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고 장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발달장애인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 팍팍하다. 장애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면 하나는 지체(시, 청각 포함)장애로 두고, 다른 하나는 발달(지적, 자폐)장애로 볼 수 있겠다. 몸이 불편한 사람과 정신이 불편한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장애는 그저 장애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사회가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이렇게 둘로 나눠서 보면 하나는 눈에 보이는 장애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장애라 하겠다.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간혹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하나 있다. 멀끔하게 잘 생긴 젊은 친구가 지하철 칸을 건너다니며 혼자 중얼거리면서 머리를 문에 찧기도 하며 부산을 떨면, 사람들은 눈을 흘기며 술을 먹은 것 같다고 여기거나 입꼬리가 처지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불쾌하다는 표시를 한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다른 사람의 눈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반복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아는 사람 눈에는 자폐성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발달장애를 보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그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왜 저러는가?'

발달장애는 눈에 보이는 장애와 달리 유심히, 세심하게 관찰을 해야 알 수가 있고, 특히 장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보호를 하든, 변호를 하든 할 수 있다. 학령기를 지나 성인기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더 따갑다. 몸은 무럭무럭 성장하지만 정신연령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보니 변별력이나 판단력이 부족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다 보니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실수들은 사건으로 확대되어 난처한 상황들을 만들어 내곤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성장하면서 반대로 쇠락하는 부분은 부모들의 기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 들어 늙어가는 부모들은 자식을 감당하지 못해 두 배, 세배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고통은 가족들에게 그대로 옮겨지고,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 선택은 내다 버리는 것과 어디 시설에 가두는 것이다.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은 결국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삶이 서서히 파괴되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같은 장애를 가졌지만 지체장애와 발달장애는 삶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을 모르고, 장애 자체를 모르고, 장애인당사자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꿈꾸는지 모르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려 하지 않는다.

이는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가지고 판단을 하려 한다. 사지(四肢)를 움직인다는 것과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하니 보는 관점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장애인의 삶은 몸이 불편하나, 정신이 불편하나 매일반이다. 무엇하나 나은 것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장애현실이다. 그런데도 발달장애인의 삶이 더 메말라 가는 것은 장애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언부언(重言復言)하게 되는데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왜 발달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수동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생 2살에서 7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 그 사람들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장애인자립생활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개되는 논의 구조는 과연 타당한 것인지, 서비스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허다한 이유에 대해서,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복지지원에서 발달장애인은 어느 선부터가 중증에 해당하는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방법을 찾아보고 답을 만들어가야 할 일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답을 구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교육과 훈련이란 것을 받으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령기와 성인기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지원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을 위한 법을 만들면 이 문제들이 해소되는 것일까.

발달장애인들에게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은 꾸준하다.

발달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치료와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주장은 꾸준하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하자는 주장은 꾸준하다.

하지만 쇠귀에 경을 읽는 격이다. 발달장애를 알지 못하고, 발달장애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을지, 치료와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 줄 수 있을지, 성인이 되어 지역사회에서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온통 물음표만 가득한 세상에서 누가 이들에게 희망의 줄을 내려 줄 것인가. 결국 부모의 손으로 만들어 가야 하고, 부모의 손으로 바꿔가야 한다.

‘요구하고 주장하라. 그러면 쟁취할 것이다.’

이 구호가 너무도 무겁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밤이다. 서글픔도 그만큼 무겁게 어깨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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