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을 달굴 '희망의 버스' 그 서막 열려
1박 2일 '희망 행진', 인천 콜트콜텍 공장에서 마무리
![]() ▲지난 16~17일, 이틀에 걸쳐 '6.16 희망과 연대의 날'이 시청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앞에서 펼쳐졌다. |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중앙에 있는 빛은 더욱 밝아졌다. 볕이 뜨거웠던 낮 1시 여의도부터 이어진 행진은 해가 저물고서야 대한문에 와서 머물렀다. 1박 2일의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행진’ 6.16 희망과 연대의 날 행사가 지난 주말 서울 중심부에서 진행됐다.
해 질 녘 중앙 무대에서는 지난여름, 희망버스에 탑승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시민 중 7명이 올라와 담담한 목소리로 하나의 시를 부분, 부분 나눠 읽는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엮여 마침내 하나의 시가 된다. 시가 마침표를 찍으면, 곧이어 희망버스에 탔던 이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희망버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꼭 일 년 전, 자신이 버스를 탔던 이유, 그리고 그들이 탄압해도 겁먹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이날 희망토크쇼에 함께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이윤경 전 활동가는 “장애인들은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에 상관이 없는데 왜 희망버스를 탔느냐고 물어보는 이가 있다. 그런데 노동에서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이 바로 장애인”이라며 “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도 받지 못하고 장애가 고려되지 않는 현장에서 방치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활동가는 “장애인들에겐 차별받았던 자신의 경험이 한진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더욱 공감하는 힘으로 작용해 백여 명에 이르는 장애인활동가들이 희망버스를 타게 됐다”라며 “국가폭력에 굴하지 말고 운동을 위축시키는 탄압에 더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내자”라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현재 장애인계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이동권 투쟁을 하면서 쌍용차와 콜트콜텍, 재능 등에 연대하고 있는데, 이러한 장애인계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투쟁에 여러분도 연대해달라”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대 위에 올랐다. 지난여름, 35m 상공 85호 크레인에 매달려 희망버스를 기다리기만 하던 김 지도위원도 마침내 희망버스를 탄 것이다.
"모두가 절망이라고 말할 때, 모두가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할 때, 그 절망의 벽을 천천히 기어오르던 담쟁이가 있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김 지도위원은 어려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을 하나하나 챙기고는 늘 그렇듯이 마지막 구호로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라고 마무리한다. 큰 울림과 함께 그녀의 팔이 곧은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뻗는다.
크레인 농성 200여 일이 넘어서던 작년 7월의 어느 날, 김 지도위원은 크레인 위에서 지상으로 하나의 편지를 띄워 보냈다. 그 편지에서 김 지도위원은 “어서 그리운 평지로 내려가 여러분과 함께 희망의 버스, 연대의 버스를 타고 싶다”라고 밝혔다.
![]()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치며 발언을 마무리 짓고 있다 |
"……저도 그리운 평지로 내려가 여러분과 함께 그 희망의 버스, 연대의 버스, 응원의 버스를 타고 다시 지금도 1,300일째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비정규직과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 누이들을 찾아,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난쟁이들처럼 살아가는, 그러나 마음만은 늘 밝고 거대한 발레오 동지들을 찾아, 여리고 순박하면서도 심지가 기타줄마냥 질긴 우리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도 밤에는 잠 좀 자자고, 야간노동 이제 그만 없애자고 했다고 백주대낮에 용역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아 병원엘 가야 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찾아,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준 현대차비정규직 동지들을 찾아, 15명의 동료들을 잃은 우리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들을 찾아, 노동자들을 넘어 모든 가난하고 소외받는 우리 이웃들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김진숙)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오늘, 재능교육 투쟁은 1,600여 일을 넘겼고, 쌍용차 희생자는 22명이 되었다. ‘희망과 연대의 날’이 열렸던 16일 오전, 인천 부평구 갈산동의 콜트 공장은 용역깡패와 경찰에 의해 침탈당했다.
중앙 무대에서의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주변에서는 ‘희망난장’이 밤새 이어졌다. 중앙 무대를 돌아 시청 덕수궁 돌담길 옆에서는 '간접고용 특수고용 그것이 알고 싶다-OX 퀴즈! 재능OUT 플래시몹'이 열렸다.
그리고 이날 길바닥에는 각종 사진이 ‘벽’이 아닌 ‘바닥’에 풀질로 붙여졌다. 사진 속에는 이명박 대통령, KBS 김인규 사장 등 각종 ‘투쟁의 대상’인 이들을 비롯해 투쟁 현장의 모습과 광장의 풍경 등이 담겨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진을 찬찬히 바라보기도 하고 얄미운 사진 속 몇몇 이들을 신발로 밟기도 했다.
밤이 깊어서는 ‘투쟁사업장의 고성방가’ 판이 벌어졌고,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해방'을 이야기했다. 전국에 있는 장기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은 무대 위로 올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전북고속 버스, 포레시아, 시그네틱스, KEC, 현대차비정규직, 재능, 골든브릿지, 한진, 유성, K2, 콜트콜텍, 다시 쌍용차까지. 이제까지 ‘장기투쟁사업장’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졌던 이들이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무대에 선 것이다.

무대 뒤편에서는 낮부터 이어진 바자회에서 넓게 벌여놨던 판을 접고 있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올라온 이들은 강정마을에서 새롭게 빚어온 붉은발말똥게 목걸이를 다 팔았다. 목걸이로 가득 찼던 탁자에는 강정마을 아이들이 돌에 손수 그린 그림 목걸이와 큼지막한 밤섬 목걸이 몇 개만 남겨 놓았다.
