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장미’ 접으며 개인의 기억, 역사의 단편 공유하는 워크숍 열려
“‘나는 누구지?’ 물음 끝에는 늘 형제복지원이 있었다”

▲10일 늦은 4시,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 필룩스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씨와 <나의 역사, 타임캡슐> 워크숍이 진행됐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떨어져 나온 사건 같았어요.

종선 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형제복지원에 갇혀 있다가 나와 사는데, 자신이 운전할 줄은 아는데 운전 법규를 모르는 사람 같다고. 어느덧 운전하며 가다 보니 중앙선을 넘고 있었다고.

그러한 특수한 경험을 한 종선 씨의 경험을 우리의 경험 속으로 끌어오고, 일반 사회 속에서 살았던 우리의 경험을 종선 씨의 경험 속으로, 그렇게 서로 한 발자국 다가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해요.”

올해 서울변방연극제 공식초청작이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실험다큐극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 작·연출 장지연 씨가 말했다. 그의 곁엔 부산 형제복지원 생존자이자 증언자, 그리고 <우리는 난파선을…>에 출연했던 한종선 씨가 앉아 있었다.

10일 늦은 4시,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 필룩스에서 <나의 역사, 타임캡슐> 워크숍이 진행됐다. 이번 워크숍은 한종선 씨와 함께 ‘종이장미’를 만들며, ‘종이장미’라는 매개체를 통해 개인의 기억, 역사의 단편을 공유하는 자리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그런데 왜 종이장미인가. 그 이유에 대해 한 씨는 말한다.

“처음엔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였어요. 교도소 같은 방 안에 있던 분한테 배웠는데 거기선 먹고 자는 거밖에 없으니깐 시간 때우려고. 이게 엄청 까다롭고 귀찮은 작업이에요. 하나 접는데 40분 정도 걸려요. 접다 보면 이걸 왜 접고 있지? 싶은데, 하나의 장미를 다 접었을 때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 성취감이 있어요.

장미 접는 걸 잊지 않기 위해 반복 연습했어요. 세상 살아가는데 이 하찮은 장미접기가 도움이 된 거죠. 인내력을 키워줬어요. 그리고 장미 하나로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됐고.”

지난 4일부터 사흘간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 올랐던 <우리는 난파선을…>에도 한 씨가 접은 붉은 종이장미꽃이 나온다. 극 속에서 장미꽃은 한 씨 손에서 배우의 손을 지나 형제복지원의 또 다른 피해자에게로 전해진다. 하나의 생명처럼 장미꽃이 흐른다.

▲한종선 씨가 자신이 접은 붉은 종이장미꽃을 보이고 있다.

장미꽃 접기를 시작하기 전, 한 씨는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87년도에 형제복지원에서 나와 소년의 집으로, 갱생원으로 넘어갔어요. 그 안에서 기술자격증 따고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무엇 때문에? 나는 누구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드는 거예요. 엄마도 있었을 텐데 기억 안 나고. 누나와 아버지도 찾아야 하는데…. 그 물음들 끝에는 늘 형제복지원이 있었어요.”

당시 한 씨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갇혀 있던 한 씨의 누나와 아버지는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지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가 누나와 아버지를 만난 건 성인이 되고 한참 후, 정신병원에서였다. 누나와 아버지는 형제복지원에서의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고 있었다.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기 위해 한 씨에겐 두 가지 길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1인시위였고 또 하나는 ‘사이코패스’의 길이었다. ‘형제복지원 사건 때문에 너무 억울해 못 살겠다!’ 칼 쥐고 보이는 대로 사람들 죽이며 그 한마디 외친다면 다시 이슈화되지 않을까. 그에게는 그렇게 절박했던 오늘의 일이었고 사람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과거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난자한 칼부림으로 또다시 ‘부랑인’ 취급당할 순 없었다. 그는 누나,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꿈이 있었다. 두 갈래 길에서 그가 택한 건 국회 앞 1인시위였다.

한 씨는 군대도 갈 수 없었다. 신체검사에서 최고점이 나와도 마지막에 ‘사회 부적응자’라는 도장이 찍히면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도저히 사회와의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한 씨에게 장미 접는 방법을 알게 해 준 교도소는 먹고 살기 위해 저지른 절도 때문에 잡혀 들어간 곳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먹고 살 길 없어 범죄를 저지르게 돼요. 그 사람이 형제복지원 나온 뒤 어떻게 살았고 무엇 때문에 범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는 물어봐야 해요. 충분히 고칠 수 있는데도 이 사회는 고칠 기회를 안 줘요.”

