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무식한 사람은 노동 습관이 몸에 배어 돈보다도 일을 훨씬 원한다. 교육받은 사람은 가난의 가장 큰 악폐의 하나인 강요된 게으름을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패디와 같이 노는 시간을 채울 방법이 없는 사람은 실직하면 줄에 매인 개처럼 불행하다"
조지오웰은 자신의 홈리스 생활 경험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적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질타는 엄격했던 것 같다. 대부분은 “저렇게 빈둥거리고만 있으니”하는 식이다. 그러나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왜 구하지 못했는지, 그가 처한 구직의 장벽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을 강요하기 이전 본능적으로 노동을 원한다. 따라서 조지오웰이 말하듯 노동공백상태는 견디기 힘든 것이며, 그 공백은 강요된 것이다.
작년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가 사업 종료로 현재 실업급여를 받는 형이 있다. 어차피 일에 참여해서 받는 수입이나 실업급여나 거의 비슷한데, 이 형은 지금 빨리 일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나는 어차피 나오는 돈 그동안 놀면서 차차 일을 구해보라고 하지만 잘 먹혀들지 않는다. 손에 쥐는 돈은 같더라도 일을 통한 급여가 아니라면 달갑지 않고, 뭔가 불편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복지병’ 운운하며 복지의 보장성 강화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이는 사람에 대한 무지나 의도된 왜곡에 불과하다.
서울시에서는 ‘노숙인 일자리사업’이라는 것을 진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쉼터나 거리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인데, 외부 업체에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1)일자리 갖기 사업과 노숙인 복지 기관에서 직접 인력을 운용하는 2)특별자활근로가 있다. 둘 다 1년 미만의 계약직이며, 특히 특별자활근로의 경우는 1개월 간격으로 계약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업이든 경쟁률이 치열하다.
홈리스 상태를 살고 있는 이들은 이러저러한 인생의 질곡을 통해 일반 노동 시장에서 경쟁력이 상실되거나 미약한 상태며, 그들에게는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일자리가 거의 유일한 선택이다. 그러나 서울시 일자리사업 인원은 올해 작년 대비 100명 감소한 400명으로, 특별자활근로 역시 동절기가 지남에 따라 기존 850명에서 600명으로 줄었다. 공원이나 지하철 역사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이는 이들은 이런 일자리에서조차 배제된, ‘강요된 게으름’을 버거워하는 이들인 것이다.
지난달까지 노숙인 특별자활근로에 참여했던 이제 서른 살 된 한 친구는 이번 달부터 일자리 사업에서 탈락했다. 서울시에서 일자리를 줄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인데,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일이 끝나고서도 자원봉사까지 하는 착실한 친구였다. 그 친구 일하는 데 놀러 갔다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세상은 쟤처럼 살아야 되는데”라며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밝고 우직하게 일했던 친구다. 아마도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렸을 것이다.
이 동생은 요즘 다른 복지기관에서 하는 특별자활근로를 신청하러 다니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유독 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OOO 기관에 일자리를 신청했는데 인문학 과정 들은 사람만 할 수 있대요. 그건 잘못된 거 아니에요?”라 한다. 서울시에는 ‘서울형 복지’로 선전해대는 ‘희망의 인문학’ 사업이라는 게 있다. 노숙인, 쪽방주민, 자활 사업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사업으로 올해 일자리 사업 예산은 줄이거나 반토막 친 거에 반해 유독 ‘희망의 인문학’ 예산은 증가했다. 그리고 인문학 과정에 참석한 이들에게는 일자리 사업 배정 우선권을 준다. 일자리의 총량은 줄여놓고, 더욱이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서울시 선전 사업의 미끼로 이용하는 파렴치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거리노숙을 하는 이들의 알코올 중독 문제, 정신 질환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문제는 ‘강요된 게으름’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종일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서울 시내를 하릴없이 걸어도, 낮잠을 자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 길고 긴 시간과의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유일한 전술은 자신을 현실에서 비켜 세우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독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 필요하며, 해결책 역시 임상 대책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게으름을 강요하지 않도록,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실효성 있게 가져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어찌하다보니 도시빈민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고, 현재 홈리스행동이란 단체에서 상근 집행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홈리스 상태는 빈곤이 빚어낸 모든 문제의 백화점인 듯 싶다. 홈리스 상태에 있는 분들과 함께 이러저러한 권리를 요구하며 짬짬이 남겨지는 얘기들을 그때그때 적어보려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