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당' 인권역량강화 공청회 열려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논의 및 정책 제안

▲'정정당당' 인권역량강화 공청회가 26일 늦은 1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정신장애연대와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 주관으로 열렸다.

 

정신장애인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당사자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정신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정정당당’(‘정’신장애인의 ‘정’당한 권리 ‘당’사자가 ‘당’당하게 말하다) 인권역량강화 공청회가 26일 늦은 1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아래 카미),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 주최로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서진환 교수의 특강, 당사자운동에 대한 논의 및 정책을 제안하는 정신장애인당사자들의 발표,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토론 등 3부로 나눠 진행됐다.

 

첫 번째 순서로 ‘대중매체의 편견조장 중단을 위한 당사자 운동’이라는 주제로 특강에 나선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서진환 교수는 “정신장애인은 증상으로 말미암은 어려움보다 질환에 대한 사회적 반응 때문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대부분 대중매체를 통해 생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예를 들면 지난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때 미국 CNN 뉴스진행자는 가해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신원이 밝혀지기도 전에 서둘러 정신질환자의 소행일 것으로 단정하고 ‘정신병자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대책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라면서 “대중매체의 편견조장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92%가 폭력성을 나타낸 적은 없으며 정신장애인이 폭력범죄로 체포된 비율이 일반인구집단보다 더 낮다는 통계는 묻히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그런데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은 장애 비하 발언에 대해 당사자 또는 관련단체가 문제를 지적해 공식 사과를 받거나 소송도 제기하지만, 우리나라 정신장애인들은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따라서 앞으로 장애인당사자가 나서서 편견을 조장하는 언론매체에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를 요청하고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등을 통해 시정을 요구하는 깨어 있는 시청자 운동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당사자 발표 시간에 태화샘솟는집 이용자 김영중 씨가 사회복귀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당사자 발표에서 카미 박미선 활동가는 “정신장애인당사자운동은 당사자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면서 “‘사람’이 아닌 ‘행위’로 규정하는 이유는 정신장애인 문제는 범국민 차원에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 교육자, 전문가, 치료자 등도 당사자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경우 당사자운동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 활동가는 “나는 고등학교 때 발병한 정신분열증으로 입원한 이후 개인적인 성공을 통해 정신장애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생각하며 노력한 적이 있었다”라면서 “그러나 카미를 만나면서 다른 정신장애인의 현실을 더 잘 알게 됐고 당사자운동을 조직적으로 해야만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전했다.

 

태화샘솟는집 이용자 김영중 씨는 “요양원에서 13년 만에 나왔지만 갈 곳이 없어 다시 요양원에 입소했던 적이 있다”라면서 “그러다가 사회복귀시설을 통해 비로소 지역사회에서 독립하며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은 장애인인권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 씨는 “그러나 현재 서울시의 사회복귀시설은 입소시설 4곳, 주거시설 52곳, 이용시설 34곳에 불과해 10만2천여 명으로 추정되는 정신장애인의 수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며,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정신장애인 대상 체험홈이나 자립생활센터도 현재는 없다”라면서 “정신장애인도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서울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중랑한울정신건강증진센터 이용자 신석철 씨는 “정신장애인의 상당수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장애인등록을 하지 않고 있거나, 장애로 판정받을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애인등록을 하지 못하는 예도 있다”라면서 “그런데 장애인등록을 하지 않으면 취업 시에 비장애인과 동등한 능력을 요구받는데 이를 충족하기 어려워 취업하더라도 유지가 어렵다. 또는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으면 아예 채용을 꺼린다”라고 밝혔다.

 

신 씨는 “장애인등록을 하면 정부 보조금이 지원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지만, 자리가 많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라면서 “현재 서울시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서 직무 개발 사업으로 추진 중인 동료지원활동가처럼 정신장애인 특성에 맞는 고유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공청회 기획단으로 활동한 정신장애인당사자 7명이 무대로 나와 연극 '또 다른 시작'을 통해 정신장애인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당사자 발표 시간에는 공청회 기획단으로 활동한 정신장애인당사자 7명이 무대로 나와 연극 ‘또 다른 시작’을 공연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이 연극에서 박미선 활동가는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기를 넘어설 수 있어요”라면서 “다음 세대의 학생들이 정신적인 아픔이나 정신질환을 앓게 될 때 ‘나 정신질환 있어’ 이렇게 드러내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라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이승준 씨는 “금요일 저녁부터 화요일 아침까지 묶여본 적이 있으신가요?”라면서 “정신장애인이 차이가 있다면 너무도 쉽게 묶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민정 씨 또한 “왜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은 청소, 간단한 잡무만 해야 하나요? 요리사, 간호사, 변호사, 의사가 될 수 없을까요? 제발, 꿈의 발목을 잡지 말고 일할 수 있는 길들을 열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안진수 씨는 “단체에서 억한 감정을 말했다고, 말한 뒤 받은 소견서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기괴한 사고, 사회생활의 부적응’. 그 말들은 더욱 절 어둡게 합니다”라면서 “서로 통하는 사람 같은 관계 속에서 치료자를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공청회 마지막 순서로 토론회를 진행하는 모습.

 

이어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한국정신장애인연합 허진 이사는 “서진환 교수 특강에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이야기가 나왔는데, 당시 미국은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을 미국사회가 이주청소년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구조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라면서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소설 같은 이야기만 난무했을 뿐 미국 조사를 통해 나온 결론을 제대로 보도한 곳은 거의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허 이사는 “일본의 경우 신체장애인단체의 지원을 받아 출범했다는 한계와 의료·제약회사들의 막강한 영향력 등으로 정신장애인당사자운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미흡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 “따라서 앞으로 한국에서는 정신장애인 나름의 운동 방식이 무엇인지, 이를 통해 정신장애인당사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태화샘솟는집 한승일 주거지원팀장은 “비장애인의 경우 실직, 가족의 사망, 이혼 등을 삶의 위기로 보는데 정신장애인이 실직, 가족에게 버림받음과 같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도 이를 위기로 보지 않는다”라면서 “이는 정신질환 증상과 관련된 의료적 처지를 위한 위기개입체계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장애차별조사2과 손두진 조사관은 “정신보건과 관련된 정부의 예산 대부분이 의료기관에만 투입되고 있고, 정책 또한 가족이 안전망을 제공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설계되고 있어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고통이 극심하다”라면서 “따라서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손 조사관은 “정신장애인의 가족들은 경제적 부담과 함께 장기적으로 누가 돌볼 것인가에 대해 큰 부담을 안고 있다"라면서 "경제적 지원은 물론 정신장애인의 정신관리 및 일상생활기능을 향상시키는 서비스 이용을 촉진해 가족의 부담을 줄어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손 조사관은 “아울러 정신장애인은 실제적인 활동능력을 측정하는 수단적 일상생활기능에서는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므로 정신장애인을 위한 활동보조서비스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 박유미 과장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서울시는 2012년 12월 말 95개소인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을 104개소까지 늘릴 것”이라면서 “아울러 시설 간 직업재활 특성화를 추진해 정신장애인 자립기반을 구축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날 공청회는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정신장애인당사자가 참여해 정신장애인의 권리 찾기에 대한 열기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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