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의무고용 무시하는 서울대병원
키오스크 설치해 장애인 의료접근권 ↓
김영태 병원장 “더는 답변 안 줄 것”
건강권연대 농성 시도하자 경찰 대동해 진압

서울대병원 측은 강제로 슬라이딩 문을 펼쳐 병원 정문을 폐쇄했다. 슬라이딩 문 안에 끼인 건강권연대 활동가의 모습. 사진 하민지
서울대병원 측은 강제로 슬라이딩 문을 펼쳐 병원 정문을 폐쇄했다. 슬라이딩 문 안에 끼인 건강권연대 활동가의 모습. 사진 하민지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아래 건강권연대)가 31일 오전 9시 30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농성을 시도했다.

서울대병원은 병원 내 휠체어 수십 대를 이용해 출입구를 봉쇄하고 장애인들을 끌어내는 등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기자회견 참여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키오스크로 사라진 안내 인력! 모두의 접근성을 위한 장애인 전담창구 마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 참여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키오스크로 사라진 안내 인력! 모두의 접근성을 위한 장애인 전담창구 마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국내 최대 국립대 병원, 차별도 ‘최대’

건강권연대는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31일부터 2박 3일간 농성할 계획이었다. 이들이 농성을 시도한 이유는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이 건강권연대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건강권연대 요구사항은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할 것 △장애인전담창구를 마련할 것 등 총 두 가지다.

공공기관인 서울대병원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아래 장애인고용법)’에 따라 전체 상시근로자의 3.6%를 장애인으로 고용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해당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장애인 고용률은 2.69%에 그쳤다.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은 기관은 일종의 벌금을 납부한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이 지난 5년간(2019년~2023년) 납부한 장애인고용부담금은 133억 7,200만 원이나 된다.

장애인을 배제한 일자리는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로 대체됐다. 서울대병원은 2019년 4월, 대한외래센터를 개설하면서 외래접수 시스템을 개편했다. 환자들은 접수부터 병원비 결제까지 모든 과정에서 키오스크를 쓰게 됐다.

키오스크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기기 중 하나다. 시각장애인은 안 보여서 못 쓰고, 지체장애인은 손이 안 닿아서 못 쓰고, 발달장애인은 어려워서 못 쓴다.

구호를 외치는 기자회견 참여자들. 사진 하민지
구호를 외치는 기자회견 참여자들. 사진 하민지

- “의무고용 준수하고 전담창구 신설하라”

이에 건강권연대는 지난 10월 22일,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첫 번째로 “장애인 의무고용률 3.6%를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서울대병원이 ‘문화예술 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를 만들어 최중증장애인을 고용하라고 제안했다.

‘병원에서 웬 문화예술 직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체육 분야의 일자리를 신설해 중증발달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이 이미 있다.

전력생산 공기업 ‘한국동서발전’은 지난해 ‘체육·문화예술분야 장애인턴 고용지원 사업’을 통해 중증발달장애인 인턴사원을 고용한 바 있다. 인턴사원들은 3개월간 작업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인턴 수료 후 재취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건강권연대는 두 번째로 키오스크를 대체할 ‘장애인전담창구’를 신설하라고 제안했다. 장애인 의료접근권을 높이기 위해서다.

장애인전담창구는 진료 접수부터 병원비 결제까지 한 번에 지원받을 수 있는 창구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이동을 지원하고, 청각장애인에게는 수어통역을 지원하고, 발달장애인에게는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등 병원 문턱을 낮추고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병원 내 창구를 뜻한다.

건강권연대 차량과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구급차가 지나갈 길을 비켜줬지만 서을대병원 직원과 경찰들은 막고 서 있다. 사진 하민지
건강권연대 차량과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구급차가 지나갈 길을 비켜줬지만 서을대병원 직원과 경찰들은 막고 서 있다. 사진 하민지

-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더는 어떤 답변도 안 줄 것”

건강권연대는 10월 22일부터 매일 아침, 서울대병원에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병원 직원의 ‘병신들’이라는 욕설에도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끝내 장애인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지난달 12일, 서울대병원은 건강권연대에 공문을 보냈다. △이비인후과 장애인우선창구를 장애인전담창구로 변경 △경영 방침에 장애인 의무고용률 준수 삽입 등이 골자였다.

건강권연대는 크게 분노했다. 우선 이비인후과 장애인우선창구를 전담창구로 만들겠다는 건 창구의 기능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이름만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권연대에 따르면 해당 창구는 이비인후과 진료에만 한정된다고 한다.

또한 장애인 의무고용은 권고사항이 아니라 장애인고용법에 명시된 의무사항이다. 건강권연대는 “법에 명시된 의무를 갖고 ‘방침을 세우겠다’니,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지난 27일, 서울대병원으로부터 최종 답변이 왔다. ‘더는 어떤 답변도 주지 않을 거란 게 김영태 병원장의 입장’이라는 답변이었다.

이에 건강권연대는 농성 투쟁을 결의하게 됐다.

서울대병원은 휠체어를 이용해 휠체어 이용자의 출입을 막았다. 사진 건강권연대
서울대병원은 휠체어를 이용해 휠체어 이용자의 출입을 막았다. 사진 건강권연대

- 휠체어로 막은 병원 입구, 휠체어 이용자 1명 현행범 체포

농성은 천막도 못 펴 보고 막혀 버렸다. 서울대병원은 병원에 비치된 휠체어 수십 대를 꺼내 오더니 출입문을 봉쇄하는 도구로 썼다. 또한 서울대병원 잠바를 맞춰 입은 직원들을 대동했다. 그들은 장애인, 연대인 등을 폭력적으로 끌어냈다.

방패로 무장한 경찰은 구급차가 지나갈 길조차 내주지 않고 장애인들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이 과정 중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현행범으로 체포됐으며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차량이 견인됐다.

박주석 건강권연대 사무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뭘 했나? 가는 길을 막은 것은 경찰이고 서울대병원이다. 우리는 서울대병원에 장애인고용법을 지키라고 했을 뿐이다. 법을 지키라고 하는 사람이 잘못인가, 법을 안 지키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사람(경찰, 서울대병원)이 잘못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경찰은 지금 당장 내란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러 가라. 체포해야 할 사람은 하지 않고 왜 우리를 막아서나? 우리가 물러나면 서울대병원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나? 우리가 물러나면 서울대병원이 장애인전담창구를 만드나?”라고 성토했다.

건강권연대는 결국 농성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서울대병원에서의 집회 등은 이어간다. 31일 오후 1시에는 본관 로비에서 ‘이것도 노동이다 권리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다음 달 1일 오후 12시에는 본관 앞에서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의 지지 기자회견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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