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피의 역사 위에 세워진 파라다이스 제주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가 제주도다. 7년 전, 시설에서 나와 서울에 온 뒤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진보정당 당원들로 구성된 ‘처음처럼’이라는 역사탐방 동아리를 알게 됐다. 한 해가 시작되면 ‘처음처럼’은 1박2일 일정으로 신년 산행을 하는데, 올해는 '처음처럼'이 10주년을 맞아 제주도로 신년 산행을 떠났다.
이번 산행은 역사탐방 동아리인 ‘처음처럼’의 성격에 맞게, 어두운 피의 역사인 제주도 4.3민중항쟁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식으로 3박4일의 스케줄이 짜여졌다. 장애를 가진 우리 부부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오가고, 3박4일간 여행한 과정만으로도 얘깃거리가 충분하겠지만 그 과정은 따로 쓰고, 이 글에서는 4.3민중항쟁 탐방 위주로 소개하려 한다.
제주도에 도착해 용두암을 둘러본 뒤 진보신당 제주도당을 방문하면서 4.3민중항쟁 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주도당에서 우리는 도당 위원장의 인사말과 함께 그분의 잔혹한 가족사를 들었다. 4.3이 일어날 당시 위원장의 삼촌은 제주도의 유지였다고 한다. 4.3이 일어나자 그는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이를 추격한 서북청년단 등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효수되는 아픔을 겪었단다.
다음날 첫 방문지는 4.3 항쟁 기념관이었다. 그곳에서 대략적인 4.3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일본의 패전으로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3.8선 이남 지역으로 미군이 들어왔는데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주도에 미군이 들어와 미군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좌익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연합한 인민위원회를 신뢰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미국과 이승만이 주도하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다.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 많은 도시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극렬히 반대했지만, 이미 주둔한 미군과 그들을 등에 업은 이승만 세력에 의해 저지당하고 만다. 하지만 제주도는 섬의 특성으로 인해 육지의 영향력을 덜 받았고,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자치 공동체가 섬을 다스리다시피 한다.
이승만 세력과 미군정은 일제시절 경찰이었던 사람들을 그대로 고용해 인민위원회와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탄압했다. 이런 와중에 1948년 3월, 3.1절을 맞아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외치는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시위에 수많은 제주도민이 참여한다. 당시 경찰은 말을 타고 군중을 통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 어린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짓밟히는 사고가 난다. 성난 군중이 아이를 밟은 경찰을 에워싸고 거세게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어머니 가슴에 안겨 젖을 먹던 아이와 어머니를 비롯한 6명의 민간인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때부터 도민들이 무장하기 시작했으며 150여명이 총기를 탈취해 군인과 경찰들을 습격했다. 이때부터 4.3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정부 수립을 구성할 제헌의회 선거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무산되었고 미군정과 이승만세력은 제주도에 연대병력의 군대를 급파해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다. 군인들은 이미 사람이길 포기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20만명이었는데 이중 1/4 이상의 제주도민들이 죽거나 다쳤단다. 이날 우리가 다닌 현장은 학살의 현장이었다. 제주도 곳곳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관광지가 바로 제주도민들이 무자비하게 죽어가며 피로 물들었던 장소였다.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해안가에서 500명에 가까운 제주도민이 학살됐다. 군인들은 근처 학교에 마을주민 전체를 가둬놓고,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하듯 학살했다고 한다.
이번 산행은 역사탐방 동아리인 ‘처음처럼’의 성격에 맞게, 어두운 피의 역사인 제주도 4.3민중항쟁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식으로 3박4일의 스케줄이 짜여졌다. 장애를 가진 우리 부부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오가고, 3박4일간 여행한 과정만으로도 얘깃거리가 충분하겠지만 그 과정은 따로 쓰고, 이 글에서는 4.3민중항쟁 탐방 위주로 소개하려 한다.
제주도에 도착해 용두암을 둘러본 뒤 진보신당 제주도당을 방문하면서 4.3민중항쟁 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주도당에서 우리는 도당 위원장의 인사말과 함께 그분의 잔혹한 가족사를 들었다. 4.3이 일어날 당시 위원장의 삼촌은 제주도의 유지였다고 한다. 4.3이 일어나자 그는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이를 추격한 서북청년단 등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효수되는 아픔을 겪었단다.
