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공감, '활동보조, 무엇부터 어디까지?' 토론회 열어
장애인과 활보간의 ‘친밀성’과 ‘긴장감’의 딜레마 논의
![]() ▲'활동보조, 무엇부터 어디까지?' 토론회가 16일 늦은 2시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
중증장애인들의 힘겨운 투쟁을 통해 쟁취한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되면서 장애인들의 삶은 실제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가족이나 시설에서 보내야 했던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립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활동지원제도의 도입으로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도출되기 시작했다. 장애인 당사자의 내밀한 일상의 영역으로 비장애인 활동보조인이라는 ‘타인’이 침투해 들어올 때, 장애인도 활동보조인도 모두 이전까지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낯선 감정의 영역을 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양쪽 모두 적지 않은 감정노동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상처를 받게 되고, 때로는 상대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렇게 활동보조 업무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토론회가 16일 늦은 2시 이룸센터에서 '활동보조, 무엇부터 어디까지?'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이 주최했다.
활동보조서비스 = 이용자의 ‘자기결정권’ +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그게 다가 아니야!”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은 우선 활동보조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너무나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범위는 보통 ‘적절하게, 알아서, 인권적으로’라는 식으로 표현되는데, 이를 상황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장애인 당사자나 활동보조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유형, 상황, 욕구별로 활동보조 지침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완벽한 방법일 수는 없다고 이 사무국장은 지적한다.
![]()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 |
이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일상이 지원을 받기 위한 사례별로 구분되고, 욕구가 재단되어 매뉴얼로 획일화되는 것도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라면서 "이는 오히려 장애인 옆에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지원/조력자가 생겨나고 다시 장애인의 삶을 수동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금까지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한 논의가 주로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과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이 사무국장은 이 두 논점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문제들이 활동보조 현장에 존재한다며, 이런 문제들을 좀 더 섬세하게 드러내고 자기 언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자기결정권’과 ‘노동권’으로 포괄되지 않는 문제들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사무국장은 ‘보조를 필요로 하는 몸’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을 제안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손상이나 질병과 연결되는 ‘보조’를 받는 삶에 대해 유독 낯설어하고 두려워한다”라면서 이 사무국장은 오히려 보조를 받는 삶에 대해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의존, 보호, 돌봄은 병들고 손상된 사람들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보조를 받는 삶은 부끄럽거나 불행한 것이라는 통념을 넘어 ‘보조받는 경험’과 ‘보조하는 노동’ 모두에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조를 받는 사람’, 즉 장애인 중에서 어떤 사람은 활동보조인 위에 군림하거나 명령하는 것을 주체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최대한 갈등을 드러내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즉 장애인 이용자는 활동보조인에게 단순히 권리를 ‘행사’한다기보다 타인의 지원을 받기 위한 협상, 타협, 포기, 주장을 반복하는 피곤한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보조하는 사람’, 즉 활동보조인은 자신의 업무를 통해 장애인의 삶에 개입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들어가면서 '장애의 특성에 따른 전문성, 감정을 살피는 기술, 의사소통 역량, 관계와 갈등에 대한 현명한 대처' 등 다양한 업무에 대한 숙달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업무는 보통 ‘봉사정신’이라는 말로 표현되면서 활동보조인의 노동을 억압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이에 이 사무국장은 ‘봉사정신’이라는 표현 말고 활동보조인의 노동을 가치 있게 해석할 수 있는 다른 언어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친밀성’과 ‘긴장감’ 사이에서
장시간의 일상을 함께 해야 하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문제는 결국 감정적인 ‘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활동보조인에게 과도하게 다양한 업무 부담을 지우거나, 반대로 ‘돌보는 사람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힘입어 활동보조인이 이용자 삶의 통제권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간에 어떻게 ‘친밀성’과 ‘긴장감’을 모두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이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고민해 볼 지점들로 △익숙한 관계 속에서의 긴장감 유지라는 문제(월 300시간 한 명의 활동보조인과 생활하면서 공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사생활 노출 문제(양자의 관계에서 장애인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더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상황)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성비 불균형에 따른 여성 활동보조인의 성적 수치심 문제 △언제나 공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장애인의 몸에 대한 긴장감 부재(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동성인 경우) 등을 제시했다.
