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가 생각나게 하는 것들
요즈음 자주 그 아이가 생각난다. 지금쯤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인데 잘 자라주었는지, 그 아이의 분노를 누군가가 따뜻하게 풀어 주었는지, 그래서 잘살고 있는지, 자꾸 궁금해진다. 오랜 기억의 한켠에 접혀 있던 희미한 이름, '현수'였던 것 같다. 현수는 똘똘하고 영리한 유치원생이었다. 청각장애 엄마의 아들이고 자기 엄마와 같이 나도 지체'장애인'이라 동질감이 있었는지 이모라며 잘 따랐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애어른 같아서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렸다. 청각장애 엄마를 대신해서 고사리 손으로 수화를 해 세상과 엄마를 소통시켜주며 어른들의 말을 빠르게 이해하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느 날 현수가 뭘 잘못했는지 엄마가 현수를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수는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비장애아이들 같이 울면서 소리를 내어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었다. 눈물은 뚝뚝 흘리면서 도망가지 않고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얼굴을 잡아 자기 눈과 마주치려고 애쓰고 있었다. 엄마에게 용서받으려면 엄마가 쳐다봐 주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현수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끝난 SBS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청각장애 엄마를 둔 딸 '우리'가 돌아선 엄마를 부르기 위해 오재미를 늘 들고 다니던 모습에서 현수가 생각났다. 나에게는 명랑하고 수다쟁이인 현수는 밖에서 자신의 엄마를 (또는 나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볼 때는 화난 표정이 되었다. 현수의 삶에서 장애가 분노가 되지 않았기를. 어디에선가 큰 어른의 손으로 수화를 하며 엄마와 세상을 소통시켜주고 있기를. 잘 성장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1. ‘ 도가니’가 생각나게 하는 것들 - 장애인 성폭력 상담
분노한 그들을 말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내 얼굴을 봐줘야 한다. 그들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쳐야 한다.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봐야 소용없다. 손을 내밀어 그들의 옷깃에 닿아야 한다.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집시법 위반이니, 1차 경고니, 2차 경고니, 앰프 소리는 요란하지만 그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한국영화의 축제라는 대종상 시상식 입구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우리도 한국영화를 보고 싶다. 한글자막 상영하라”는 요구의 피케팅을 하며 경찰과의 마찰이 벌어졌다. 순간,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청각장애학생 성폭력 사건을 법원이 제대로 심판해주지 않자 피해학생이 스스로 나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자기 목숨도 버린 장례식 날, 성폭력 피해현장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분노하는 대책위의 청각장애인들에게 경고방송을 하던 경찰의 난감하던 표정이 오늘 이 자리의 경찰 얼굴과 똑같다. 앰프 소리를 아무리 크게 올려도, 아무리 무서운 경고를 한다고 한들 그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가까워지면 사무실 전화기가 좀 더 울리기 시작한다.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은 기본이고, 장애인 일상의 차별, 불편함, 놀라운 사건, 정책, 긴급 상황 등등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 좀 하자, 장애인 섭외해 달라, 그것도 오늘 당장, 금방 연락 달라고 재촉해 온다. 놀랍게도 4월 20일이 지나면 언론은 생뚱맞은 얼굴로 돌아간다. 우리가 수없이 사건마다 보도자료 뿌려도 언제나 익숙한 얼굴의 장애 관련 언론사의 기자들뿐.
영화 ‘도가니’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하루 이틀은 사무실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 인터뷰에 원고 청탁에 장애인 섭외까지.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씁쓸함이 있다. 2007년 인화학교 사건 투쟁을 하며 나도 광주로 몇 번 갔었던 기억의 조각들이 스멀스멀 나온다. 그 견고한 권력의 힘 앞에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다시 살려내기가 싫었다.
인화학교 대책위원회가 천막을 치고 농성하고 있을 때였다. 농성장 지지방문을 갔는데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하는 청각장애인들의 호소하는 모습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픈 가슴을 치면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수화를 잘 모르지만, 울분을 토하는 그 손놀림은 천둥소리보다 더 아프게 들렸다.
