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아닌 장애인의 욕구로 사회서비스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장애등급폐지공대위 추진, 7월부터 토론회 개최 등 본격 활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8일 늦은 2시 서울 성북구청 아트홀에서 뇌병변장애인 장애등급 모의심사 및 장애등급제 폐지 교양대회를 열고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인복지 전달체계 개편을 촉구했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장애등급심사 결과 장애등급 하향 비율이 36.7%로 나타나는 등 장애등록제도의 국민적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복지부는 내년부터 신규로 등록하는 모든 장애인에게 장애등급심사를 확대하고 앞으로 일선 의료기관은 장애상태만을 진단, 최종 등급부여는 국민연금공단에서 결정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해 장애등급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날 교양대회에 온 참가자들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활동보조서비스 등의 사회서비스를 고유한 판정체계에 따라 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복지 전달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수정바델지수를 적용한 뇌병변장애인의 장애등급 모의판정에서 다수의 참가자는 장애등급 하향 판정을 받았다. 특히 현재의 수정바델지수 적용으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면서도 6급 판정을 받거나 아예 등급을 받을 수 없다는 판정이 나온 어이없는 예도 있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김태현 사무처장은 “수정바델지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도를 조사하는 하나의 도구일 따름인데, 한국에서는 수정바델지수가 뇌병변장애인의 장애등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어 서비스를 제한하는 등 거꾸로 쓰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함께걸음의료생활소비자협동조합 김슬기 작업치료사도 “배뇨조절 항목의 경우 복지부는 수행 가능 여부를 보는 것이라고 하지만 의사들은 ‘배뇨 느낌이 있느냐’라고 물으면서 평가를 진행해 1급 장애인이 2급 판정을 받고 현재 유급도우미를 고용해 생활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라며 수정바델지수 적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장연 남병준 정책실장은 “지난 9일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단체를 초청해 진행한 간담회에서 보행이 불가능한 경우와 두 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에는 1급으로 판정하겠다는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수정바델지수 점수에 따른 등급체계는 유지하는 등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라고 지적했다.
모의판정을 진행한 조현수 물리치료사는 “1급이 아니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는데 삶의 미세한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수정바델지수 때문에 2급 이하 판정을 받으면 삶이 어떻게 변화할까 걱정이 되었다”라면서 “하지만 기준에 따라 냉정하게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었는데 등급 자체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이 두 명이나 나온 것을 볼 때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인가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전장연 김도현 활동가는 “보건복지부가 장애등급이 엉터리이고 부풀려져 있다고 말하는 데는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 상황의 근본적인 문제는 ‘왜 거짓말까지 하면서 장애등급을 높게 받으려고 하는가?’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이는 등급에 따라 활동보조서비스와 장애인연금 등 사회서비스의 대상이 되기 때문인데, 장애등록제는 장애인을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활동보조서비스는 현재 1급 장애인만 받을 수 있게 규정돼 있지만, 활동보조서비스 인정조사표에 따르면 2급, 3급도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장애인의 욕구를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각각의 사회서비스 고유의 판정체계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김 활동가는 “유럽 선진국에서도 중증장애인과 경증장애인의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구분은 노동, 소득보장에 한정돼 사용되며 사회서비스를 받을 때에는 각각의 서비스에서 고유한 자격 적격 판정을 따로 받도록 돼 있어 우리처럼 총괄해서 ‘이 장애인은 몇 급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라고 설명하고 “따라서 (장애등록제를 폐지하고) 각종 사회서비스를 연결하는 장애사회서비스센터와 같은 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한편, 현재 ‘장애등급제폐지와 사회서비스권리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약칭 장애등급폐지공대위)’ 결성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행동하는 의사회,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장애등급폐지공대위는 오는 7월 토론회 개최 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