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비행기 처음 타기

우리가 탔던 보잉 737 900 모습 ⓒ박정혁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김포공항에 가야 한다. 2월 19일 대한항공 제주발 3시 20분 비행기다. 집에서 김포공항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선 시각이 오전 10시. 전동휠체어로 아내와 경주하듯 골목을 빠져나와 6호선 고려대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김포공항에 가려면 5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청구역과 공덕역 중 한 곳을 정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역은 청구역, 그 역이 갈아타기 좋다고 해서다.
김포공항은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너무 일찍 와서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생각만큼 넓지는 않았다. 기념품 파는 면세점과 식당이 있었지만, 가격대를 보니 일반 상점이나 식당보다 훨씬 비쌌다. 아내는 피곤했던지 공항 한쪽 구석으로 가서 졸고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다. 비행기를 보고 싶었는데 대기실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함께 떠날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처음처럼' 모임 회장 윤희 씨가 와서 함께 점심으로 간단하게 김밥과 샌드위치를 나눠 먹었다. 출발 한 시간 전쯤 되자 항공사 직원 한명이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서 우리 부부의 탑승 수속을 미리 하겠느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번거롭지 않게 미리미리 탑승 수속을 했으면 하는 눈치다. 그러나 아직 우리 일행이 모두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모두 5명인데 그 중 한 명이 출발시각 30분 전에야 헐레벌떡 나타났다. 그도 역시 장애가 있는 친구지만 걸어다닐 수 있어서 버스를 타고 왔는데 길이 막혀서 늦었다고 한다.
급하게 탑승 수속을 마치자 건장한 항공사 직원이 폭이 아주 작은 수동휠체어를 밀고 나타났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이 수동휠체어로 바꿔 타야 한다. 보통의 수동휠체어와는 사뭇 다른 형태의 디자인이다. 바퀴 달린 책상처럼 휠체어 밑에 작은 바퀴 네 개가 달려 있어서 보통 휠체어보다 폭을 좁게 만들었어도 사람이 앉는 폭은 똑같았다. 좁은 비행기 통로로 이동하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타고 온 전동휠체어는 화물칸에 실렸다.
공항 3층으로 올라가니 컨테이너박스처럼 생긴 커다란 구조물이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의 출입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동굴과 같은 그곳을 통과해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우리가 앉을 좌석으로 이동했다. 항공사 직원 두 명이 내 몸의 허리와 무릎을 동시에 잡고 들어 올려 세 개의 좌석 중 가운데 좌석에 앉혔다. 아내는 내 왼편에 같은 방식으로 앉았고 활동보조를 해줄 승권 형님이 창이 있는 오른쪽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우리 바로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일행이 자리를 잡자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 좁은 통로라서 나란히 줄을 서서 들어오는데 행렬이 꽤 길었다. 승객들이 모두 좌석에 앉자, 기장은 비행기가 곧 출발하니 좌석의 안전띠를 매라는 안내방송을 했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륙을 위해 후진해서 활주로로 이동했다. 몇 분을 그렇게 이동하다가 비행기는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하더니 속도가 차츰 속도가 붙었다. 이륙을 하는지 몸이 뒤로 기울어진다. 비행기 창에 비친 집들과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귀가 먹먹해진다. 항공사 복장을 단정히 하고 노란 구명조끼를 목에 낀 여승무원 두 명이 앞, 뒤로 서더니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를 대비한 안전 교육 시범을 보여준다. TV나 영화 속에서 접했던 것을 직접 가까이서 보니 무척이나 재밌게 느껴졌다. 그다지 푹신한 좌석은 아니었지만, 제주도 도착까지는 견딜 만했다. 약 45분 정도 걸린단다.

비행기 창 너머로 우리가 딛고 살던 세상이 너무나 작게 보였다. 각종 건물과 산맥들 그리고 크고 작은 섬들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고향이 완도인 승권 형님은 비행기가 완도 부근을 지날 때쯤 창가로 보이는 지형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일일이 설명해 준다. 그 사이 여승무원이 밀차를 밀고 다니며 승객들에게 음료를 컵에 따라 주었고 우리도 주스와 커피를 마셨다.
육지를 지나자 바다 위에 빙산과 어름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바다 위를 떠다닌다는 게 이상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구름이었다. 비행기는 이미 구름 위로 날고 있었고 육지 쪽 상공에는 너무 맑은 날씨 탓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바다 위를 지날 때쯤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보인 것이다. 곧 있으면 제주도에 도착할 것이다.
약 45분이 지나자 비행기가 밑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기내 방송으로 제주도 도착을 알렸다. 서서히 비행기가 지상으로 내려앉았고 바퀴가 땅에 닿을 때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활주로를 가로지르다가 속도가 점점 떨어진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김포공항에서처럼 비행기는 제주공항 승강 구조물로 접근해 완전한 도킹을 시도했다. 비행기의 문이 열렸고 사람들이 차례로 내렸다.

비행기 안에서 나오는 모습 ⓒ박정혁


우리는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서 항공사 직원이 가져온 수동휠체어로 옮겨 타고 컨테이너 구조물을 지나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좀 있으니 또 다른 직원들이 우리의 전동휠체어를 가져왔고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의 애마로 갈아탔다. 제주도에 도착한 것이다. 앞선 글에서 적었듯이 ‘처음처럼’ 10주년 기념모임에서 약 20여 명의 사람과 3박4일 동안 제주도 4.3항쟁 역사 탐방을 하고 22일 낮 12시 20분 출발 비행기로 서울에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비행기 탑승과정에서 약간 다른 점이 있었는데, 제주도 도착 때와 달리 비행기와 공항이 연결된 통로 없이 버스를 타고 비행기가 멈춰서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버스는 모양이 저상버스처럼 차체가 지면에서 낮았지만, 리프트가 없어서 항공사 직원 여러 명이 전동휠체어를 들어서 태웠고 그 안에서 수동휠체어로 갈아타고 비행기 근처에서 내려서 휠체어를 든 채로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의 도착 과정도 비슷했지만 다른 점은 장애인 콜택시처럼 휠체어리프트가 달린 차량이 있어서 버스 대신 그 차를 이용해서 왔는데 비행기에서 내릴 때도 특별한 장치가 달린 차량으로 내렸다. 이 장치는 이동식으로 만든 리프트 차량이었는데 비행기 탑승구 높이에 맞춰 리프트가 작동하고 반대편 문으로 나가면 뒷문이 열리고 뒷문에 달린 리프트가 작동되어 내려주는 형태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경험을 한 것 같다.

* 다음 편은 제주도에서의 이동과정과 건물들의 휠체어 접근권 그리고 올레 길에 대해서 쓸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