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처음은 항상 어렵다. 첫 글은 자기소개를 겸하는 약간 사변적인 글이 될 것같다. 나는 비디오로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을 한다. 2000년부터 2010년 2월까지 나는 봉천 9동 ‘함께사는세상’에 살았었다. 1999년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의 지적장애인(이하 회원)들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 2000년 회원들의 일상을 담은 <나는 행복하다>, 2001년 회원들의 직업인으로서의 면모를 그리고자 했던 <친구>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들려던 영화는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세 번째 영화는 엎어졌다. 그 후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나는 장애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내 영화의 주인공이 사랑을 시작하고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가는 긴 시간들을 촬영해가다 어느 날 문득, 이 친밀함을 무기로 얻어진 테이프들이 어쩌면 영화의 속성인 ‘엿보기’에 충실한 재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대변자로서 말하기를 포기하고 조력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디액트의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은 나에게 그 길을 보여주었다.

2006년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회원들과 함께 했던 미디어교육 모습. ⓒ푸른영상
만남에서 교육으로
2005년, 서울여고 특수학급 학생들과 함께하는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에 교사로 참여했다. 유리는 나의 첫 학생이었다. 6명의 모둠원 중에서 유리는 가장 말이 없었다. 한 학기의 교육이 끝나갈 즈음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소망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유리가 말했다.
“엄마, 나는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하고 싶어요. 학원에 보내주세요.”
교육은 곧 끝났고 우리는 헤어졌다.
사랑스러웠던 아이들, 착하고 정이 많았던 그 아이들. 학교에 가지 않게 되자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한동안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통해 일촌을 맺고 파도타기를 하면서 인연을 이어가나 했지만 블로그로 옮겨오자 교류는 뜸해졌다. 그리고 유리가 찾아왔다.
유리는 이제껏 만나왔던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실이 아닌 블로그라는 공간이, 말이 아닌 글이라는 수단이 그렇게 우리를 이어주었다. 유리는 사무원이 되어있었다. 맥도날드나 빕스에서 서빙을 하는 아이들에 비해 유리의 처지는 나아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유리에게는 꿈이 있었다. 유리의 꿈은 웹디자이너였다. 그리고 한탄하곤 했다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느릴까요?”
그 때 그 교실에서 유리는 참 뛰어난 학생이었는데 그 빛나던 유리가 고립감을 호소했다. 학교라는 공간을 떠난 후 아이들을 묶어주던 네트워크는 끊어진 듯 보였다. 진보넷에 블로그를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표현하며 활발하게 블로깅을 하던 유리는 어느 날, 거짓말처럼 발길을 끊었다. 자신이 너무나 열중하는 게 두렵다 했다. 그리고 다시 각종 컴퓨터 자격증을 따는 일에 열중했다. 유리에게는 참 많은 자격증이 있다. 유리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을 나는 주위에서 보지 못했다. 참 많은 합격소식을 문자로 받았지만 여전히 유리의 꿈은 멀어보였다.
2008년 겨울, 유리와 친구들을 여의도 BTB호프에서 열린 일일주점에서 만났다. 교육 이후에 얼굴을 본 건 처음이었다. 현실세계에서의 유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그 때 교육을 받았던 다른 아이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미디어교육 다시 해요~!”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나는 아직도 멀었다. “그래, 그래” 하면서도 나는 그날 그냥 웃었다. 그건 내 아이들에게 하는 반응과 비슷한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시간은 불연속적이다. 너무나 달라진 시공간인데도 여전히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교실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그애들이 나를 미디어교사로만 여기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유리가 문득 내게 물어왔다.
“선생님 미디어교육 언제 할 거예요?”

영화 'Why not?' 감독 한정제씨가 자신의 영화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비마이너
한 개의 잔이 차고 넘치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2006년부터 나는 내 영화의 주인공인 함께사는세상의 회원들과 미디어교육을 진행해왔다. 기획을 하고 각종 공모에 기획안을 내고 푸른영상의 동료들을 교사로 섭외하며 5년째 교육을 만들어왔는데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2005년, 유리네들과의 만남이 큰 힘을 주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내게, 유리네들과 함께 했던 미디어교육은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지적 장애인에게 미디어교육이 가능할까? 그런 갸웃거림에서 시작되었던 2005년의 교육, 그 시간은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확인되자마자 나는 내 영화의 주인공인 ‘함께사는세상’의 회원들과 함께 영화만들기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2009년, 유리를 다시 만났다.

영화상영이 끝난 후 영화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이 무대인사시간을 가졌다 ⓒ비마이너
영화작업에 열중하는 ‘함께사는세상’의 회원들, 그리고 유리를 보다 보면 항상 하나의 장면이 연상된다. 결혼식 피로연에 가보면 종종 샴페인 잔을 피라미드로 쌓아올려서 술을 따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맨 꼭대기의 잔을 채우면 샴페인은 신기하게도 층층이 쌓인 아래 잔들로 흘러내린다. 한 개의 잔이 세 개로, 세 개가 여섯 개로 그렇게 샴페인이 흘러 넘쳐 피라미드의 전체를 채운다.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이 지나온 길이 그러했다. 최초에 미디액트, 서울여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함께 최초의 잔을 마련했을 때 그 잔을 채우는 노력을 함께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쁘다. 그리고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이라는 잔을 마련하여 미디어교육을 하고 영화를 만들었을 때, 신문과 TV에 ‘최초로 지적 장애인들의 힘으로 만든 영화’라는 카피로 홍보되었을 때, 그 홍보문구가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잔이 차고 넘치면 세 개로, 여섯 개로 새로운 잔들이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 앞으로도 샴페인은 하나에서 세 개로, 또 그렇게 무수히 많은 잔들로 흘러 넘칠 것이다. 그 가능성을 영화에서 확인해보시길. 유리가 시나리오를 쓴
류미례의 '시 선' 류미례 님은 여성과 장애와 가난에 관심을 두고 비디오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