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사운드아티스트 선 킴의 ‘페이스타임 시그니쳐’
또 다른 감각으로 변주되는 소리 아닌 소리들

영화 ‘도가니’가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이후 농아인들이 자신들은 정작 영화 ‘도가니’를 볼 수 없다며 ‘농아인의 영화관람권 보장’을 주장하던 때였다.

 

그날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던 이는 비장애인이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소리가 사라지자 그 목소리를 받아 적던 이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주변 사람들은 기계 고장인가 싶어 허둥거렸다. 그 순간에도 그의 입술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한참이 흘렀고 그의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기계 고장이 아닙니다. 이게 농아인들이 겪는 현실입니다.”

 

▲‘페이스타임 시그니쳐’ 중 크리스틴 선 킴 ⓒ페스티벌봄

 

크리스틴 선 킴은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이다. 그리고 사운드아티스트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그녀가 소리를 ‘만든다.’

 

재미교포 3세 크리스트 선 킴이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해 올린 공연 ‘페이스타임 시그니쳐(FACE TIME SIGNATURE)’가 지난달 28일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진행됐다.

 

뒤편 스크린에는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말들이 큼지막하게 떴다. 사람들은 그녀가 주문하는 대로 피아노 줄을 손에 든 채 공간의 끝과 끝에 선다. 줄은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퍼지고 확장된다. 줄은 팽팽하여 반대편에 선 이의 손아귀의 힘이 느껴진다.

 

팽팽한 줄 중간에 변환기가 달린다. 밖으로 통하는 유리문, 벽 이곳저곳에도 변환기가 달린다. 변환기는 그곳에 스며든 소리를 읽어내고 뱉어내고 알려낸다. 줄은 그 소리를 웅얼거리듯 먹는다. 줄이 소화한 소리는 사람의 살갗에 떨림으로 전해진다. 떨림, 진동, 파동. 소리는 느낌으로 전환된다.

 

“줄을 만져서 느껴보세요.”

 

스크린에 자막이, 아니 그녀의 목소리가 뜬다.

 

번역되지 않던 고체의 언어가 진동으로 공간을 잠식한다. 그렇게 ‘소리’는 또 다른 감각으로 변주되어 채워진다. 소리 아닌 소리들이 피아노 줄을 타고 손끝에 달하는 순간이다.

 

청각장애인 사운드아티스트가 예술이라는 도구로 자신의 ‘소리’를 찾아 나간다. 그리고 그 세계에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 통로는 미세하게, 연하지만 팽팽한, 얇은 줄로 이어져 있다.

 

이번 공연은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 참가작 중 하나로 진행됐다.

 

▲크리스틴 선 킴의 ‘페이스타임 시그니쳐’ ⓒ페스티벌봄

▲크리스틴 선 킴의 ‘페이스타임 시그니쳐’ ⓒ페스티벌봄

▲크리스틴 선 킴의 ‘페이스타임 시그니쳐’ ⓒ페스티벌봄
▲크리스틴 선 킴의 ‘페이스타임 시그니쳐’ ⓒ페스티벌봄
▲크리스틴 선 킴의 ‘페이스타임 시그니쳐’ ⓒ페스티벌봄
▲크리스틴 선 킴의 ‘페이스타임 시그니쳐’ ⓒ페스티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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