처음 성폭력 상담원이 되고 첫 상담 전화를 받았던 날, 며칠 동안 울렁이는 가슴으로 힘들었다. 장애인 부부가 사는 동네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은 옆집 남성, 이층집 할아버지, 가겟집 주인아저씨들이었다. 설마 매일 얼굴 맞대는 이웃 사람들이 그럴 수 있을까 하고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상담을 계속하면서 가해자는 우주에서 날아온 우주인이 아니라, 늦은 밤 으슥한 곳에서 나타나는 불량배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피해 장애여성의 나이가 많고 적음도 상관없다. 장애여성이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 어김없이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무리가 구석구석에서 나타난다. 언제 어느 순간 매일 부딪히던 착한 이웃 사람이 돌변한 얼굴로 성폭력 가해자가 된다. 학교 등하굣길에서 끌려가고, 유치원에서, 학교의 선생이, 선배와 친구가, 집의 전기를 고쳐주러 온 이웃이, 동네 잔치하는 부엌에서, 서울의 강남에서부터 시골의 어느 동네까지, 아버지에서부터 남동생까지, 상담하기가 늘 벅찼다.
언제였던가. 피해 장애여성을 쉼터에 데려다 주고 그곳에 먼저 와 있던 분들과 얘기를 나눈 뒤 문을 나서자 내 가슴 속에서 열이 솟구쳤다. 길에 걸어다니는 남성들에게 적개심이 생겼다. 그 분노를 이기기 위해 캔 맥주를 하나 사 들고 집에 들어갔다. 장애가 있는 딸을 낳은 것이 50평생 죄인처럼 살아오신 어머니는 이 층 주인집 할아버지에게 성폭력 당한 딸 때문에 집안이 또 야단이 났다고 한다. 다른 자식들이 창피할 테니 불임수술 후 갈 시설을 알아봐 달라고 한스러운 눈물을 흘리신다. 아무리 그렇다고 어머니와 잘 살던 딸을 시설로 보내야겠느냐고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지적장애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딸은 자기가 뭘 잘못한 것만 같아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엄마의 눈물을 닫아주고 있다. 자기가 큰 잘못을 해서 엄마를 슬프게 했다고, 이해는 안 되지만 어머니가 울지 않으려면 순순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모녀의 눈물이 잊히지 않는다.
어느 날 상담소 문을 열고 젊은 엄마와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엄마의 얼굴은 벌써 젖어 있다. 상담원 두 명이 아이와 엄마를 분리해서 상담을 시작한다. 놀이터에서 문구점 아저씨가 가해자다. 엄마는 내 아이가 비장애아이였다고 해도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고 분노한다. 장애가 있어도 내 아이는 나한테 너무나 소중한데, 아이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울고, 울고 또 울고 있다. 엄마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렇게 울어주는 엄마조차 없는 성폭력 피해 장애여성들을 만나면 가슴이 더욱 아프다.
성폭력 피해를 본 장애인의 가족들에게도 가족의 장애 때문에 겪어야 했던 사회적인 억압과 상처를 치유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가족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겸한 지원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피해 장애여성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가족을 위해 가족의 결정으로 익숙하던 관계와 지역을 떠나 시설로 사라져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장애여성의 가족, 가까운 관계자에게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점을 가지게 하는 교육과 치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과연 얼마나 장애가 있는 형제를 위해 시간을 내놓을지는 의문이다.
또 한 번은 지적장애와 지체장애가 함께 있는 피해 장애여성이 임신해 상담소를 찾았다. 만삭의 장애여성이 집에 있을 상황은 안 되고, 미혼모 쉼터는 장애여성이라서 받아줄 수 없다고 하고, 이리저리 찾고, 찾고 또 찾고, 부탁하고 사정해도 방법이 없었다. 마침 지인으로부터 알게 된 미신고시설이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수녀님에게 간곡한 부탁을 했고, 현재 미혼모 입소자들의 동의 후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자신이 엄마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임산부는 출산이 가까워지니 몸이 무거워졌고, 그게 힘들어서 밤이나 낮이나 신음을 하고 아이처럼 보챘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입소자들이 너무 힘들어한다며 다른 시설을 알아보라는 연락이 왔다.
‘대략 난감’이다. 이미 알아볼 수 있는 곳은 모두 알아봤는데 어찌해야 할지, 상담원들은 하루가 바늘방석이다. 그 시설에서 전화 올까 봐 전전긍긍이다. 수녀님도 참을 만큼 참았다며 한계에 도달했다고 하기에 결국 나의 좁은 집으로 데려와야겠다고 결정하던 날, 기쁜 전화가 왔다. '출산했다'고, 너무나 예쁜 아이를 출산했다고. 수녀님의 말에 의하면 여태 아이를 많이 받아봤지만 이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이란다. 그 소식에 상담소는 환희의 도가니였다.
