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코앞까지 특수교육지도사 미배치
장애인 화장실 지적하니 ‘기저귀 차라’
모든 요청에 ‘안 된다’로 일관한 학교
학교 측 “드릴 말씀 없다. 대응 이유 없다”
부모는 불면증, 학생은 응급실에…
장추련, 학교 상대로 인권위 진정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지난달 18일,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성남시 늘푸른고등학교 1학년 학생 ㄱ 씨와 그의 아버지 ㄴ 씨가 학교에서 차별을 받았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늘푸른고 측은 “특별히 드릴 말씀 없다. 대응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문제제기 된 내용에 대해 대립각을 세웠다.
- 교육감상 받은 모범생 ㄱ 씨… 늘푸른고에선 무슨 일이
올해 인문계 고등학교 늘푸른고에 입학한 1학년 ㄱ 씨는 정도가 심한 지체장애인이다. 현재 자세보조용구(이너)가 장착된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 몸무게는 10kg 정도 되며, 자가 호흡량이 약 10%로 매우 약해 수동식 인공호흡기(엠부백 등)를 사용 중이다.
약한 호흡으로 말하는 힘이 부족하고, 목과 몸 전체를 가누기 어려워 화장실을 이용할 땐 두 명의 조력자가 필요하다. 식사 시에는 삼키는 게 어렵기 때문에 미음처럼 잘게 간 음식만 섭취할 수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땐 별다른 문제없이 통합교육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했다. ㄴ 씨는 “ㄱ은 몸이 힘들어도 학교생활을 매우 즐거워했다. 새로운 걸 배우고 교사, 친구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교생활에 열의를 보인 ㄱ 씨는 중학생 땐 경기도교육감상도 수상했다.
그러나 늘푸른고에 입학하면서 ㄱ 씨의 학교생활은 달라졌다. ㄱ 씨는 현재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 입학이 코앞인데 특수교육지도사 미배치… 어렵게 배치된 지도사는 차별 행위
ㄱ 씨는 입학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이 등교 시각에 맞춰 배치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늘푸른고를 선택했다.
ㄱ 씨 부모는 입학식 전에 학교 내 휠체어 이용자 접근성, 특수교육지도사 배치 등을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교육청에 연락했다. 교육청 설명만 듣고는 학교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 학교에 방문해도 되냐 물으니 경기도교육청은 '교감에게 연락해 보라'고 했다.
이에 ㄱ 씨 어머니가 신현주 늘푸른고 교감에게 연락했다. ㄴ 씨에 따르면, 신 교감은 어머니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신의 말을 쏟아낸 후, 회의가 있어서 바쁘니 나중에 연락 주겠다 하고 끊었다 한다. ㄱ 씨 부모는 처음부터 소통이 잘 안 되는 늘푸른고의 태도에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교에 방문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지만 신 교감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ㄱ 씨 부모는 입학을 코앞에 둔 예비소집일이 돼서야 특수교육지도사가 1명도 배치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당황한 부모는 성남교육지원청에 문의했다. ‘예산이 부족해 특수교육지도사를 배치할 수 없다’, ‘특수교사가 1명 있으니 괜찮지 않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특수교육지도사는 특수교사와 협력해 수업을 지원하고,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노동자다. ㄱ 씨는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원활하게 학교생활을 하려면 특수교육지도사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ㄱ 씨 부모는 특수교육지도사가 없으면 ㄱ 씨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 생길까 봐 염려가 컸다. 성남교육지원청과 늘푸른고에 ㄱ 씨의 장애정도 등을 재차 설명한 후에야 어렵게 특수교육지도사를 배치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특수교육지도사는 ㄱ 씨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진정서에 따르면, ㄱ 씨가 엘리베이터에 혼자 갇히는 상황이 생기고, 고개가 뒤로 떨어져 꺾이거나 호흡이 어렵게 되는 위험한 상황이 자꾸 일어났다.
