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야학, 성황리에 '질라라비의 밤' 열어
지난 6일 저녁, 동대구역에서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장애인이 직접 연극을 하고, 대학생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불렀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하던 종종걸음들도 모두 멈춰 섰다.
연례행사처럼 동정과 시혜로 장애인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학생, 야학교사들이 직접 준비한 '질라라비의 밤'이 펼쳐진 것이다. 갇혀서 지내고, 날지 못하는 닭이 아닌, 본래의 닭을 뜻하는 '질라라비'처럼 거칠고 자유롭게 훨훨 날았던 그 모습을 담아보았다.
닭이 사람과 함께 살아온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어림잡아 2만년 가까이나 된다. 그 도막에 사람의 역사는 이 땅별 지구가 생겨온 45억년을 껑충 뛰어넘을 만치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그렇지만 닭의 역사는 도리어 사람들 때문에 내내 제 본성을 잃어 가는 박탈의 역사였다. 우선 날짐승인데도 날아다니는 제 본성을 잃게 되었다. 그다음으로는 제 먹이를 제가 장만하는 본성을 잃었고, 땅불쑥하니(특히) 제집을 제가 짓는 본성을 잃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닭은 아주 올곧게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은 꼬박 해낸 삶이었다. 이를테면 '꼬꼬댁 꼬꼬' 하고 홰를 치며 울어 새녘(밝아오는 동쪽 하늘)이 터 옴을 알려 줌으로서 늦잠 자는 게으름뱅이들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또 낮에는 풀벌레를 잡아먹어 푸성귀가 제대로 자라도록 도와주는 일도 했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러한 공로는 전혀 인정하질 않고 혹 손님이 올라치면 목을 비틀어 끓는 가마솥에 처넣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참혹한 꼴을 본 닭들은 정신이 번쩍 나게 되었다. (중략) 옳거니! 나도 내 본디 본성을 찾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고 다짐한 뒤 죽어라 하고 나래를 치고, 죽어라 하고 제 먹이는 제가 구하고, 죽어라 하고 제 둥지를 제가 만들고, 땅불쑥하니 날짐승이던 들짐승이던 덤비기만 하면 목숨을 걸고 싸우니 판판이 이겨지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숲 속을 온통 닭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나가 마음껏 살게 되자, 어럽쇼! 닭의 모양새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달라지느냐? 우선 닭의 덩메가 애소리(송아지)만 해졌다… (중략) 그러나 진짜로 달라진 것은 닭의 울음소리였다. 사람들이 쳐준 닭장에서 울 적에는 기껏해야 꼬꼬댁 꼬꼬 하고 새녘이 터 오고 있음을 알리는 정도였었다. 참으로 눈물겨운 전환의 계기다. 그런데 이 장엄한 거사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위대한 해방의 탄생에 감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저것은 닭처럼 생긴 봉(鳳)이다. 때문에 저것만 얻으면 천하를 얻는 행운을 잡는다고 '저놈, 저 봉을 잡아라'고 했지만 이것은 형편없는 졸치들의 망상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봉이 아니라 닭이 본디 제 모습을 되찾은 것, '질라라비'였기 때문이다. 백기완 선생 |
![]() ▲질라라비장애인야간학교 박명애 교장은 동정과 시혜가 아닌 우리가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며 시작을 알렸다. |
![]() ▲질라라비 교가에 맞추어 야학교사들이 몸짓공연을 하고 있다. |
![]() ▲교사들 몸짓 공연. |
![]() ▲직접 준비한 몸짓 공연을 야학학생과 대학생교사들이 하고 있다. |
![]() ▲직접 만든 동화로 연극을 하고 있다 - 검은 날개를 가진 요정과 흰 날개를 가진 요정 간의 갈등과 화합의 과정을 담은 동화는 날개의 빛깔로 요정과 요정이 아닌 것이 구별되지 않듯이 현실의 장애등급제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
![]() ▲열린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공연에 환호하고 있다. |
![]() ▲야학학생과 교사의 사회로 질라라비의 밤이 문을 열었다. |
![]() ▲사회를 맡은 장선형 학생과 이강우 교사. |
![]() ▲문화제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염원하며 대선후보들에게 엽서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
![]()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가 악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