성폭력 상담원 활동은 기진맥진, 매 순간 에너지 고갈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상담비밀을 지켜야 하니 어디 가서 말로 풀 수도 없었다. 한편 인간이 약자에게 얼마나 짐승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볼 수 있었다. 가해자는 공범을 더 확대하면서 그 범위가 넓어지면 마치 피해자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듯이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했다.
영화 ‘도가니’의 재판과정에서는 지적 장애아동에게 언제, 어디서, 몇 번, 이러한 단순한 질문이 던져진다. 지적 장애여성도 그렇게 피해 사실을 의심받아야 할 때가 있다. 가해자 가족이 매일 햄버거를 사준다고 약속한 것 때문에 법정에서 피해를 부인하는 장애여성이 있다는 것을 법조인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아동들을 법정에 세웠겠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를 직접 대면하게 하는 상황,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드러내도록 하는 장면은 그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지 생각이 복잡하다.) 성폭력 상담은 참 힘든 일이다. 다양한 장애의 특성과 세상의 적나라한 폭력이 맞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2. ‘도가니’가 생각나게 하는 것들 - 시설이란 무엇인가
‘도가니’에서 물대포를 맞는 장면이 있다.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 나는 종로구청 정문 앞 대형차에 가로막혀 있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펄펄 뛰고, 끌려 나오고, 상처투성이가 될 때 나는 대형차에 막혀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어야만 했던 순간이었다. 종로구청이 성람재단이라는 비리재단과 결탁하여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시작된 농성 이틀째였다. 그날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얼마나 거대한 집단인지를 실감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남자 백여 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나온다. 우리는 휠체어를 밀착하기 위해 서로의 휠체어를 잡는다. 그들은 주민을 위해서 일한다는 구청 직원들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당신들이 이럴 수 있느냐고 누군가 소리친다.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쓰레기를 치우러 나왔다는 듯 가볍게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다가와서 경고한다.
순간 그들도 안쓰러워졌다. 저 무리 중에는 마지못해 여기에 끌려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도 못할 짓이긴 하겠다. 제도의 잘못, 어떤 이들의 욕심의 결과가 힘없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불편한 만남을 있게 한 것이다. 이런 일을 만든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 그들을 조정할 뿐이다. 조정 당해야 하는 그들에게서 연민도 느낀다.
그들이 일제히 넥타이를 푼다. 소매를 걷고 있다. 나 한 사람한테 만도 네다섯 명이 덤빈다. 우리 대오가 끊어지기 시작하고 나의 전동휠체어가 들려서 먼 곳으로 옮겨진다. 활동가들도 들려나가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다. 치고 막고 달리고 들어가면 끌려나오고 또 끌려나오고…….
이렇게 시설비리 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과 공익 이사제 도입을 요구하며 종로구청에서, 양천구청에서, 광진구청에서, 국회에서 참 많이 투쟁했다. 끌려나온 게 몇 번인지, 점거가 몇 번인지, 농성이 몇 번인지, 경찰조사는 몇 번인지, 재판은 또 몇 번인지 기억나지도 않게 투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보기 싫었다. 이 영화 보기가 두려웠다. 나는 긴장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공포영화, 전쟁영화들이 그렇다. 이런 것과는 다르지만 이 영화도 피하고 싶었다. 나의 기억에서 접어두고 싶었던 아픔들을 상기하게 하고, 나를 무력하게 하던 순간을 떠올려 오랫동안 힘들 것 같아서 안 보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외면할 수 없는 나의 운명적 과제인 시설과 교육에 관한 것이었기에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문제, 사회적 고립의 문제, 시설의 문제, 교육의 문제, 성폭력의 문제 등을 이야기하는데 ‘도가니’라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다. [2002년이었던가, 기억도 희미한, 장애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오아시스’(감독 이창동)가 있었다. 이 영화는 장애여성에 대하여 잘 그리지 못했다는 비판과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장애여성이 세상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일정 정도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고, 그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보러 갔었다.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음침하고 전체가 어두운, 그래서 공포영화 같았다. 어느 구석에서 뭔가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 열차에 치여 죽은 아이의 신발과 자동차에 치여 죽은 고라니의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장애인의 생명이 고라니의 생명과 다르지 않다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통합학교에서 장애가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하는 장애 아이들이 떠올랐다. 이유 없이 당하는 장애아동들은 자신이 가치절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자기 정체성과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장애가 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보청기를 버린 뒤 잘 안 들려도 잘 들리는 척하고, 학교에서 필요한 편의가 있어도 요구하지 않는다. 장애의 정체가 드러날까 봐 숨기고, 버리고 싶은 것일 뿐이다. 그렇게 가치절하 되고 무가치해지는 장애가 마치 고라니 같았다.(물론 사람의 생명과 고라니 생명에 무슨 가치의 저울이 있을까. 이런 가치의 저울도 철저한 사람의 관점에서 저울일 뿐이지만 말이다.)