이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서비스를 고민하면서 장애인 자기결정권과 선택, 활동보조인의 노동권만이 아니라 의존성과 주체성, 돌봄과 보조에 대한 사유, 몸을 둘러싼 긴장, 젠더화된 돌봄 노동, 감정노동과 갈등, 손상과 질병 등 다양한 관점들로 확대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현수 활동가와 활동보조인 정경미 씨. |
이용자․활동보조인, “거리 두기 해야” … 현금 통한 ‘직접 지급제’ 도입?
이러한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토론자들의 생각도 다양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 코디네이터 업무를 맡고 있는 조현수 활동가는 “모든 갈등 상황들을 코디네이터가 일일이 개입하고 조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며 바람직한가”라고 의문을 던졌다.
조 활동가는 “관계에 대한 책임감은 타자와 필연적으로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하는 개인과 그 개인이 구성하는 사회의 필수 요소”라고 지적하며, 갈등상황에서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일차적인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조 활동가는 코디네이터는 갈등 상황의 해결에서 “사실관계에 입각한 문제 접근과 해결”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개입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어 조 활동가는 “한 명의 활동보조인이 이용자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면서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회적 관계로부터 차단된 삶을 살아온 탈시설 장애인들에게는 과도한 친밀감 형성이 오히려 장애인 이용자의 의존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활동보조 노동에 대한 수필집 ‘활보 활보’를 쓰기도 한 활동보조인 정경미 씨도 비슷한 맥락의 견해를 밝혔다.
정 씨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의욕이 앞서 과잉된 감정노동과 노력을 했던 것이 오히려 장애인 이용자의 뜻과는 맞지 않는 방향일 때가 많았고, 스스로도 지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씨는 활동보조 업무를 “이용자가 말을 하고 자신은 손발로 대답하는 것”이라고 정리하면서, 욕심을 버리고 이용자의 요구에 충실한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금호 소장은 “활동보조서비스가 자본주의 계약관계에 놓여 있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최소한의 수준에서라도 합의지점을 만드는 노력을 하자”라고 제안했다.
노 소장은 또한 이러한 갈등 중재와 합의를 만드는 일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중개기관의 활동보조 코디네이터의 업무 부담이 줄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노 소장은 “일본의 경우 활동보조 코디네이터 한 명당 장애인 이용자를 10명~15명 관리하지만, 우리나라는 한 명당 50명~ 60명을 관리한다”라면서 열악한 근무 조건을 꼬집었다.
![]()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금호 소장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서비스 제공방식을 ‘직접 지급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인 서비스 급여를 장애인이 직접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은 중개기관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장애인 이용자는 무시된다”라면서 "현금을 통한 ‘직접 지급제’ 방식으로 이용자 스스로 서비스에 대한 결정권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벌어진 참가자들과의 토론에서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영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인과 이용자가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에 의문을 던졌다.
박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인 정경미 씨가 “욕심을 버리고 이용자가 요구하는 것에만 충실하자”라는 의견에 대해 “활동보조라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삶에 침투되면서 각자가 성장하는 기회를 가지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일종의 포기를 한 것은 아닌가”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현금을 통한 ‘직접 지급제’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되었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보조인 전덕규 씨는 “현재 활동보조서비스의 문제는 시장화에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킬 ‘직접 지급제’는 오히려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같이 죽이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전 씨는 활동보조 과정에서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제도 자체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면서, “활동보조인의 임금 조건이 개선되어야 제공 인력이 많아지고, 장애인 선택권도 향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진희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인의 임금조건 개선이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제도의 문제로만 보면 세부적인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라면서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과 그 행위에 대한 관점이 전환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40여 명의 활동가가 참가했으며, 약 3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 ▲토론회를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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