또한 특수교육지도사는 ㄱ 씨 앞에서 한숨을 쉬거나 ‘아이씨’ 등의 의성어로 ㄱ 씨에게 불쾌감을 표현하는 일이 잦았다. 타 학교 특수교육지도사에게 ㄱ 씨에 대한 험담을 하기도 했으며, ㄱ 씨에게 ‘늘푸른고 학생들 예쁘다. ㅇㅇ(ㄱ 씨)야 분발하자’라고 하는 등 외모 평가까지 했다.
- 교문 턱, 좁은 장애인 화장실… 학교를 어떻게 다니나
교내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성도 떨어져 있었다. 슬라이딩 방식의 교문 밑 레일에 휠체어 바퀴가 걸려 ㄱ 씨의 목이 툭 하고 떨어져 꺾이는 일이 벌어졌다. 슬라이딩 교문 자체에 바퀴가 달린 ‘무레일 교문’도 있지만 늘푸른고 교문은 그런 교문이 아니었다.
장애인 화장실 또한 문제였다. 출입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고, 화장실 내 비상용 벨 등 안전장치도 없었다. 무엇보다 전동휠체어가 회전이 안 될 만큼 너무 좁았다. 이렇게 좁으면 ㄱ 씨는 물론이고, 특수교육지도사 등 지원인력이 ㄱ 씨를 지원하기도 어렵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ㄱ 씨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 12일, 특수교육지도사가 병가를 내는 일이 생겼다. ㄱ 씨의 출입을 어렵게 한 교문 밑 레일에 특수교육지도사의 발이 걸려 넘어져 손을 다치게 됐다고 한다. 특수교육지도사는 장기간 병가를 연장했고, 학교는 대체 인력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늘푸른고와 성남교육지원청, 경기도교육청은 대체 인력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ㄴ 씨에 따르면, 시간제일자리로 대체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 중 지원자가 있었는데 안 뽑은 주간도 있었다. 대체 인력이 오더라도 ㄱ 씨를 지원하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ㄱ 씨는 입학하자마자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위험한 상황에서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 ㄱ 씨의 활동지원사와 ㄴ 씨가 학교에서 상주하며 ㄱ 씨를 지원해야 했다. 추후 채용된 대체 인력이 여름방학 전까지 근무하긴 했지만, ㄱ 씨의 활동지원사가 1학기 내내 학교에서 ㄱ 씨를 지원했다고 전해진다.
- 변기 하나 덩그러니 놓고 ‘장애인 화장실 고쳤다’
심각한 인권침해와 장애인 차별 상황에, 늘푸른고는 안일한 대처를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 화장실의 세면대를 철거한 후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며 ㄱ 씨 부모에게 통보했다.
화장실 상태는 충격적이었다. 좁은 공간에 아무것도 없이 변기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변기 양옆 어느 곳에도 손잡이(안전바)는 없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당사자 박정숙 활동가는 “그런 화장실이라면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할 수 없다. 변기 옆 손잡이가 몸을 지지할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해주는데, 그게 없으면 휠체어 이용자는 신변처리를 할 수 없다. 또한 손잡이가 없으면 장애인이 변기에서 떨어지는 낙상사고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또 “장애인의 신변처리를 지원하는 인력에게도 손잡이가 필요하다. 장애인을 부축해서 변기에 앉힐 때 지원인력이 손잡이에 기댈 수 있으면 장애인을 더 안전하게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늘푸른고가 마련한 장애인 화장실은 현행법에도 어긋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의 세부기준이 명시돼 있다. 장애인 화장실에는 등받이가 있는 양변기, 대변기 양옆의 수평 및 수직 손잡이, 세면대 양옆의 수평 손잡이, 비상용 벨 등을 필수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늘푸른고 장애인 화장실에는 세면대까지 없어서 ㄱ 씨는 신변처리 후 손조차 씻을 수 없었다. 이에 ㄱ 씨 부모는 늘푸른고에 재차 문제를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위생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ㄱ 씨 건강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고, ㄱ 씨는 1학기 내내 학교에서 한 번도 손을 씻지 못했다고 한다.