장애인 시설 문제는 벌써 여러 번 말해왔다. 시설의 변화를 위해서는 시설장의 잘못을 비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현재 이사제도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해 공익 이사제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우리의 주장을 완강히 거부하던 보수진영이 ‘도가니 열풍’에 얼마나 눈치를 보고 압력을 받을지 모르겠다. 이제 뒷심 있게 박차를 가해서 개정해야 한다. 보수진영은 이 열풍이 지나면 언제 관심 있었느냐는 냉소적 표정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시설장들의 압력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고, 시설 생활인들 숫자만큼 표를 가지고 있는 시설장들을 정치인들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설의 문제를 비장애인들이 생각할 때,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생각한다. 아프거나 인생 실패자들이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으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와는 별개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치열하게 투쟁하면 할수록 ‘우리만의 투쟁’인 것 같았다. 과연 그럴까. 시설과 비장애인과는 상관이 없는 곳일까?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 항암치료를 받으실 때 집으로 모시기보다 가까운 노인요양병원에 모셨다. 집안에 아픈 사람 생기면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누가 간병할 것이며 병원비는 어떻게 할 건지 등등 가족 안에 갈등도 생기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를 어느 자식 혼자만의 책임으로 떠넘기지 말고 치료도 잘 받으시도록 요양원에 모셨다. 가족으로서는 입맛 없어도 더 드시도록 챙겨 드리고, 기저귀를 더 자주 봐 드리고, 자주 씻겨 드리고 운동을 시켜줘서 기운이 떨어지지 않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틈틈이 병원에 들락거렸다. 아직도 요양원에 모신 것이 괜히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아마 다음 세대는 이런 죄스러운 마음이 없을 것이다. 당연히 요양원에 모시는 것으로 될 것이다.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몇 곳을 찾아 다녀봤다. 가격에 따라 여러 편차가 있지만 거의 노인을 방치해 놓은 곳도 있었다. 그곳에서 노인은 돈벌이의 대상일 뿐이었다. 약자들이 있어야 하는 공간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일찍 시설에 가야 할 것이다. 몸의 기능이 약해지면 질수록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 또한 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누구도 시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양로원이 될 수도 있고 요양원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가 될 수도 있겠다.
이승을 떠날 때 나는 어떤 공간에서 머물다가 떠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시설이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공간으로 그리고 누구의 것일 수도 있는 공간,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는 공간, 나의 숨소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내 몸의 긴장을 놓이는 공간, 가끔은 밉고 가끔은 궁합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 나의 몸의 아픔을 신속하고 편리하게 진료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질 수는 없을까?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지금의 방식처럼 다른 선택이 없어서 시설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시설이 아니어야 한다. 지금의 시설이 시설재벌, 시설장의 사유화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상상이 가능한 시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설의 변화를 다른 세계 사람들을 위한 변화가 아니라 나의 삶을 위한 변화로 인식하고 사회복지사업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할 때 노인들에게 욕 많이 먹었다. ‘너희 이러면 동정도 못 받아!’ 지금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따로따로일 수 없다.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다. 어찌하면 시설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우리 모두의 운동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영화 한 편에서 시작되어 요란하던 바람이 차츰 약해지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장애인의 차별에 분노하는 사람들과 나의 집값이 내려갈 것 같고 동네 이미지가 나빠질 것 같아 우리 동네에 장애인 시설 들어오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영화관을 나왔다.
나의 이익관계 앞에서는 나의 또 다른 얼굴을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바람이 무엇 하나라도 변화시켜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마음과 기억들, 활동가들의 외침의 공허감, 이러 저러 헤집어진 것들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이 또한 우리 몫인가? 나도 영화를 즐기며 보고 싶다.
* 이 글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1년 10·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