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공판조서 없어, 방어권 행사 못 할 가능성 높아
국선변호인 선임과 함께 정당한 편의 제공돼야
2급 시각장애인인 정아무개씨는 경기 성남시에서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면서 취업자격이 없는 중국인 4명을 고용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장애로 인해 인쇄물을 읽기가 쉽지 않은 상태에서 점자로 된 공판조서를 제공받지도 못한 채 변호인의 도움없이 재판을 받아야했던 것. 억울한 정씨는 상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정 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수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씨의 장애 정도를 확인해 국선변호인 선정 절차를 취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고 공판심리를 진행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원심 판결에는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상 구두변론이 원칙이긴 하지만 점자로 된 공판조서 등이 제공되지 않는 현행 형사소송실무를 감안하면 시각장애인은 재판에서 효과적인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피고인의 시각장애 정도 등을 확인한 뒤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피고인의 연령과 지능 및 교육 정도 등을 참작해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피고인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원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33조 3항의 의미를 넓힌 것으로, 그 대상에 시각장애인을 규정한 첫 판결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조은영 활동가는 “형사소송 과정에서 장애인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판결은 위법하다고 대법원이 판결내린 부분은 바람직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라면서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기본적으로 점자로 된 공판조서가 제공되고 자신의 사건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공판조서를)읽어볼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법 절차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 문제와 변호인 조력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그러나 법원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국선변호인의 선임 보장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제26조 제5항)에서 정하고 있는 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장애인을 위하여 장애인 스스로 인식하고 작성할 수 있는 서식의 제공 등 정당한 편의 제공을 위한 행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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