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거주불명자는 아무 주민센터 가세요”
막상 가보니 “주소지가 경상도, 안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민등록 말소되기도
서울시 “주민등록 하려면 시설 가세요”

홈리스행동 등은 지난 2020년 5월 11일, 서울역 광장 앞에서 홈리스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 보장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역 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홈리스를 별도 가구로 인정하여 현금으로 지급!”, “지자체 긴급재난지원금 미신청 이유 50% 거주불명 등, 26% 방법 몰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홈리스행동 등은 지난 2020년 5월 11일, 서울역 광장 앞에서 홈리스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 보장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역 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홈리스를 별도 가구로 인정하여 현금으로 지급!”, “지자체 긴급재난지원금 미신청 이유 50% 거주불명 등, 26% 방법 몰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1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아래 소비쿠폰)’을 못 받은 거리홈리스가 2차도 못 받게 됐다. 1차 시 발견된 ‘거주불명등록’ 제도 관련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연고가 끊긴 다른 지역에 주민등록이 살아있거나 지방자치단체 직권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등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거리홈리스는 전 국민이 받은 소비쿠폰을 2차까지 못 받게 생겼다.

- 서울역서 오래 생활했는데 주소지가 경상도? 

거주불명등록은 ‘주민등록말소’와 다르다. 주민등록말소자는 ‘행정적으로 사라진 사람’을 의미하는 반면 거주불명등록자는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부는 거주불명등록자의 경우 현재 생활하는 거처와 가까운, 즉 아무 주민센터에 가서 소비쿠폰을 신청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홈리스행동이 수집한 증언에 따르면 이미 연고가 끊긴 지역에 주민등록이 돼 있거나 주민등록 자체가 말소돼서 신청할 수 없었던 사례가 다수 있었다.

서울역 인근 공원에서 노숙하는 ㄱ 씨는 오랫동안 노숙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거주불명등록자일 거라 확신하고 주민센터에 방문했다. 그런데 오래전에 살았던 인천시에 주민등록이 유지되고 있었다. 소비쿠폰을 신청하려면 인천시까지 가야 했다. 해당 주민센터는 ㄱ 씨가 전에 살던 집과 가까워서 가게 되면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갈 수 없었다.

서울역 근처에서 거리노숙하는 ㄴ 씨도 마찬가지다. ㄴ 씨는 경상남도 노숙인생활시설에서 살다 답답함을 느끼고 퇴소한 후 올해 2월부터 거리노숙을 시작했다. 노숙인이용시설에 방문해 소비쿠폰을 문의했는데 주소지인 경남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신청을 포기했다.

주소지가 부산시인 ㄷ 씨, 경상북도인 ㄹ 씨, 전라도인 ㅁ 씨는 폐건물, 다리 밑 등 사람들이 밀집해 있지 않은 곳인 ‘비밀집 지역’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들이다. 이들 역시 자신이 거주불명등록자인지 확인했으나 각 지역으로 주민등록이 돼 있는 바람에 소비쿠폰을 받지 못했다.

- 차비 없는데 어떻게 가나…받아도 지역제한 때문에 서울에선 못 쓴다

장거리를 오갈 차비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ㅂ 씨의 경우 비교적 가까운 서울시 동대문구에 주소지가 등록돼 있었지만 차비가 없어 왕복 20km를 걸어서 쿠폰을 받아야 했다.

어렵게 주소지에 있는 주민센터로 가더라도 소비쿠폰을 그 지역에서 다 써야 한다는 것 또한 큰 부담이었다. 소비쿠폰은 주소지를 기준으로 해당 시도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생활하지만 서울시에선 쓸 수 없는 것이다. 배용진 홈리스행동 자원활동가는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니 뭔가 달라지는 게 있으면 알려드리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거주불명등록자였는데 주민센터 가보니 ‘주민등록 말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도 있었다. 서울시에서 수십 년간 거리노숙 중인 ㅅ 씨는 2020년 코로나 시기 거주불명등록자로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이번에도 소비쿠폰을 받기 위해 가까운 주민센터에 갔지만 직원으로부터 ‘주민등록이 말소돼 신청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2019년, 주민등록법이 개정되면서 5년 이상 거주불명등록자는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주민등록을 말소할 수 있게 됐는데 ㅅ 씨는 이 법의 적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있는 제도 안 쓰고 시설입소 유도하는 서울시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24일 발행된 홈리스뉴스 140호에서 “전국적인 제도인 만큼 주소지가 아닌 실제 거처에서 거리홈리스가 소비쿠폰을 신청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군인의 경우 현역복무확인서를 복무지 주민센터에 제출하면 주소지가 아닌 복무지 인근에서도 소비쿠폰을 쓸 수 있도록 조치했다. 심지어 이동이 어려운 장병에게는 복무지 소관 지자체 담당자가 부대로 직접 찾아가 신청을 받게 했다.

이처럼 제도가 있는데도 홈리스에겐 적용하지 않으면서 지자체는 되레 시설입소를 유도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 7월, 하급 지자체에 발송한 공문에 “거주불명 상태는 아니나 거리에서 생활하시는 노숙인은 노숙인생활시설에 입소 후 전입신고를 하면 실제 거주지에서 소비쿠폰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ㄴ 씨도 노숙인이용시설에서 시설입소를 권유받았다. 하지만 ㄴ 씨는 소비쿠폰을 받자고 시설에 가기는 싫었다. 서울시에서 홈리스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임시주거지원제도를 이용해 주민등록을 하려고 했지만 주소지가 경남이어서 신청할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소비쿠폰을 시설입소의 매개로 활용하려는 인식이 저열하다”고 비판했다. 안 활동가도 “시설입소를 강조하는 방침은 홈리스를 위축하게 만들 뿐”이라며 “시설입소를 유일한 대안으로 내놓는 현재의 방침을 폐기하고 주민등록 복원을 위한 더 많은 선택지가 홈리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교통편의 제공, 동행지원 등의 서비스를 지자체에서 제공하라고도 요구했다. 안 활동가는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때도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한 바 있다”며 “거리홈리스의 제도 접근성을 직접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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