그렇게 장미의 언어로 한 씨는 말한다.

▲종이장미를 접는 도중, 웃음이 터진 사람들

워크숍이 진행되었던 세 시간, 종이장미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일면식 없던 한 씨와 사람들 사이를 종이장미가 자연스레 이어준다. 한 씨와 형제복지원에 함께 있었다는 양세환 씨도 장미꿏을 접는 한 씨 손끝을 유심히 바라보며 따라 접는 것에 열중한다. 접는 방법이 꽤 어렵다. 어려워 헤매는 사람 곁에서 종선 씨는 하나하나 방법을 알려준다.

한 시간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각자 자신의 손으로 접은 종이장미 한 송이를 갖게 됐다. 이제 이름을 붙여준다. 양세환 씨의 장미꽃 이름은 ‘분홍꽃’이다.

“70년대에 김포 공장에서 일했어요. 하루는 일 못한다고 새엄마한테 머리 한 대 맞았는데, 그게 분홍색 피였어요. 새엄마가 그때부터 정말 너무 싫었어요. 색종이가 분홍색이어서 분홍 꽃이 아니라 어린 시절 내 머리에서 나온 피가 분홍색이라 분홍 꽃이에요.”

최성욱 씨 장미꽃 이름은 ‘이별연습’이다. 최 씨는 여전히 숙제처럼 남겨져 있는,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최 씨는 “한국 현대사의 잘못된 결과로 한국 사회에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부당했던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개인의 기억 안에서 비워버리는 만큼 새로운 희망의 기억으로 쌓는 것은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며 꽃 이름을 설명했다.

특수교사로 일한다고 밝힌 한 참가자는 최근 장애인시설에서 만난 아이를 떠올리며 눈물지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빌려 ‘원자’라는 이름을 장미에 붙여주었다.

“누군가는 왜 꼭 시설에서 살아야 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지. 앞에서 한종선 씨가 이 문제가 이제 시작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너무 실감 났어요. 문제시설이 없어진다고 해도 시설이 존재하는 사회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오늘까지 그 아이에게 계속 빠져 있었고 그 때문에 오늘 여기에도 오게 됐어요. 한종선 씨가 『살아남은 아이』에서 ‘전규찬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라는 글을 보고, 원자도 부모가 없고 다른 시설로 가게 될 수도 있는데, 그 생각하니 너무 겁나요.”

마지막으로 한종선 씨는 자신의 꽃에 ‘희망의 꽃 ― 흙이 되리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장미꽃이나 장미의 잎, 가시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들은 장미가 태어날 수 있는 기초적인 평범한 흙이 되고 싶어요. 평범한 사람, 그걸 원하니깐, 희망의 꽃 ― 흙이 되리라.

희망을 끝까지 간직하고 살아오니 좋은 기운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들 기운 마주하며 저의 지저분했던 색깔을 빼고 싶어요. 저희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원해요.”

장미꽃 소개가 끝난 후, 사람들은 서로의 꽃을 교환한다. 이 사람 손을 떠나 저 멀리 있는 이에게 꽃이 전해진다. 꽃에 담긴 이야기도 함께 흐른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다. 그 공간 안에 존재했던 열세 명의 삶이, 기억이, 그리고 역사의 단면이 촘촘히 얽힌다. 그게 또 하나의 거대한 꽃 닮아 아름답다.

△나의 역사, 타임캡슐 워크숍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

▲종이접기에 앞서 형제복지원과 자신이 살아온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종선 씨. 한 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실험다큐극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 작·연출 장지연 씨.

▲한종선 씨가 워크숍 참여자에게 종이장미 접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한종선 씨가 워크숍 참여자에게 종이장미 접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올해 서울변방연극제 공식초청작이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실험다큐극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 작·연출 장지연 씨가 워크숍 참여자들에게 종이장미 접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한종선 씨와 형제복지원에 함께 있었던 양세환 씨.

▲장미접기가 끝난 후, 자신의 장미꽃을 설명하는 사람들

▲특수교사로 일한다는 한 참가자는 최근 장애인시설에서 만난 아이를 떠올리며 눈물지었다.

▲장미꽃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 사람들이 서로의 꽃을 교환하고 있다.

▲이날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