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중증장애인이 써내려간 시와 글
민들레야학, ‘민들레 입을 떼고’ 세 번째 문집 발간

휠체어에는 여자친구를 태울 수 없어
자전거에 그녀를 태우고 싶어 - 나도 자전거를 타고 싶어, 신경수
일곱 명의 장애인은 매주 화요일 저녁,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시간, 그들은 말했으며 들었고 썼으며 읽었다.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이도 있었다. 그는 헤드 포인터로 키보드를 눌러 문자로 ‘말’했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장애 때문에 ‘글 쓰는 행위’ 자체가 힘들었다. 쓰기 위해 무언가를 읽어야 했지만 깊이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쓰고 읽었으며, 말하며 들었고, 또다시 쓰고 읽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세 번째 해를 넘겼다. 그리고 세 번째 문집이 나왔다.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에서 지난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진행한 글쓰기 수업에서 움튼 문집이다.
![]() ▲인천 민들레야학 문집 '민들레 입을 떼고' |
이번 문집 맨 앞에는 그들이 모이고 배우는 민들레야학이라는 공간에 대해 공동창작한 ‘민들레야학 사용 설명서’가 적혀 있다.
‘세상을 알게 되고 첫사랑을 만나며 휠체어를 타고도 못 나간다’라고 이 공간이 어떠한 곳인지 공동의 입을 통해 알린다.
이어 함께 읽고 평한 시와 각자 쓴 시들이 엮여 있으며, 마지막으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주제로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글쓴이들은 자기 삶을 응시하는 것이 생소한 듯 천천히 톺아본 기억의 조각을 조심스레 웅얼거리듯 내뱉는다. 그러나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는 때론 민낯의 그것이며, 에둘러 말하기가 익숙지 않은 이들은 일상어로 말과 글을 풀어낸다.
그래서 민들레야학에서 3년 동안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이경진 교사는 “이것이 글쓰기 수업인가, 인터뷰 수업인가. 이것을 과연 글쓰기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자기 안에 담아둔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해 교사는 질문하고 학생은 답한다. 수업을 진행하는 또 다른 교사가 이를 실시간으로 적어내지만, 이를 받아내는 교사는 자꾸 이 언어가 말하는 이의 것인지 교사의 것인지 물음이 든다.
이경진 교사는 “타인을 통한 글쓰기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대한 글쓰기, 즉 교사 개입 없이 학생 스스로 글을 써내는 것이 목표”라면서 글쓰기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노력을 요청한다.
그 시절에 아주 멍청이가 되고 싶었어
내 안에 장롱이 하나 두고 그 안에
엄마의 십자가를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내 동생들의 명품 핸드백을
무르팍만 꼬매고 꼬맨 동생이 물려준 청바지를
다 낡았지만 밑창만 멀쩡한 신발을
오랫동안 내 삶처럼 꺼내보지 않은 노란 은행잎을
스무 살 무렵 처음 탔던
낡아빠진 수동 휠체어를 넣고 싶었어
- 내 안의 장롱, 전정순
그러나 비장애인의 글쓰기와 장애인 글쓰기의 다른 점 또한 분명히 인식한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철저히 혼자만의, 사색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글쓰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일곱 명 중 두 명은 언어장애가 너무 심해 모든 언어 소통을 문자로 하는 사람이고 네 명은 신체장애가 심해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어려우며, 나머지 한 명은 시각장애인이다. 비장애인이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해서 쓰는 것과 이들이 기역, 니은을 써내려가는 것은 애초에 시작점이 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쓰기란 어떠한 것’이라는 정의는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은 계속 물음으로 머물러 있고, 이들과 함께 글 쓰는 시간은 어쩌면 그 물음에 대한 방법과 이해를 구하는 시간이었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그러했듯 글쓰기라는 행위 또한 비장애인 중심으로 정의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필요했다. 이경진 교사는 “국어수업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말함과 동시에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라면서 “사라지는 말들을 붙잡고 싶었고 이를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 문학작품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낯설고 어렵지만 올해도 꾸준히 글을 써내려 갈 것이다.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더 자발적으로 자기 안의 언어를 길어나갈 수 있도록.
그래서 첫해에도, 두 번째 해에도 문집을 읽는 이들에게 이경진 교사는 당부한다.
“아주 느리게 쓴 글입니다. 우리의 속도에 맞춰 한 자 한 문장 한 문단 천천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중요합니다.”
이번 문집은 비매품으로 민들레야학 정기후원자는 무료로 받아볼 수 있으며, 비후원자는 배송료 부담 시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다.
- 문의 :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 (032-551-92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