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일어나는 경기로 시작은 늘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 방에서 나오는 한빛이의 모습을 보면 영화 ‘링’의 산발귀신을 보는 것 같다. 엉금엉금 네 발로 기어 나오는데 영락없는 그 모습이다. 그리고 눈이 맞춰지면 벌떡 일어나서는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으로 끌고 들어가 어떻게 해 달라고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대면서 성화를 부린다.
그렇게 아침이 시작되고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열심히 노래를 따라하며 춤도 추고, 기분을 내다가 녀석은 ‘끄-윽’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 모서리를 잡고 넘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으로 버틴다. 얼른 달려가 앉히고 안정을 취해주면 ‘배시시’ 웃으며 다시 마우스를 잡고 원하는 그림을 찾는다고 기운 다 빠진 손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설날 아침에도 녀석의 경기는 계속된다. 일찍 차례를 지내야 하기에 서둘러 준비를 하고 할머니 집으로 가려는데 쓰러진다. 오늘도 편하게 아침을 맞이하기는 틀렸다는 생각을 하며 할머니 집에 도착해 세배를 하는데 이놈은 제 마음대로다. 그렇게 사촌동생들과 함께 세배를 하고 차례준비를 하는데 초점을 잃은 눈을 해가지고 비틀거리며 들락거리는 것이 영 불안해 보인다. 얼른 세배를 마치고 가족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할머니는 차려입은 김에 독사진도 한 장 찍어야 겠다며 “이제 죽을랑가 보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걸 보니” 한다.
녀석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른들 틈으로 돌아다니더니 결국은 쓰러지고 만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경기를 하면 분위기가 한순간 엄숙해진다. 모두 아이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돼 버리고, 할머니의 신경은 곤두서게 된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말을 하지 않게 된다. 혹시라도 된서리(?) 맞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가 할머니의 신경을 자극하면 아침이 엉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더욱 조심들 하게 되는데 그런 순간이 가장 숨 막힌다.
결국 농담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가볍게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기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란 식으로 너스레를 떨고 만다. “금방 괜찮아지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혀를 끌끌 차며 눈을 한번 흘기고 마는 할머니를 보고 가족들 얼굴이 웃음기가 돈다. 매일 이런 모습을 보며 지내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만 가족들은 가끔 보는 모습이다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더 들어 말이며 행동을 더 조심하게 된다.
설날 아침 분위기를 그렇게 엄숙하게 만들어 놓고 이놈은 누워 있다가, 일어나 돌아다니다가, 동생들과 어울려 컴퓨터도 하고, 작은 엄마가 돌보기도 하는 사이 차례를 마치고 얼른 아침을 먹는다. 오후 들어 기운이 나는지 활발하게 웃고, 장난도 치고, 떼도 부리자 할머니는 이러려고 아침부터 그렇게 애간장을 다 녹였느냐고 타박을 하는데 이놈은 듣는 둥 마는 둥 귓등으로 넘긴다.
저녁에는 외할머니 집에 가서 세배하고 역시 일과는 컴퓨터다. 절하기 무섭게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를 한다. 별다른 사고 없이 서울의 끝자락에서 반대편까지의 여정을 마치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니 저도 피곤한지 낮잠을 한숨 잔다.
이제 음력으로, 양력으로 완전한 새해를 맞았으니 14살이 되나? 시간은 광속으로 지나간다. 엊그제 태어나 빽빽대더니 벌써 중학교 갈 나이가 됐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얼마나 애를 태우고, 얼마나 많은 한숨으로 지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서로 용케 버티고, 견디며 왔다. 서로에게 격려와 용기의 박수를 아낌없이 주고받아야 할 것만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우린 나이가 들어 주름이 패고, 흰 머리가 피어나고 있고, 한빛이는 덩치만 커졌지 여전한 모습으로 천둥벌거숭이로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잘 해 왔으니, 앞으로도 우리는 잘해나갈 것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재미나고, 더 많이 즐겁게 살아갈 준비가 돼 있다. 물론 변수는 생겨날 수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기꺼이 받아 안고 갈 준비가 돼 있다.

 

 

최석윤의 '늘 푸른 꿈을 가꾸는 사람들'
 
 
복합장애를 가진 아이와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정신연령이 현저히 낮은 아비로 집안의 기둥을 모시고 살아가는 다소 불충한 머슴. 장애를 가진 아이와 살아가면서 꿈을 꾼다. 소외받고, 홀대 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한 가운데로 모이는 그런 꿈을 매일 꾼다. 현실에 발목 잡힌 이상(理想)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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