늘푸른고는 ‘특수학급 교실 안에 임시 가변공간을 마련해 휴대용 간이변기를 놓고 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한마디로 교실에서 볼일을 보라는 이야기다. 인권침해적일 뿐만 아니라 위생상 문제도 있었기에 ㄱ 씨와 그의 부모는 해당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외에도 박학동 늘푸른고 교장은 ‘(ㄱ 씨가) 기저귀를 차고 오면 어떤가’, ‘입학하는 장애학생이 없을 때를 생각하면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등 장애인 차별 발언을 이어갔다고 알려졌다.
성민정 성남교육지원청 장학사는 지난달 25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늘푸른고는 6월 27일에 장애인 화장실 공사를 완료했다. 슬라이딩 교문 밑 레일도 없애는 등 개선 중”이라고 말했다.
ㄱ 씨의 활동지원사가 확인한 결과, 완공됐다는 장애인 화장실도 현행법에 어긋나 있었다. 손잡이와 비상용 벨은 전처럼 없었고, 세정장치와 휴지걸이는 손이 안 닿는 높은 곳에 있었다. 장추련이 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에도 해당 내용이 포함돼 있다.
- 유동식도 ‘안 돼’, 엠부백도 ‘안 돼’, 현장체험도 ‘안 돼’
ㄱ 씨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수 없었다. ㄱ 씨 부모는 학교 급식 조리실에서 ㄱ 씨가 먹을 수 있는 유동식(씹지 않고 그대로 삼킬 수 있어 소화되기 쉽도록 묽게 만든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늘푸른고는 ‘단체급식의 특성상 개인을 위한 식단 준비는 어렵다’, ‘다른 학생의 알레르기를 위한 대체식을 만들기에도 바쁘다’며 식사 지원을 거부했다고 한다. 대신 교실에 믹서기를 넣어 식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교실은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ㄱ 씨가 식사하기엔 부적절했다. ㄴ 씨는 “교실 구석엔 종이상자, 먼지 등이 쌓여 있었다. 식기 세척을 위한 수세미나 세제 같은 도구도 없었다. 식기에 쌓인 먼지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세제 등 각종 도구를 학교에 직접 전달했다”고 말했다. 도구도 모자라, ㄱ 씨 부모는 한 학기 내내 유동식을 직접 준비했다.
이같은 상황에 문제를 느낀 ㄱ 씨 부모는 늘푸른고에 소통을 요청했지만 이조차 거부당했다. ㄴ 씨는 “부당하고 일방적인 학교 태도에 조심스레 학교 측에 말씀드렸다. 학교 측은 ‘(ㄱ 씨 부모가) 학교에 오려면 학교에 방문 일시와 목적을 전달하고, 학교 회의를 거쳐서, 행정실에서 명패를 차고 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만 보냈다”고 말했다. 특수교육지도사의 공백으로 ㄴ 씨가 학교에 상주해야 했을 땐 이런 절차가 없었다.
게다가 박학동 교장은 ‘수동식 인공호흡기 소리가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니 전자식 인공호흡기를 차고 등교하라. 다른 학생의 집중도 중요하다’고 하기도 했다. ㄱ 씨 부모도 소리가 조금 덜 나는 전자식 인공호흡기를 고려해 봤다. 전자식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게 된다면, 기계 위에 담요를 덮어 소리를 최대한 줄여보는 방식을 학교에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자식 인공호흡기는 수동식에 비해 ㄱ 씨의 자가호흡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김기룡 중부대학교 중등특수교육학과 교수는 “인공호흡기 소리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불편함 정도를 느낄 순 있겠지만 장애학생은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학습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생명에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며 “인공호흡기 소리가 없어서 다른 학생들이 얻는 편익과, 인공호흡기가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장애학생의 편익을 비교했을 때 장애학생이 얻는 편익이 더 크다. 그러므로 해당 학생이 인공호흡기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 더 공정한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ㄱ 씨는 모든 학생이 가는 현장체험도 못 가게 될 위기에 놓였다. 박학동 교장이 ㄱ 씨가 ‘웬만하면 현장체험에 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장체험을 포함해 ㄱ 씨는 학교의 모든 수업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학교는 지난달 17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ㄱ 씨의 현장체험 참여 여부를 결정했다고 알려졌다. ㄱ 씨 가족은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다.