다음날 첫 방문지는 4.3 항쟁 기념관이었다. 그곳에서 대략적인 4.3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일본의 패전으로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3.8선 이남 지역으로 미군이 들어왔는데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주도에 미군이 들어와 미군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좌익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연합한 인민위원회를 신뢰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미국과 이승만이 주도하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다.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 많은 도시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극렬히 반대했지만, 이미 주둔한 미군과 그들을 등에 업은 이승만 세력에 의해 저지당하고 만다. 하지만 제주도는 섬의 특성으로 인해 육지의 영향력을 덜 받았고,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자치 공동체가 섬을 다스리다시피 한다.
이승만 세력과 미군정은 일제시절 경찰이었던 사람들을 그대로 고용해 인민위원회와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탄압했다. 이런 와중에 1948년 3월, 3.1절을 맞아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외치는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시위에 수많은 제주도민이 참여한다. 당시 경찰은 말을 타고 군중을 통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 어린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짓밟히는 사고가 난다. 성난 군중이 아이를 밟은 경찰을 에워싸고 거세게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어머니 가슴에 안겨 젖을 먹던 아이와 어머니를 비롯한 6명의 민간인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때부터 도민들이 무장하기 시작했으며 150여명이 총기를 탈취해 군인과 경찰들을 습격했다. 이때부터 4.3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정부 수립을 구성할 제헌의회 선거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무산되었고 미군정과 이승만세력은 제주도에 연대병력의 군대를 급파해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다. 군인들은 이미 사람이길 포기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20만명이었는데 이중 1/4 이상의 제주도민들이 죽거나 다쳤단다. 이날 우리가 다닌 현장은 학살의 현장이었다. 제주도 곳곳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관광지가 바로 제주도민들이 무자비하게 죽어가며 피로 물들었던 장소였다.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해안가에서 500명에 가까운 제주도민이 학살됐다. 군인들은 근처 학교에 마을주민 전체를 가둬놓고, 사람 죽이는 연습을 하듯 학살했다고 한다.

성산 일출봉 앞 '터진목'이라는 해안가. 군인이 마을주민 400여명을 학살한 장소 ⓒ박정혁

레드 아일랜드의 전설
2010년 2월 22일
박정혁
솜사탕 구름사이 보이는 푸른 섬
상큼한 바람이 맞이해 주는 섬
봄이 다가오기 전에 꽃피는 섬에서
쪽빛 푸른 바다 물결치는 그 섬에서
피 눈물의 비극이 한 서려 있다니...
남보다 일찍 돋아나는 푸른 새싹
60년 전 뼈골이 사무치는 그 아픔을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에 묻어둔 채
새록새록 피어나 활짝 웃음 진
그 웃음 속에 그늘을 어느 누가 알까나?
섬은 그렇게 피멍을 숨기고 숨죽여 왔습니다.
잔인한 눈빛의 총부리가 겨눴던 아기미소
어린 가슴 차갑게 관통하는 비정한 총탄 세례에
뻥 뚫린 가슴과 가슴마다 흘러내린 피가 흘러
먼 훗날 활짝 꽃, 피가 될 줄 그 누가 알까나.
찬란하리만큼 아름다운 성산의 일출
그 화려한 일출 뒤에 감추어진 절절한 아픔을
그 누가 알까나, 학살당한 붉은 피의 한 서림을
그 누가 알까나, 뼈 속 깊은 제주민의 속 눈물이란 것을
붉은 노을 피눈물 이뤄 바다를 적시고 있다는 것을
그 누가 알까나...
이 시는 제주도를 다녀온 뒤 그 느낌을 살려서 적은 것이다. 느낌이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3박4일간의 4.3민중항쟁의 역사를 돌아보며 사람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우리는 그 학살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주의 눈부시리만큼 맑고 청명한 색색의 바다와 하늘, 산천에 넋을 잃기도 했다. 너무나 포근하고 구름 한 점 없이 찬란한 햇살 아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4.3과 관련된 현장을 누볐다. 참 슬프고 아픈 제주의 역사 속에서 피어나는 봄이 오는 향기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원혼을 달래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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