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마당극 '들불'

"만약 우리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쓰레기 같은 것, 쓰레기, 티끌, 먼지, 부스러기 밤에 몰래 버려지고 아침에는 옮겨져 떠나가 버리는 것. 그렇지만, 삐어져 나와 남겨지는 것. 반드시 길에 떨어져 있곤 하는 것"

 

일본 극단 '독화성'과 '야전의 달', 한국 놀이패 '신명'은 지난달 11일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텐트마당'이라는 독특한 공간을 선보였다. 이들은 일시적으로 공간을 형성할 뿐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옮겨 다님으로써 존재하는 '텐트'와, 열려있고 무한정 확장되는 '마당'이 결합한 '텐트마당'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들 극단은 그 자유로운 형식 안에서 이질적인 두 극단의 개성을 조합해 한바탕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이팝나무 꽃잎. ⓒ들불

 

텐트가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흥미로웠다. 달팽이공방, 리슨투더시티, 수유너머N, 수유너머R, 공공미술단단, 장애인극단 판, 노들장애인야학 등의 모임이 연대해 서울에 연고가 없는 이들 극단의 공연을 돕기 위해 3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높이 6미터의 텐트를 세우는데 동참하고 나섰다. 배우들 또한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이들은 협업을 통해 무대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들 극단은 이 새로운 형태의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거대서사극을 펼쳐 보인다. 텐트마당극 '들불'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과거 역사 속에 존재했으나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정규직노동자 등 민중의 이야기들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 하층민의 삶이 명확한 개연성 없이 얽히고설켜 있는 이 작품은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의 경계를 쉼 없이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들 개별적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것은, 이팝나무 꽃잎을 따라 흩어진 기억과 단어, 목소리들을 주우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존재를 찾아가는 '소녀'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지도'를 가지고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소년'이다. 소녀와 소년은 과거에 존재했던 이들의 흔적을 따라 시대를 거슬러가며 잊혀진 사건과 그 속에 존재했던 이들의 삶과 조우한다.

 

이들의 여정을 통해 ‘80년 5월 광주에서 사라진 사람들’, ‘1942년 일본군에 의해 남양군도로 끌려갔으나 독립군이 되어 싸웠던 조선인들’, ‘핵 발전소에서 쓰고 버려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시대의 소모품처럼 쓰이다가 버려진 사람들이 물리적 시공간을 가로질러 하나의 광장에서 만나게 된다. 

 

광장은 모이면 모일수록 무한 확장되는 공간이다. 그것은 어떤 물리적 힘으로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흩어지더라도 다시 결합하게 되는 불멸의 공간이다. 

 

연출을 맡은 이케우치 분페이는 이 공간의 주인들인 과거 속 민중을 불러들임으로써 다음세대에게 미래의 마당을 선사한다. 그속에서 이들의 영혼은 다시금 들불이 되어 시대를 밝히고,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며 시대를 거쳐가면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을 만들어낸다.

 

또한,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는 방대한 서사의 힘을 잃지 않게 지탱하며 열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특히 카치역을 맡은 뇌성마비 장애인 배우 류세이오 류 씨는 언어장애인이라는 특성이 훈련된 연극배우의 발성과 결합해 완성도를 높이며 독창적인 연기를 선보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몸짓은 이 거대서사를 하나로 묶어내며 '들불'의 결말을 화려하게 장식해 냈다.

 

▲'핵 발전소에서 쓰고 버려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합창. ⓒ들불

▲방사능에 노출돼 자체 발광하는 '다크매터'의 등장 장면. ⓒ들불

▲이질적인 공간과 시점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다. ⓒ들불

▲류 세이오 류가 춤으로 공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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