ㄴ 씨는 “학교는 언제나 뭐든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우리 가족을 괴롭히고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학교와 소통하면서 방법을 서로 찾아가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학교는 어떤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 가끔 카카오톡 메시지로 간단하게 통보만 했다. 논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고 말했다. ㄴ 씨는 현재 심적 고통으로 인해 수면장애와 불안장애가 생긴 상황이다.
- 경기도교육청·성남교육지원청 “우리는 노력 중”
학교와 교육당국이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해결하지 않고 소통도 제대로 안 하던 중, ㄴ 씨는 늘푸른고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로 문건을 하나 받았다. ‘2024년 경기도교육청 특별건강관리지원(의료적지원) 신청서’라는 문건이다. ‘특별건강관리지원’이란 학교에서 장애학생에게 생명과 직결되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 필요한 의료지원을 하는 제도로, 경기도는 2020년 9월부터 해당 제도를 시행했다.
ㄴ 씨는 특별건강관리지원에 대해 학교나 교육당국과 소통한 적이 없었다. 의아해 하며 문건을 검토하던 중, 문건 하단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학교 내 특별건강관리지원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불가항력적으로 야기될 수 있는 합병증 및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하며 이와 관련하여 주의의무를 다한 학교와 의료인에게 민·형사상 기타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이었다.
ㄴ 씨는 “갑자기 설명도, 협의도 없이 카카오톡 메시지로 문서(특별건강관리지원 신청서)가 왔다. 어느 병원의 어떤 의료인이 어떤 지원을 한다는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런데 동의/비동의 서명란에는 ‘충분한 설명을 듣고’라는 문구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설명을 들은 게 없다”고 했다.
ㄴ 씨는 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자녀의 몸을 맡기는데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는 건 불공정 약관이 아닌가”라며 “늘푸른고와 교육당국은 그간 간곡한 호소에도 논의 없이 일방적이고 부당한 통보를 계속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안위만 방어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의료지원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지 되레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선희 경기도교육청 특수교육과장과 성민정 장학사는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ㄱ 씨 부모가 해당 문건에 서명을 해야만 ㄱ 씨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늘푸른고는 ㄱ 씨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ㄴ 씨는 “물에 빠진 사람에게 구조 결과를 문제 삼지 않으면 밧줄을 던져 주겠다는 식의 대응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같이 되자, 학교와 교육당국이 장애학생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자녀를 둔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 서울지부장은 3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장애학생과 그의 부모가 원하는 건, ‘필요한’ 지원을 받는 것이다. 학교와 교육당국은 장애학생과 부모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보고, 신뢰를 쌓아가며 협의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김 전 서울지부장은 또 “특별건강관리지원도 장애학생에게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그런데 해당 지원이 어떤 내용인지, 의료진은 어떻게 배치가 되는지 등을 가족이 알아야 한다. 그런 협의가 없는 상태로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라고 하면 부모 입장에선 당연히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신청서에 서명만 받으면 된다는 주장은 장애학생과 부모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 늘푸른고 “대응 이유 없다”
김선희 과장은 “박학동 교장과 신현주 교감이 (장애인권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해서, 말씀들이 부모님께 무심하고 섭섭하게 들렸을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박 교장과 신 교감의 말투나 태도 때문에 ㄱ 씨 부모가 감정이 상해서 이렇게까지 된 거라는 의미로 추정된다. 김 과장은 “민감하게 감수성을 갖고 부모님께 접근하라고 학교에 지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ㄱ 씨 부모는 박 교장과 신 교감의 말투 때문에 감정이 상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게 아니다. ㄱ 씨 부모는 입학 초기부터 현재까지 교육부 국립특수교육원, 성남교육지원청, 경기도교육청 등 문을 안 두드려 본 곳이 없다. 늘푸른고와도 개별화교육지원 회의 등 여러 차례 협의를 시도했다.
