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철학자가 만난 소수자의 삶과 사건
고병권의 책,

‘삶’이라는 단어는 짧지만 아주 강렬한 느낌을 전달한다. 세 개의 자음과 한 개의 모음이 어떤 중심에 이끌려 한 글자 안에 응축된 모양새다. 또 이 ‘삶’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닮았다. 마치 ‘사람’이라는 두 글자가 어떠한 변화를 겪은 뒤, ‘삶’이라는 한 글자로 단단하게 압축된 느낌이 든다.

 

국어사전에서 ‘삶’이란 “태어나서 죽기에 이르는 동안 사는 일”이라고 풀이한다. 이 ‘사는 일’은 달리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사건’들과 마주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은 기쁨과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자라고 늙어가며, 한편으로는 성숙해지기도 한다. 즉, 사람은 사건의 연쇄를 겪으며 단단한 삶을 만들어간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범한 해석일 수 있으나, 철학자 고병권이 지난 1월 출간한 책 <“살아가겠다”>는 이렇게 삶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독특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도 ‘고병권이 만난 삶, 사건, 사람’이다.
그러나 삶의 형성이 언제나 순탄하고 매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불행히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중단을 요구받는 어떠한 순간에 처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수십 년간 자신의 피와 땀이 어린 공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한평생 일구며 살아오던 농토를 갑자기 들이닥친 포클레인에 의해 파괴당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동네에서 함께 살기를 거부당해 시설로 보내지고, 또 어떤 이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낙인을 얻어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채 살기도 한다.
이러한 ‘추방’의 경험은 이들을 ‘소수자’의 자리로 내몬다. 이 자리는 ‘포기’를 강요당하는 자리이다. 장애인이 시설로 보내진다는 것은 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지역사회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고(79쪽), 다른 삶의 출구 없이 ‘쉼터’에 내맡겨진 탈성매매 여성들은 그저 무기력한 신체로 남아버린다(252쪽).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향 땅의 허리가 송전탑에 의해 끊어지는 것을 보다 못해 저항하는 밀양의 노인들에게는 ‘보상해 줄 테니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226쪽).
 
이 책의 표지는 이처럼 포기를 강요당한 이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듯하다. 모두 동그란 얼굴에, 표정이 없고, 말하는 입이 없다. 삶의 중단을 요구받은 17개의 신체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이들은 웅성대고 있다. 말하는 입을 빼앗겼지만, 각자 뭔가 말하고자 꿈틀대고 있다.
 
철학자 고병권이 길 위에 섰다. 그리고 체제에 의해 삶의 중단을 요구받은, 말하는 입을 빼앗긴 소수자들을 만났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밀양의 노인들, 탈성매매 여성, 장애인,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그 만남의 길 위에서 그는 오늘날 ‘배움’과 ‘앎’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묻는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대답한다. ‘포기에 맞서는 것’이라고.
 
‘배움’이란, ‘앎’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포기에 맞서는 것’이라는, 배움과 앎에 대한 이 낯선 정의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 저자는 우리 시대의 앎이 이제는 삶과 관련을 맺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지식과 정보는 단지 상품이 되어 계급적으로 독점화되었고, 교육은 단지 이 상품을 축적하는 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앎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고병권은 배움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장과 만나게 된다. 바로 노들장애인야학이다. 그는 노들야학 20주년 행사에서, 노들야학이 지내온 20년의 의미에 대해 말해 줄 것을 요청받지만, “노들야학에도 장애인운동에도 뭔가를 증언할 만한 경험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20주년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에 ‘노들20주년 역사팀’에서 정리한 사료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그는 “노들야학이 지내온 20년의 밤, 그중 겨우 며칠 밤을 훑어보았을 뿐인데도 가슴이 요동을 쳤다”라고 고백한다.
 
1990년대 초반, ‘밤의 학교’에 모인 젊은 교사들과 나이 든 학생들은 술을 마시기 전에 이미 어떤 ‘감정의 폭동’을 겪었던 것 같다. (…) “학생분들의 삶을 마주”하고는 “가슴에 뭔가가 자꾸 고여 술을 들이켜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젊은 교사. 술이 그것을 퍼내 주지 않았다면 그는 금세 차오른 감정들 때문에 숨이 막혀 죽었을지도 모른다. (86쪽)
 
▲노들장애인야학 20주년 명사특강에서 강의하고 있는 고병권 씨.

 

그는 왜 지식을 전하는 학교에서, 그것도 딱딱하기 그지없는 국정교과서를 읽고 검정고시를 준비했던 학교에서 이런 감정의 폭동이 일어난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 이곳에서 일어난 배움은 대체 어떤 것이었기에 이들은 깊은 감정의 수렁에 빠져야만 했던 것일까?

