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부지법, 장애 있는 딸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여성에게 집행유예
장애인계 유감…'장애인 두 번 죽이는 판결

장애가 있는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여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장애인계는 피해자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낮은 형량을 받는 것은 '장애인을 두 번 죽이는 것'과 같다며 유감을 표하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는 생후 2개월 된 딸이 장애를 지닌 것을 비관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씨는 지난해 9월 선천성 눈꺼풀 처짐과 안면신경마비 등 장애가 있는 딸의 얼굴을 이불로 덮어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씨는 장애를 지닌 딸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생명을 빼앗았지만, 자수했고 남편 등 가족이 처벌을 원치 않고 있다"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씨가 피해자의 장애를 비관해 범행한 점과 본인의 죄를 뉘우치고 깊이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서울북부지법의 이같은 판결에 장애인계는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우방송모니터단(이하 연구소)은 성명을 내고 "법원의 판결은 지금껏 장애아를 키우고 부양하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 가족들이나 장애당사자들의 존재감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법원은 '장애아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다'라는 법리적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장애인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내놓았다"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법원은 장애인 부양 의무자에게 동정인양 양형을 해주었지만, 그것이 또 다른 참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장애인위원회(이하 장애인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일본에서 장애운동이 처음 일어나게 된 계기가 장애아를 살인한 부모에 대해 가벼운 형을 집행한 사건에 저항하는 운동"이었다고 지적하며 "21세기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30년 전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그대로 일어났다"라고 개탄했다.
장애인위원회는 "우리는 만약 피해자가 장애아동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죄로 볼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이 사건은 MB정권과 이 사회가 소중한 어린 생명을 죽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장애인위원회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보편적 복지와 장애인의 권리 실현을 통해 다시는 이런 장애인의 사회적 살인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활동가는 "장애아동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재하고 모든 책임과 부담을 가족에게 떠맡기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면서 "장애아동의 발견부터 지원에 이르는 과정들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며, 장애아동가족지원프로그램이나 정책들이 개발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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