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관 공급 중단으로 안전하게 숨 쉴 수 없게 된 장애인
당사자가 대체 의료기기 직접 찾고 직접 공급 신청까지 해야
장애인들 “정부가 책임지고 의료기기 도입하라”
식약처, 면담서 “적극적으로 역할 수행할 것”
“식약처에서 전해 듣길 개인이 이렇게까지 의료기기를 찾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찾지 않으면 병원에서 도움받을 수도 없으며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니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이 목관이 없으면 저는 정말로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습니다.”
장애인거주시설에 살았던 와상장애여성 J(제이) 씨. 그는 거주시설 연계사업을 통해 장애여성공감을 만났고 그 후, 2019년 탈시설했다. J 씨는 탈시설 이후에도 고립되어 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활동에 도전했다. 더 이상 집에 갇혀있지 않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휠체어도 새로 맞췄다.
- 갑작스러운 목관 공급 중단… 안전하게 숨 쉴 수 없게 된 장애인
그렇게 새로운 일상을 꿈꾸던 J 씨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올해 초, 사용하고 있던 ‘목관’이 공급 중단됐다는 소식을 갑작스럽게 듣게 됐다. 목관은 목 부위에 직접 삽입되어 호흡을 돕는 의료기기로, 만성호흡부전으로 자발적인 호흡이 어려운 J 씨가 숨을 쉬는 데에 필수적이다.
병원에서 다른 회사의 목관을 추천해 줬지만 해당 목관은 이미 예전에 사용했다가 J 씨의 몸에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목관이 없어 해당 목관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병원에서 추천한 목관은 이전과 같이 몸에 맞지 않아 J 씨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체위 변경, 씻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할 수 없었다.
- 의료기기 조사부터 공급 신청까지 모두 당사자의 몫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숨] 동료들은 J 씨의 고통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J 씨와 그의 동료들은 J 씨가 기존에 사용하던 목관에 대해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사업’을 식품의약품안전처(아래 식약처)에 신청했다.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로 지정돼야 안정적으로 해당 목관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의료기기가 단종된 상황이면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다.
결국 J 씨와 동료들은 기존 목관과 비슷한 규격의 폴란드 회사 제품을 직접 찾아냈다. 그렇게 식약처에 직접 정보를 제공하고 나서야 지난 8월 19일,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사업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해외 제품을 조사하고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절차를 신청하는 모든 과정이 정부가 아닌 당사자에게 책임이 부담되고 있다. 게다가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임에도 불구하고, 약 50만 원에 달하는 자부담에 대한 지원방안 또한 여전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식약처 측에 따르면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지정까지는 신청 후 통상 12주가 걸린다. 지정까지 2주가 채 남지 않은 현재까지 관계부처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아래 심평원)의 검토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J 씨에게는 현재 남아 있는 폴란드 회사의 목관이 한 개뿐이라, 목관 교체가 어려운 위급한 상황이다.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숨],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30일 오전 11시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앞에서 ‘정부의 책임 있는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은 J 씨 동료들의 눈물과 울분이 뒤섞인 외침으로 가득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몸에 맞는 의료기기를 안정적으로 수입하기 위한 과정을 정부가 책임질 것과, 자기부담금에 대한 긴급지원방안, 희소긴급의료기기에 대한 빠른 지정을 요구했다.
- “숨 쉬는 것조차 권리로 요구해야 하는 현실, 정부가 책임져야”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숨] 소장은 “숨 쉬는 것조차 권리로 요구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화가 난다. J 씨는 몸에 맞지 않은 목관을 사용할 수 없어서 감염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라는 교체 주기를 넘기며 버티고 있다”고 분노했다.
진 소장은 “J 씨의 의료기기를 지원받기 위한 과정에 함께 하며 의료용어, 정보와 언어의 차이, 의사와 환자의 권한과 위계 등의 한계들을 느꼈다. 개인이 의료기기를 문의하는 것부터 신청하는 것까지 전반적인 절차를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식약처는 필수 의료기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긴급성을 파악해야 한다. 정부는 안정적으로 의료기기를 도입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미경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는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지체장애와 호흡기 장애를 가지고 있다. 조 대표는 숨을 거칠게 쉬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J 씨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지역사회와 단절된 시설을 탈출했다. 그러나 숨을 쉬기 어려운 고통 때문에 다시 고립되었다. 이렇게 몸에 맞는 의료기기가 없으면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조 대표는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동료들이 덜 고통스럽고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누구라도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정부는 지금 당장 국가의 책임을 이행하라”고 외쳤다.
- 식약처 “해외조사·검토 기간 단축 등 개선 위해 노력할 것”
박주석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사무국장은 “우리는 이번 사례뿐만 아니라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고 취약성을 가진 다양한 몸들이 지역사회에서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오늘(30일) 식약처 사무관과의 면담을 진행한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에 대한 답은 명확하게 보건복지부 장관이 해야 한다. 오늘 면담 이후로도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오후 12시 30분, 장애여성공감과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는 임경택 식약처 의료기기안전국 의료기기정책과 사무관을 비롯한 송시영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안전관리본부 전문연구원과 이래현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안전관리본부 상임연구원과의 면담을 진행했다.
박 사무국장은 당사자가 직접 의료기기를 조사하고 신청해야 하는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에 식약처 측이 “해외조사를 (식약처 측이) 할 수 있도록 예산 증액을 요구해 보겠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또한 식약처 측은 J 씨의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사업 신청에 대해 “심평원이 늦어도 11월 18일까지는 검토의견을 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노력하겠다”며 “의료기기 도입에 대한 검토 기간을 제도적으로 단축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고도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