 

그가 노들야학과 관계를 맺으면서 알게 된 ‘장애’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장애란 어떤 본래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장애는 학교, 직장, 사랑, 결혼, 운동 등등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경험하는 어떤 불가능과 관계된다. 어떤 활동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순간, ‘할 수 없음’, 즉 ‘장애’를 경험한다. 다시 말해 장애를 가졌기에 이런저런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장애가 이런 불가능성들의 체험이며, 그 순간 나 자신에게 일어나는 ‘무능’에 대한 인정, 그리고 결국에는 어떤 ‘포기’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 장애라는 범주에 완전히 갇혀버리는 것은 ‘무능’을 자기에게 돌리고 그런 자기를 ‘포기’할 때이다. (95쪽)
 
즉, ‘장애’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의 체험 앞에서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는 이 책 곳곳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바보’가 되는 것은 ‘지능’이 모자랄 때가 아니라 ‘의지’가 꺾일 때임을 강조한다.
 
노들야학의 젊은 교사들은 장애성인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도 전에, 이들의 꺾여버린 의지를 마주해야만 했다.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아무리 다양한 지식으로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것은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어떤 각성, 즉 ‘배움 이전의 배움’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은 교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만 소풍이나 모꼬지에서 일어날 수도 있던 일이다.
 
노들야학의 나이 든 장애학생들이 “왠지 모르게 든든한 사람들”의 존재 덕분에, “나, 나가서 살고 싶어. 한번 겪어보고 싶어.”(97쪽)라는 감정의 샘솟음을 겪을 때, ‘배움 이전의 배움’은 이미 일어난 것이다. 또한 이 순간에 생겨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용기’이며, 삶의 각성이다.
 
김주영과 전태일
 
그는 이런 용기와 각성의 모습을, 지난 2012년 활동보조인이 떠난 뒤 홀로 집에 있다가 화재로 숨진 故 김주영 씨의 삶에서 발견한다. 그녀는 활동보조서비스가 부족해 억울하게 죽어간 장애인이기 이전에, 장애인에게 포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맞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밤 침대에 누워서 꼼짝없이 죽음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아야 했던 사람은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미디어 활동가이자 방송인이었다. 그리고 화가였으며 장애해방을 염원하는 사회운동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소중한 연인이었다. (…) 그녀가 무력했던 것은 ‘죽음’에서였지 ‘삶’에서가 아니었다.“ (197쪽)
 
고병권이 기억하고자 하는 김주영은 우리 사회가 부여한 ‘장애인’의 자리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는 이 사회가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무능’과 ‘포기’라는 이름으로 규정지으려 할 때, 이에 맞섰던 사람이다.
 
한편, 이것은 전태일이 우리에게 보여준 용기를 떠올리게 한다. 전태일은 ‘노동자는 낮에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밤에 자지 않고 읽고 쓰고 동료들에게 편지를 썼다. 근로기준법을 읽었고,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썼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모범업체에 대한 구상을 담은 사업계획을 쓰기도 했다.
고병권은 그런 전태일을 “살아 있을 때 이미 ‘해방된’ 사람이었다”라고 말한다. 이는 해방을 안락함과 혼동한다면 절대 성립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만, 전태일이 이룬 것은 말하자면 ‘해방 이전의 해방’인 것이다. ‘배움 이전의 배움’이 삶을 일깨우고 자유를 갈망하도록 각성시키듯이, 해방 또한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은 ‘배움’과 다른 무엇이 아닌 것이다.
 
길에서 만난 희망,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포기에 맞선다는 것, 말은 쉽지만 포기를 강요받는 상황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장애인이 시설로 보내질 때, 식당 입구의 턱 앞에서 돌아서야 할 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집에만 있어야 할 때…. 
 
그래서 포기에 맞설 때 필요한 것으로 저자는 ‘오만’이 아니라 ‘용기’를 말했을 것이다. 수많은 고통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삶의 지혜로 다져진 ‘용기’ 말이다. 철학자 고병권은 그 용기를 배우기 위해 철학 고전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길 위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 속에서 그는 어떤 깨달음을 만난 듯했다. 희망은 덧없다는 것. 고통은 피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고통을 의미 없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는 절망한 이들의 말이 아니라 결코 절망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이라는 것.
 
이 때문에 저자가 서문의 말미에서 한 이 말이, 매일매일 포기를 강요당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 그리고 수많은 소수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꽤 묵직하게 들린다.
 
희망을 내일에 거느니 오늘에 걸고, 희망을 거기에 거느니 여기에 걸겠다. 희망은 지금 사막을 뚜벅뚜벅 걷는 내 다리에 있다. 이 글을 쓰던 날, 나는 대한문 농성촌의 한 의자에 누군가 적어놓은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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