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지막 날의 그 설레던 마음을 다시 꺼내본다
3월 입학식을 며칠 앞두고, 내가 후원하는 한 단체의 총회에 참석해서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사회자는 ‘00할 때 가장 행복한 000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라는 주문을 했다. 월급날이 가장 행복하다는 이도 있었고, 이 단체에 지갑을 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열혈 회원도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이렇게 소개했다.
“개학 전날이 가장 행복한 000입니다.”
실제로 개학을 앞둔 그 며칠이 나는 가장 행복하다. 방학과는 또 다르게 새로 만날 누군가를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마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내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들뜨고 신이 났다.

하지만 개학 전날이 가장 행복한 까닭은 막상 개학을 하고 나면 그런 즐거움이나 설렘은 조금씩 멀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는 우스갯소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 무릎을 치며 후회 아닌 후회를 한 적이 있다. 밤낮이 바뀐 아이를 달래고 어르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첫째 아이를 낳고 ‘다시는 아이 낳아서 키우겠다는 생각은 못하겠다’고 분명히 생각했었는데, 어느 틈에 그때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둘째를 낳고 키우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입학식 다음 날부터 나는 몇 해 전 1학년을 담임했을 때의 기억을 그제야 떠올리며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때 기억은 까맣게 잊고 1학년 담임이 되었다고 그렇게 좋아했다니!
일단 1학년들은 잘 운다. 집에서 엄마하고만 지내다가 온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그리워서 울고, 유치원에 다니다 온 아이들은 갑자기 늘어난 40분 단위의 공부 시간이며 낯선 사람들의 손길 때문에 운다. 게다가 말을 잘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보니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표현할 길은 오로지 울음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상황이 심각한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우리 반 학생은 겨우 4명이지만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학생은 없다. 우선은 보호자들의 도움을 받다가 점차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 자체 인원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1학년 꼬마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우리 엄마만 안 오나 싶어 고개를 기웃거리는 아이도 있고, 엄마가 저만치 보이는데 담임이 밥을 주는 게 억울하고 서러워 울어대는 아이도 있다.
내가 전우치의 변신술이라도 쓸 줄 안다면 우리 반 네 명의 아이들을 하나씩 다 품에 안고 토닥이며 조금씩 조금씩 학교와 친해지게 하고 싶지만 그건 말 그대로 허황된 넋두리일 뿐이다.
어머님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학교 수업 시간부터 자잘한 일정까지 일일이 챙겨주지 않으면 놓치기가 쉽다. 또 지금 당장 부족한 것들이 눈에 띄다 보니 요구도 많아진다. 보조 인력은 왜 1명밖에 없나요, 자원봉사자는 언제부터 배치되나요, 우리 아이에게 맞는 의자는 없는 건가요?
보호자들에게는 당연한 의문이지만, 사실 일개 학급을 담임하는 교사로서는 답변이 늘 궁색하다. 사실은 개학 전날까지도 어떻게든 유능한 보조 인력을 차지해보려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지곤 한다. 언제부턴가 대학가에도 스펙 쌓는 바람이 불고, 치솟는 등록금 때문에 알바를 하느라 바빠진 탓인지 자원활동가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우리도 답답해서 속이 타는 문제지만 그렇다고 같이 투덜거릴 수도 없는 처지인지라 그저 어쩔 수 없다거나, 좀 기다리시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된다.
게다가 올해는 개정된 특수학교 교육과정이 3,4학년까지 적용되는 해인데 새로 바뀌는 교육과정에 따른 교사용 지도서와 학생용 교과서도 3월이 되어서야 받아보았다. 일반학교였다면 2월부터 새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연수들이 마련되었겠지만 우리는 지도서 한 권 받아보는 것이 전부다.
하긴 새 교육과정에 따른 연수가 있었다고 해도 3월에 부딪히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교직경력 21년 차라고 가끔 어깨에 힘을 주기도 하지만,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이 다르다 보니 교직경력은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무리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학부모와 상담을 충분히 하고 아이를 잘 관찰해 보아도, 전 학년도 담임교사에게 건네받은 자료들을 보고 또 봐도 직접 만나서 수업을 해 보면 아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랄 3월이지만, 3월에는 아이들을 잠시 제쳐놓고서라도 제출할 서류들이 가장 많다. 법에 정한 대로 2주 이내에 개별화교육지원팀 구성을 해야 하고, 30일 이내에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계획을 수립하려면 이런저런 공식적인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틈틈이 부모 면담을 해야 하며, 여러 교사를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아야 한다. 또 교무업무시스템도 잘 굴러가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또 개학 전날 받은 지도서를 참고해 교과지도계획도 세워야 한다. 또 각 부서별로 2014학년도에 계획된 업무를 추진하기 시작하는 시기도 바로 이 시기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사용 컴퓨터에는 ‘띵똥’ 하는 메시지가 울려댄다. 여기저기 협의해야 할 일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참, 오늘도 화장실을 아직 안 갔네.’하는 때도 있을 정도다.
그래도 지나가겠지, 특수교사들끼리 종종 하는 말이다. 쏟아지는 일에 정신 못 차리고 발을 동동 굴러대고, 수업 시간마다 칭얼대는 아이들 울음소리에 넋이 나가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학교는 좀 차분해지고, 일상을 되찾아간다.
아이들도 낯선 사람과, 낯선 공간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교사들도 새로 만난 아이들과 친해져 가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렇게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1학년의 최대 장점이다.
정신없고 바쁜 3월 한복판에서, 2월 마지막 날의 그 설레던 마음을 다시 꺼내본다. 3월을 살아낸 아이들과 내가 얼마나 더 자라있을지 기대하며, 또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폭풍 같은 내일을 기대해야겠다.
특수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고, 별처럼 빛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가끔 동화도 씁니다. 교실에서는 좀 웃기고, 덜렁거리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동화는 좀 슬퍼집니다. 사실 장애 학생들을 둘러싼 현실을 생각하면 제가 쓴 동화는 슬픈 것도 아니지요. 좀 더 재미있는 동화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동화들이 ‘헛소리’가 아닌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