늘푸른고의 상급기관을 모두 찾아다니며 동분서주 뛰어다녔지만 돌아오는 말은 ‘학교가 유동식은 제공 못 한답니다’, ‘박학동 교장하고 얘길 했는데 아무래도 다수의 학생을 신경 쓸 수밖에 없으시답니다’ 같은 것들뿐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긴 시간 해결 방법을 찾던 끝에 장추련의 상담을 받게 됐다. ㄱ 씨 부모는 기자회견이나 인권위 진정 등을 끝까지 고민했다. ㄴ 씨는 “되도록 소통과 협의로 담과 벽을 허물고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 (문제가 개선되는) 상황이 열리기를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나가고 여름방학이 오는 동안 문제는 쌓여만 갔다. ㄱ 씨 부모와 몇 개월간 상담을 이어간 장추련은 긴 논의 끝에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게 됐다. 피진정인은 박학동 교장,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다.
성민정 장학사는 “인권침해인지 아닌지를 인권위가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권침해라면) 특수교육 쪽에 발전적 결과가 될 수 있고, 안 되면(인권침해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늘푸른고는 “대응할 이유가 없다”며 날선 대답을 했다. 신현주 교감은 지난달 25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특별히 드릴 말씀 없다. (다른 매체의) 기사를 보긴 봤는데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고, 전화로는 개인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른지 학교 측의 정리된 입장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대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학동 교장에게는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 제기된 모든 사항에 대해 학교 측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 중간·기말도 제대로 못 봐... ‘정당한 편의제공’ 있어야
ㄱ 씨는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10여 개 과목의 중간·기말고사(지필평가)와 30여 개의 수행평가를 치러야 했는데, 장애특성을 고려한 대안적 평가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필평가 전날까지도 늘푸른고는 아무런 평가 방법을 제시하지 않아 ㄱ 씨는 시험을 칠 수 없었다.
늘푸른고는 1학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야 다급하게 ㄱ 씨에게 대안적 평가 방법을 제시했다. 시험을 몰아서 치는 것도 힘든데, 늘푸른고는 평가 방법을 계속 번복했다고 한다. ㄱ 씨는 수많은 시험을 짧은 시일 안에 여러 번 쳐야 했다.
이외에도 늘푸른고는 ㄱ 씨의 장애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필평가에 참여하지 못하면 매번 진단서를 끊어와라’, ‘미술 수행평가는 집에서 그린 걸 찍어서 내라’ 등을 요구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ㄱ 씨는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김기룡 교수는 “기존의 (비장애인 중심) 평가 방법으로는 장애학생의 실제적인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고, 오히려 장애학생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된다. 장애학생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도 ‘정당한 편의제공’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경기도교육청에서 이런 시각을 가지고 교육현장을 지도해 나가야 한다. 장애학생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은 모두를 위한 교육이며 절대적인 조치다. 이런 큰 가치를 모두에게 가르치는 게 교육계 구성원의 책무이자 기본 소양”이라고 강조했다.
‘정당한 편의제공’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용어다. 해당 법 제4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사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을 하면 안 된다.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 기준을 적용해서도 안 되고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ㄱ 씨는 화장실, 식사, 현장체험, 지필 및 수행평가 등에서 제한과 배제 등을 겪었거나 그런 발언을 들었다. 이런 차별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될 경우,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차별행위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의 입증 책임은 ㄱ 씨가 아니라 학교에 있다.
ㄱ 씨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학교가 못 하게 해서 기회가 없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학교생활과 공부를 즐겁게 하고 싶다. 대학교에서도 잘 수학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어둠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