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장애인협회, 뉴질랜드 재활시스템 연수 결과 발표
"사회복귀시스템 잘갖춘 뉴질랜드와 단순비교 무리" 지적도
![]() ▲한국척수장애인협회의 ‘일상의 삶으로’ 프로그램 발표회 모습. |
최근 제주도 앞바다에서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에 이용되던 일명 ‘제돌이’가 동물보호단체 등의 줄기찬 요구로 다시 야생의 고향으로 돌려보내진 것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런데 제돌이가 다시 야생의 삶으로 돌아가기까지에는 2년에 걸친 적응 훈련과 7억5천만 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여될 정도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은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렇듯 야생 동물조차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 긴 적응훈련이 필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된 척수장애인들도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이에 척수장애인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돕는 데 필요한 지원책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17일 늦은 2시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열렸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는 지난 5월 18일부터 26일까지 8박9일 일정으로 진행했던 뉴질랜드 척수장애인 재활시스템에 대한 연수 결과를 발표하고,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에 필요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국장. |
첫 번째 발표에 나선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국장은 한국의 척수장애인이 급성기 치료부터 재활훈련을 통해 사회복귀를 하기까지 평균 3곳의 병원을 전전하고, 평균 26개월의 입원기간을 거친다는 점을 지적하며 선진국과 비교해 절대적으로 높은 입원기간의 문제를 꼬집었다.
이 사무국장은 “입원 기간이 긴 것은 사회복귀를 위한 충분한 사회재활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병원에 오래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이 사무국장은 △사회적 인식의 부족 △외과적 치료 위주의 재활 시스템 △지역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절대적 부족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와 같은 이유로 척수장애인들이 ‘장애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환자’로 남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최근 장애의 정의에 대한 시대적 변화와 재활에 대한 시각 변화 등을 수용해 “장애인이 최적의 기능을 되찾아 최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장애의 발생 초기부터 의료적, 직업적, 교육적, 사회적 심리적 측면에서 서비스 대상자에게 개별화되고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당사자와 가족의 참여를 권장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어 이 사무국장은 지난 5월 연수를 통해 접한 뉴질랜드 척수장애인 사회복귀 시스템을 소개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척수손상이 발생한 시점, 즉 수술의 단계에서부터 재활의학과 의사가 조기 투입되어 협동진료를 하며, 척수병동에 입원하는 단계에서는 심리상담, 직업상담 등이 함께 이뤄진다.
특히 퇴원 한 달 전부터 ‘호스텔’(Hostel) 생활을 통해 일생생활을 체험하면서 사회복귀를 준비하도록 한다. 안전한 병원에서 위험관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 단계에서부터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면서 뉴질랜드 척수장애인의 직업복귀율은 53%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에 이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에서도 뉴질랜드의 호스텔 형태와 같은 척수센터를 설립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척수장애인협회 경상남도협회 현길환 회장이 구체적으로 경남지역에서 호스텔 시범사업 운영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뉴질랜드 버우드병원의 호스텔 프로그램과 전반적인 척수장애인 사회복귀 프로그램(Transitionz)의 운영을 견학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업의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현 회장이 제시한 척수장애인 사회복귀 지원체계를 보면, 척수손상 발생 직후 3차 의료기관에서 응급기 수술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입원 1개월 후부터 심리상담가와 동료상담가가 조기 투입된다.
이후 2차 의료기관인 재활병원으로 옮겨지고, 심리상담가는 당사자와 가족의 심리치료를, 동료상담가는 척수장애로 발생하는 제반문제 대처법 및 일생생활동작을 코치한다.
재활병원에서 퇴원할 때에는 '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에서 호스텔 입소를 유도해 4~6주간 지역사회 복귀를 위해 준비한다. 이후 지역사회에 복귀한 후에도 당사자 거주지역 동료상담가 등을 통한 사후관리를 하는 시스템을 갖춘다.

이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이광원 경영본부장은 이와 같은 호스텔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제언을 통해 뉴질랜드와 한국의 분명한 사회적 조건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경영본부장은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척수장애인의 복귀를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된 사회’”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를 시행해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를 위한 시스템을 더 잘 갖추고 있는 뉴질랜드와 사회보험 방식을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단순비교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NHS와 같은 조세방식으로 전환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볼 때, 우리나라에서 척수장애인의 사회복귀는 ‘준비되지 않는 사회’임에도 사회복귀를 ‘감행’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영본부장은 이를 미국의 자립생활운동 창시자인 에드 로버츠(Ed Roberts)가 말한 ‘위험에 대한 감수’라고 말하며, ‘준비되지 않는 사회’인 한국의 상황에서는 이 ‘위험에 대한 감수’가 더욱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실제로 우리나라의 중증 뇌병변장애인들이 자립생활운동의 철학에 기반해 지역사회로 나오고 있는 것에서 그 중요성이 확인되는 바이다.
발표에 이어진 참가자들의 토론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국립재활원 사회복귀지원과 김동화 과장은 뉴질랜드 제도는 우리나라 의료법상 들여오기 힘든 측면이 있으며, 재원마련 방안 및 현실화 방안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회의 좌장을 맡은 RI KOREA 이일영 의장은 “현재 보험 체계하에서는 장기 입원이 만성화되어 있는데, 이걸 깨야 사회복귀를 위한 재원이 나온다”라고 지적하며, 이제 한 개인을 훈련시켜서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 내보내는 것에서,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이날 발표회는 약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두 시간여가량 진행됐다.

![]() ▲행사를 마친 뒤 토론자들의 기념사진 모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