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협회, 규정엔 ‘해임’ 현실에선 ‘직무정지’“스스로 그만두거나 해임될 때까지 싸울 것"

▲정점순 씨(65세)가 광명시청 앞에서 4년 전 일어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성추행, 광명시 농아인협회 광명시지부장 김OO, 개 같은 짓을 도저히 용서 못 한다!”

4년 전 일이었다. 정점순 씨(당시 61세, 여)는 또래 여성 대여섯 명과 함께 경기도 농아인협회 광명시지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때 정 씨 뒤에서 김아무개 지부장(당시 49세, 남)이 다가와 정 씨의 가슴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순간 놀란 정 씨는 “왜 남의 가슴을 만지느냐”라며 분개했다. 그러나 김 지부장은 “나이 많은 여자 가슴 만질 수도 있지 않으냐”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고 정 씨는 “나이 많은 여자라고 그러는 건가, 미친 거 아니냐”라며 재차 강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김 지부장은 끝끝내 사과 한마디 없이 “늙은 여자 가슴이라 괜찮다”라는 입장이었다. 함께 자리했던 여성들도 김 지부장의 ‘장난’이라며 문제 삼지 않고 웃어넘겼다.

정 씨는 수치스러웠고 창피하고 불쾌했다. 그러나 주변인들이 아무렇지 않다는 상황에서 협회 회원이 ‘감히’ 지부장을 향해 강하게 문제제기할 수는 없었다. 당시 정 씨는 이러한 행동이 ‘성추행’이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그 사건 후 김 지부장은 그 일을 금방 잊은 듯 지냈다. 그러나 정 씨는 그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늘 괴로웠고 결국 농아인협회에서 탈퇴했다.

2010년 4월의 일이었다. 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 씨는 여전히 괜찮지 않다. 

▲지난 7일, 정점순 씨가 광명시청 앞에서 4년 전 일어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성희롱 시, 규정엔 ‘해임’ 그러나 현실에선 고작 ‘직무정지’

협회는 탈퇴했지만 농아인 정 씨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결국 협회뿐이었다. 종종 협회에 갔다가 ‘그 사람’ 얼굴을 볼 때면 마음은 늘 힘들었고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김 지부장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공감하는 이들을 만났다. 같은 광명시지부 회원인 이들은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로 진상조사를 요청했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16일 상벌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상벌심의위원회에서는 김 지부장에 대해 △지부장으로서의 위신과 품위 손상 △해당 회원과의 갈등 및 민원수습 미흡 등을 이유로 지부장 직무정지 3개월(2013.12.16~2014.3.14)과 광명시 수화통역센터장 정직 3개월 처분(인사규정에 따라 급여의 1/3을 감함)을 받았다. 김 지부장은 한국농아인협회 부설 광명시 수화통역센터 센터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농아인협회 복무규정 28조 직장 내 성희롱의 예방(2010. 6. 9 신설)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으로 물의를 일으킨 임·직원에 대하여는 해임, 해고 등의 징계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성희롱 피해자와 같은 장소에 근무하지 않도록 인사이동을 병행하여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정 씨는 이 규정에 근거해 중앙회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정 씨는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호소하며 “3개월 직무정지는 너무 가볍다. 직무정지가 아닌 해임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상벌위원회가 열린 날짜가 피해당사자인 정 씨에게 알린 날짜와 달라 당사자인 정 씨는 상벌위원회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현재 정 씨는 지난해 12월 24일 중앙회 임시이사회가 열렸던 여의도 이룸센터를 시작으로 광명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인 시위는 10일까지 이른 11시부터 늦은 2시까지 3시간가량 계속된다.

▲정점순 씨는 그동안의 고통을 호소하며 “3개월 직무정지는 너무 가볍다. 직무정지가 아닌 김 지부장의 해임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 '당한 사람이 불쾌하다면 성추행' 최근 알게 돼

정 씨는 최근에서야 ‘하는 사람은 장난이더라도 당한 사람이 기분이 불쾌하다면 성추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4년 전 일이지만 최근에서야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아 ‘수화’를 언어로 삼는 농아인들은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교육과 정보에서 배제된다. 수화를 하나의 독립적 언어가 아닌 농아인들만의 언어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농아인들은 관계에서마저도 소외된다. 즉,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농아인 대부분은 각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는 농아인협회를 통해 관계를 맺게 된다.

연회비 2만 원을 내고 농아인협회에 가입한 농아인들은 협회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여행을 가고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또한 협회가 운영하는 수화통역센터를 통해 병원, 은행 등 수화통역이 필요할 때 수화통역사를 대동해 업무를 볼 수 있다.

수화통역센터는 회원이 아니더라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나 협회를 탈퇴했던 정 씨는 그동안 수화통역센터가 아닌 아들, 딸 등 가족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김 지부장이 수화통역센터장으로 있어 이용하기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씨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김 지부장을 계속 보는 것이었다. 정 씨는 “‘그 말하는 구화인’이 싫다. 구화인은 믿을 수 없다.”라고 강한 거부감을 표했다.

“우리(농아인)는 수화를 통해서만 생각과 말을 전할 수 있다. 듣지도 (음성언어로) 말하지도 못하는 농아인은 중간에 수화통역사가 개입되어야만 청인들과 소통할 수 있다. 수화통역사를 통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 자신은 아니기에 내 속에 있는 말을 100%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구화인인 김 지부장은 자신의 말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성추행 피해자의 말보다 구화인(김 지부장)의 말만 듣고 그의 말을 더 믿지 않겠나.”

정 씨는 올해 1월, 다시 협회에 가입했다. 광명시지부장 및 센터장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함이다. 정 씨는 “김 지부장을 보는 것이 괴롭지만 회원이 아니고선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정 씨는 현재 협회 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우호적이지는 않다고 전했다. 협회 중심으로 구성된 폐쇄적 농사회에서 한 지역의 지부장과 센터장까지 맡고 있는 김 지부장은 막강한 권력이 있어 이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김 지부장은 3월 14일까지 직무정지 상태로 출근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 씨는 “김 지부장 스스로 그만두거나 중앙에서 해임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명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정점순 씨. 지나가는 시민이 정 씨의 몸피켓에 적힌 내용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광명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정점순 씨.
▲한국농아인협회 복무규정 제28조 직장 내 성희롱의 예방(2010. 6. 9 신설)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으로 물의를 일으킨 임·직원에 대하여는 해임, 해고 등의 징계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성희롱 피해자와 같은 장소에 근무하지 않도록 인사이동을 병행하여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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