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거, 이동 수단, 교육, 노동, 활동보조 등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 ‘부차적’인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편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집과, 장애인의 일상생활 영위를 가능하게 하는 활동보조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마저도 이 사회에서 누리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나침이 없는데, 여전히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운이 좋게 나는 이것들을 누리기에 조금은 수월한 곳에 살고 있다. 매달 엄청난 월세를 제외하면 휠체어의 접근이 쉬워 마음에 드는 나의 공간이 있고, 아직은 이용하고 있지 않지만 활동보조인제도 개념인 In-Home Supportive Service(IHSS)의 신청 막바지 단계에 있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인 작년 여름에 신청한 IHSS의 경우 지금에서야 최대 월 176시간을 자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결과를 통보받고, 내가 직접 인터뷰를 해 사용시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명수의 Attendant(활동보조인)을 고용해야 하는 단계가 남았다.
하지만, 실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다른 사람의 물리적 도움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없으면 없는 대로, 못하면 안 하는 대로 말이다.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되는 가사 노동을 하느라 몸 곳곳에 통증이 생기고, 청결하지 않은 환경에서 건강이 나빠지는 것 같다.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나의 경우, 예상치 못한 골절을 당해 활동영역이 급격하게 줄어들 경우를 대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장애인 당사자를 1급, 2급, 3급으로 나누어 등급에 따라 일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인터뷰를 통해 개인의 모든 요구를 수렴하여 지원 정도를 결정한다. 최근 예산 삭감의 악재와 겹쳐 더 많은 시간이 지체되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수입이 있으면 서비스가 거절되거나 자부담의 비율이 증가하는데, 활동보조인은 재정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해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사람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른 것을 고려할 때, 이는 합당하지 않은 것 같다.
일찍이 자립생활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당위적인 권리가 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ADAPT’라는 장애인단체의 통계에 의하면 시설에서 생활하는 2백만 명의 장애인 중 25만 명 이상이 지역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하지만, 적절한 주거와 지원제도가 없어 시설에 살기를 암묵적으로 강요당하고 있다. 미국의 모든 주는 Medicaid라는 의료보험을 통해 시설과 같은 서비스(?)는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지만,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는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한다.

 

   

‘시설이 아닌 우리의 집에서’ 라고 써진 피켓을 들고 있다.

 

 

활동보조인을 고용하게 되면 나의 생활은 많이 변화할 것이다. 집안 환경을 접근이 수월하게 변경할 수 있고, 휠체어에서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자세로 세탁물을 꺼내지 않아도 되며, 집까지 운반하고 또 선반에 정렬하는 것이 버거워 생필품을 사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또,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골절과 같은 위급상황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자립이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한 것은 앞서 언급한 것들이 아니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편의시설이 전무한 학교에 매일 엄마에게 안겨 등하교를 하고 내 몸에 맞지 않는 불편한 의자에 옴짝달싹 못한 채 종일 앉아있어야 했는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이 자연스레 수동적인 성격을 형성했다.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장애학생뿐 아닌, 학교 밖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과의 만남은 나의 주체성이 길러지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 시간들이, 그 네들이 없었다면 대궐 같은 집과 허울 좋은 제도가 뒤따른다 해도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해본다. 자립이 의의를 갖는 것은 보호자의 품에서 벗어난 독립생활 그 자체보다는,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고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4월 20일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대학 새내기였던 나에게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이 주었던 충격을 떠올리며, 더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강렬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아의 기분 좋은 편지 한 통

장애인이며, 여성이며, 아시안으로, 다양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고 그렇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대학 장애인권동아리 시절 장애인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글로써 꾸준히 소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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