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한 세상이다.

어쩜 이렇게 징글맞은 놈들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복도 지지리도 없는 국민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으며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몇 해 전 처음으로 장애인 단체와 인연을 맺으면서 느꼈던 기분은 한편으로 기겁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가 띵한 것이었다. 살다 살다 이런 집단이 있구나 하는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장애인들이 소위 데모를 하는데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8개월가량을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것을 보면서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 사안에 따라 몇 년을 농성을 하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의 사안은 하나가 아니라 무더기로 이어져 도무지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슨 감자를 캐는 것처럼 하나를 뽑아들면 주렁주렁 달려 나오니 텐트를 지고 이사를 다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몸도 불편한데 무슨 놈의 사연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그렇게 데모를 하면 어떻게든 해결점을 찾기 위해 애쓰는 척은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공무원들의 행동인데 집회를 하고, 농성을 하고, 기자회견을 해도 누구도 거들떠도 안 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 인연을 맺고 함께 얼굴을 익혀가면서 눈동냥에 귀 동냥으로 얻어 들은 이야기들은 왜 이처럼 ‘무모한 도전’을 하는지 알게 되고 장애와 관련해서 까막눈에 해당하던 내게 새로운 세상이 존재함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징글맞은 세상에서 징글맞은 놈들이 판치고, 개새끼에 쥐새끼가 날뛰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펼치는 용감한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에 고개가 절로 숙여 졌다.

 

이 땅에서 장애인들이 무턱대고 편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이란 것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고, 장애로 인해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를 하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 부는 날이나, 땡볕에 목이 타 들어가는 날에도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지나는 사람들 눈총 다 받아 가면서, 손가락질에 욕지거리 들어가면서 악다구니 써야 뭐 하나 들어주는 척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고, 21세기 장애인권의 현주소다.

 

툭하면 눈물 훔치는 대통령은 립서비스는 최고의 경지에 올라 카메라 앞에서 고난도의 눈물 연기를 보이고는 돌아서서 다 잊어버리니 기억상실도 최고봉이라 하겠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의 바다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훔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 힘들게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감동을 먹었다며 찔끔거리더니 장애를 가지고도 피아노를 잘 쳐 한국을 알려 나가는 장애를 극복(?)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더니, 그것으로 그만이다. 찔끔거린 눈물 값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냥 그때뿐이다. 감동이 그저 감동으로 끝나고 만다.

 

그런 대통령 밑에 장관이라고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는 인물들을 보면 이건 더 가관이다.

차라리 ‘쑈’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눈치 보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형국이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거짓말 잘하는 어른(?)을 모시고 살면서 제대로 보고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보니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들지 않고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면서 윗사람 눈치 보느라 눈알이 오른쪽으로 몰려 다른 곳을 보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들만 대접하는 더러운 세상.

힘세고, 무릎 잘 꿇고, 고개 잘 숙여가며 대거리 안하는 사람만 인정하는 더러운 세상.

그런 세상에서 장애인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채색해 가는 것은 피터팬의 나라에 들어가야 가능할 것 같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해 준다는 것도 많아 오른 손으로 뺨을 때리고, 왼손으로는 멀쩡한 곳을 어루만지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꼴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져나가고 쥐꼬리만큼의 예산으로 생색내기는 세계 챔피언감이다. 그러면서도 늘 자신들은 최선을 다해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입에 침도 안 바르면서 자랑질을 해 대고 있으니 열불이 안 날 일이냐 말이다.

 

저들은 장애인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집에서 나오지 말기를 강요하고 있다. 활동보조 재원을 늘려 인원을 확보하고 시간도 늘려야 한다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있으면서 노력하고 있으니 기다리란다. 그 말은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니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잠자코 있으란 이야기다. 결국 집에서 나오지 말고 방안의 한량으로 지내란 말이다.

 

사람답게 살 생각을 말라고 강요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너희들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말라는 식이다.

장애를 가졌으면 잠자코 얌전이나 떨면서 지내지 왜 뭘 만들어 내라고 하는지 모를 일이란 듯이 가볍게 넘겨 버리는 행태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장애인들에게 인권이란 것이 있기나 하냔 식으로 무시하고 넘기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올 해도 어김없이 장애인의 날이 온다.

한 쪽에서는 장애인의 날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차별의 현실을 고발한다는 의미에서, 다시는 차별 받지 않고 살겠다는 의미에서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라고 하는 ‘그 날’이 온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찾아 사진 박는 일에 혈안이 될 것이고, 미담의 주인공을 찾아 나설 것이고, 역경을 이긴 인간승리의 표본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장애인들은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이다. 사람들의 눈총도, 손가락질도, 언론의 비난도, 권력의 힘에도 굴하지 않고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의 장애현실을 고발하며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목청껏 외칠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정권의 안일함이다. 그들을 거리의 싸움꾼으로, 투쟁의 선봉으로, 불의에 항거하는 투사로 만들어 가는 것은 이 정권이다. 때리고, 밟고, 가두고, 힘으로 찍어 눌러도 그들은 언제나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싸움을 준비할 것이고, 전장에 나서는 전사의 마음으로 거리로 나설 것이다. 이 땅에서 누구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와 조롱과 천대와 홀대를 받지 않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그들은 언제나 거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하늘로 올릴 것이다.

 

처음 그들을 보고 대단한 사람들이란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열정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장애현실을 다 뜯어고치기 전에는 저들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의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열정적이고, 전투적이다.

 

그 ‘무모한 도전’은 마침내 세상에 희망의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