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파전 '매직타임'

▲'매직타임' 포스터.

"장애인예술로서의 연극은 그 주제에서 사회적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 예술의 구현 방식과 목표로부터 찾아야 한다."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흐름을 갈망한다. 더욱이 장애인문화예술은 시혜와 동정의 관람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그 저항은 자기 안의 예술적 형식을 발견하고 기존의 것과 다른 자신만의 고유의 언어를 발견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미를 발견하고 이를 구현해내야 한다.

 

이제 장애인 문화예술은 스스로 장애인 당사자가 예술 장르 안에서 무언가를 행하는 것 이상의 출연을 갈망하고 있다. 장애인예술가들은 치열하게 예술적 형식을 고민해야 하며 제 길을 모색해야 한다. 자기의 존재를 고유한 예술적 형식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러한 형식을 갖지 못한 예술작품은 제 몸을 갖지 못한 채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죽는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만의 형식을 발견해야 한다.

 

장애인문화예술을 향한 선언

 

지난 2011년 10월 서울대, 선문대, 한국외대 등 장애인·비장애인 학생 20여 명이 모여 프로젝트 극단 '파전'을 만들었다. 장애가 있는 몸에 부여되었던 기존의 통념들에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장애 유무를 떠나 각자의 배우들이 미적 성취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장애인예술의 새로운 단계를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이 기획의 중심에는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저자 김원영 씨가 있었다. 

 

"장애인예술은 스포트라이트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즉 이는 상당수의 장애인을 포함해 일상에서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거나, 주목받기 어려웠던 사람들, 그리고 어떤 권력도 갖지 못했던 존재들을 특정한 무대와 협력 속에서 구석진 객석에서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린다. 지금까지 대체로 장애인연극이라는 이름으로 시도된 공연들은, 집안에서 별다른 사회관계도 맺지 못했던 존재들을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공연은 매력적이었는가? 나는 이 공연을 통해서 감동을 받았지만, 그 감동은 대체로 수동적이고 소외된 존재가 무엇인가를 '극복하고' 무대 위에 올랐다는 것 자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류의 감동이 장애인의 몸에 대한 진정한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불쌍하고 비극적인 존재로서 장애인의 대척점은 언제나 영웅적이고 고상한 존재로서의 장애인이라는 기존의 해석이 존재해왔다. 장애인예술은 특정한 주체의 새로운 해석적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을 볼 때, 기존의 공연들이 주는 감동과는 다른 형태의 예술적인 '끌림'이 더 필요하다."

 

▲'매직타임' 공연 장면.

 

김원영 씨가 발표한 '매직타임' 기획의도는 기존 장애인문화예술에 대한 선언처럼 들린다. 이러한 선언은 장애인문화예술이 기다려온 것이며, 이러한 선언이 출현할 때 장애인예술은 기존의 것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나아간다. 이 선언의 밑바닥에는 각각의 '몸'들에 대한 사유가 존재하며, 그 고유의 몸들이 제 배역을 찾아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다.  

 

이러한 모색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파전'은 지난 1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대 두레문예관에서 제임스 셔먼의 원작 ‘매직타임'을 총 6회에 걸쳐 선보였다. 지난 1998년 장진 감독이 연출해 장기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던 '매직 타임' 공연을 통해 극단 '파전'은 아마추어 극단의 풋풋한 기운 속에서도 기존의 장애인문화예술이 보여주지 못한 사유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 작품 속에 녹여내는 만만치 않은 힘을 동시에 보여준다.

 

기획이 이루어진 후 그에 맞는 '몸'만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배역을 맡은 '몸'들 중심으로 기획해나간 '매직타임'은 사회가 규정한 '몸'의 한계 안에 머무르지 않고 그 경계를 허문다. 이러한 경계의 이탈은 무대에 오른 배우의 개별적인 '몸' 그대로를 보게 한다. 따라서 관객은 무대에서 전동스쿠터를 타고 오필리아가 등장하는 순간 그 출현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녀만이 표현해내는 오필리아를 바라보고 해석할 뿐이다. 마당극 요소가 가미된 '매직타임'은 이러한 요소들을 한층 더 자유롭게 품어낸다. 

 

당신이 가장 빛나는 그 순간 '매직타임'

 

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배우들의 이야기를 다룬 '매직타임'은 작품 속 인물들이 무대 뒤와 무대 위라는 공간 속에서 겪는 사랑과 갈등, 꿈과 열정 등에 대한 감정들을 풀어낸 작품이다. 극 중 인물들이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삶의 이야기를 품고 무대에 올라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내듯, 무대 위에 선 극단 '파전'의 젊은 예술가들은 서로의 '몸'을 통해 기존 작품이 보여주지 못한 그들만의 고유한 맛을 만들어낸다. 그 '맛'은 다소 서툴지라도 신선하며, 장애인문화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진중하고도 깊은 울림을 담고 있다.

 

"나는 이번 공연을 통해 장애인예술이라는 특정 장르의 토대를 놓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작음 실험들, 공연의 기획부터 연출, 미술과 무대장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에서의 작은 시도들이 위의 목적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이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나는 세상에서 자신감 없는 존재들, 또는 자신감 없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된 존재들을 위한 무대, 스포트라이트의 방향이 바뀌는 무대를 꿈꾼다. 이 무대는 개별적인 특질을 발굴하고,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편적인 예술적 끌림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장애인예술은 하나의 장르이며, 방법론이고, 세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일 수 있다."

 

▲'매직타임' 공연을 마치고 극단 '파전'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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