하잖아요. 지역에서 활동할 장애인 활동가가 나타나 주면 좋겠는데… 강원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재균을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지난 2023년 여름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치료를 이어오던 이 소장은 14일 끝내 사망했다. 장지는 속초시 승화원이다.
《 고 이재균 소장 연혁 》
1978년 1월 8일 출생
2009년 5월~ 아우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취임
2010년 3월~ 아우름장애인야학 교장 취임
강원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사
(사)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강원지부 이사
2012년 2월~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위원
2014년 3월~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 집행위원회 집행위원장
2017년 5월~ 강원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회 위원
2024년 1월 14일 별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