민주노련 등에서 마련한 포장마차는 늦게까지 환히 불을 밝혔다. 짙은 자주색 손수건을 목에 두른 사람들이 그곳에서 야식거리와 막걸리를 사서 이제는 차갑게 식은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지난해와 오늘의 희망버스를 주제로 술잔을 기울였다.
무대 위에서는 재능교육 유명자 지부장이 현재의 재능교육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들리는 이들의 목소리와 멀리서, 그러나 크고 굵직하게 들리는 유명자 지부장의 목소리가 쌍곡선을 그리며 깊은 밤의 어둠을 갈랐다.
밤이 깊어가고 포장마차의 불빛도 잦아들 때쯤, 중앙 무대에서는 몇 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작년 여름 희망버스 투쟁을 담은 영화 ‘버스를 타라’, ‘깔깔깔 희망버스’, ‘희망버스 A LOVE STORY(어 러브 스토리)'. 어떤 이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새벽의 추위에 살짝 몸을 떨며 길 위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밤새 길모퉁이에서 토론을 이어갔다.

새벽 여섯 시, 참가자들이 깨어나기 전에 더 일찍 쌍용차 해고노동자이자 희망식당 1호점 ‘쉐프’ 신동기 씨가 사람들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 씨는 방앗간에서 맞춰온 흰 쌀밥을 주먹으로 퍼주며, 짙게 끓인 붉은 육개장과 김치콩나물국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곧이어 잠에서 깬 사람들이 밥 냄새를 맡고는 줄을 선다. 동이 터오면서 그렇게 1박 2일의 희망난장 이틀째가 시작됐다.
이튿날 아침까지 남은 참가자들은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대한문에서의 행사를 마무리 짓고, 인천 콜트공장으로 연대의 발걸음을 옮겼다. ‘희망과 연대의 날’ 참가자들은 해산식의 장소로 6년 넘게 싸움을 이어가고, 어제 용역들에 의해 침탈당한 콜트콜텍 공장을 택했다.
1박 2일의 여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김 지도위원은 짤막한 소회를 트위터에 남겼다.
“이제 도착했습니다. 어제 08시 차 탔으니 34시간 만에 돌아온 셈입니다. 내려오는 길 위에서, 작년 희망버스 타셨던 분들이 이랬겠구나 내내 생각했습니다. 그 먼 길을 와서 최루액에 물대포 맞으면서도 크레인 근처도 못 와보고 돌아서던 마음이 어땠을까. 새삼 또 목이 메입니다” (트위터 @JINSUK_85)
1박 2일의 희망과 연대의 날은 마무리되었으나, 전국 장기투쟁사업장들의 싸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의 버스, 연대의 버스도 또 다른 희망과 연대를 향해 계속 행진하리라.
한편,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앞으로도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시대를 묻다 : 톡톡톡'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나가며, 이 행사를 통해 세상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장기투쟁사업장의 소식도 전할 예정이다.
이날 1박 2일 행사에 참가한 정창조(26세, 학생) 씨는 “솔직히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평소 대한문에서 열린 시민 집회와 뭐가 달랐는지 모르겠다”라면서 “작년 희망버스의 감동을 실현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에 희망버스와 같은 ‘미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정 씨는 “지난밤, 쌍용차 해고노동자 신동기 씨가 죽어서라도 우리 사정을 한 줄 기사로라도 내고 싶다는 말을 듣고서 그저 눈물이 났다”라며 “희망버스가 갖는 힘은 그들과 만난다는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라면서 소회를 털어놨다.
동이 터오는 아침, 장애인활동가들이 쳐놓은 텐트 옆에 휠체어에 앉아 밤을 지새운 문화예술카페 '별꼴' 김명학 활동가는 “작년 2차 희망버스 때, ‘나도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고 싶다’는 단 하나의 바람으로 휠체어를 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버스에 올랐었다”라며 “어젯밤 김 지도위원의 힘찬 목소리를 듣고 울컥했는데, 특히 작년 희망버스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장애인분들도 참여했다’라며 장애인을 불러준 것이 가장 와 닿았다”라고 전했다.
김 활동가는 “우리가 부산에 갔듯 김 지도위원이 서울에 오고 쌍용차에 오는데 희망버스는 이렇게 서로에게 힘을 준다”라며 “희망버스는 자유로운 힘이 오가는 버스이자 서로의 힘을 모으는 버스이며, 그것이 바로 연대”라고 강조했다.
![]() ▲희망버스를 탔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시민 7명이 집체시 '내가 버스를 탔던 이유, 니들이 탄압해도 겁먹지 않는 이유'를 낭독하고 있다. |
![]() ▲6.16 희망과 연대의 날, 시청 앞 대한문에서 '희망토크쇼'가 진행되고 있다. |
![]()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과 민중가수 박준 씨가 합동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
![]() ▲무대 뒤편에서 'MBC 김재철 구속수사 촉구서명'을 받고 있는 모습 |
![]() ▲제주 강정마을 활동가들이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치며 시민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고 있다. |
![]() ▲밤이 깊어가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
![]() ▲시청 덕수궁 돌담길 옆에서는 '간접고용 특수고용 그것이 알고 싶다-OX 퀴즈! 재능OUT 플래시몹'이 열렸다. |
![]() ▲OX 퀴즈에 참여한 한 참여자가 탈락하자 안타까워하고 있다. |
![]() ▲무대 뒤편에 마련된 바자회 모습. |
![]() ▲'투쟁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비롯한 투쟁 현장들, 다양한 광장의 모습 등이 벽이 아닌 '바닥'에 붙어 있다. |
![]() ▲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진 속 인물이 얄미운 듯 종종 '일부러' 사진을 밟아보기도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