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궤도

어릴 적 사고로 양팔을 잃은 철수(최금호)는 발로 담배를 말아 피우거나, 기타를 연주하고, 머리를 감는다. 가방을 어깨에 메는 그의 현란한 발놀림은 '양팔 없음'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만든다. 홀로 고립된 채 부단한 반복으로 습득되었을 행위들은 그의 몸과 정신을 '없음'으로부터 해방된 경지에 오르게 한 듯 일상 위에 덤덤하게 펼쳐진다. 그 속에는 어떤 손길도 닿지 않고 홀로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다. 빈 소맷자락을 나부끼며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초월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가난하고 고독한 땅, 그러나 외따로운 초원 위에 덩그러니 놓인 그의 낡은 초가집은 오히려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소박하고 정적이며 자유로운 자연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철수의 일상은 철저하게 현실적이다. 영화 <궤도>는 장애의 '몸'을 어떤 왜곡도 없이 충실히 보여줄 뿐이다.

옌볜 방송국 촬영감독 출신인 김광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금호의 삶의 이야기> 8부작이 영화의 시발점이 되었듯 <궤도>는 상당 부분 최금호라는 인물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여덟 살 때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던 고압선에 감전돼 일곱 차례나 수술을 했음에도 계속 썩어들어가기만 하는 양팔을 결국 뽑아내야 했던 최금호는 영화 속 철수의 모습이다. 감독은 억지로 그에게 인위적인 대사를 읊게 하지 않으며, 그의 삶 속에 우연히 향숙(장소연)이라는 여인을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듯 영화 속에서 만나게 한다.

무엇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독립된 몸을 이끌고 생계를 위해 나물을 채취하러 갈 때면 철수는 어김없이 호기심과 공포 또는 경멸의 눈길과 마주하게 된다. 카메라는 충실히 철수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은 돌연 등장했다 사라지는 시선들이 느닷없다. 그러나 철수는 훼손되고 변형된 신체를 향한 몰이해의 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뿐이다. 그의 공간은 세상과 단절된 듯 보이지만 철수는 그에게 다가오는 외로운 이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억울하게 쫓기어 갈 곳 없는 향숙을 그는 기꺼이 머물게 하며, 병든 노인에게도 문을 열어준다.

청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향숙과 철수, 둘 사이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소통은 없다. 그러나 그녀의 수화를 해석할 수는 없어도 그는 향숙이 처한 상황과 아픔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한없이 정적인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는 감정들은 서로에 대한 염려와 배려를 담고 있으며, 카메라는 느린 속도로 말없이 다가가는 인물의 감정을 포착한다. 형식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라 마흔아홉 장의 그림이 영화의 토대였던 <궤도>는 인물 간의 거리와 동선, 교차하는 시선들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해낸다.

한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밀착되지 않고 언제나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서로를 염려하는 눈빛만 주고받는 두 사람의 거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 거리가 좁혀질수록 철수는 어린 시절 자신이 죽였다고 믿는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지고, 향숙의 사랑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변모한다. 철수는 끝내 다가오는 향숙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만, 스스로 짊어진 원죄의 '궤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낯설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담고 있지만, 김광호 감독은 <궤도>를 통해 비극이란 인간의 삶, 그 원형의 궤도 속에서 순환되는 것일 뿐, 파국 역시도 또 다른 시작들이 촉발하는 지점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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