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의 서재]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정창권 저)
전통사회에서 함께 살던 장애인, 사회에서 소외되는 과정 드러나

 비마이너가 [마이너의 서재] 연재를 시작합니다. [마이너의 서재]는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삶을 다룬 다양한 책을 주류적 시선과 다른 방식의 조명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담아내고자합니다. _ 편집자 주

“옛날의 제왕은 모두 장님으로 악사를 삼아서 현송(거문고를 타면서 시를 읊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 난계 박연(1378~1458), 세종 13년 임금에게 상소하는 내용 중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박연의 호소를 오늘날 되돌아보면 반은 맞고 반은 들어맞지 않는다. 수많은 인권선언과 각국 헌법에서는 인간은 쓸모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는 그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인, 홈리스, 노동자, 그 외 여러 소수자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난계 박연의 호소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전통사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로 변화했고 급기야 오늘날에는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는 사회가 되었다.

고려대학교 정창권 초빙교수의 책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에는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었던 장애인이 점차 사회에서 소외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전통사회 장애인, 지역사회에 어우러져 살다

가족을 중심으로 생활했던 전통사회에서 장애인복지는 일차적으로 가족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국가와 사회가 장애인복지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며, 장애인을 부양하는 가족을 지원하고 장애인을 고려한 정책을 펼친 사례를 제시했다.

전통사회 정부는 장애인을 자립할 수 있는 이와 자립할 수 없는 자로 나누어 복지정책을 펼쳤다. 자립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는 직업 생활을 하며 스스로 살 수 있도록 유도했는데, 대표적 사례로는 시각장애인에게 점복, 독경, 악사 등의 일을 하도록 한 것이다. 자립이 어려운 장애인은 정부에서 부양정책을 시행해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겨울 10월, 서울과 지방의 해당 관청들에 명령하여 환과고독(홀아비·과부, 어리고 부모 없는 사람,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과 늙고 병들고 가난하여 제힘으로 살 수 없는 자를 널리 탐문하여 구제하도록 하였다” - 고구려 고국천왕 16년, ‘삼국사기’

이런 복지정책 속에서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양반층 장애인은 교육을 받아 정계에 진출하거나 학문을 했고 천민층 장애인은 농·상·공 등 생업을 하거나 구걸(지금과 달리 전통사회의 구걸은 엄연한 직업으로 여겨졌다)을 하는 등 비장애인과 큰 차이 없는 일을 하며 지냈다.

세종 때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던 허조(1369~1439)는 등이 굽은 사람이었고 중종 때 우의정을 지냈던 권균(1464~1526)은 간질 장애가 있었다. 왼쪽 눈을 실명한 기정진(1798~1879)과 등이 굽은 조성기(1637~1689)는 조선 시대 유명한 대학자들이었다.

또한 일본도보다 더 좋은 칼을 만들었던 대장장이 탄재는 청각장애인이었고, 지적장애가 있었던 공공이라는 이는 놋그릇을 닦아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옹고집전’에 말 못하는 여종이 등장하는 점, ‘심청가’에서 시각장애인이 구걸로 생계를 꾸려가는 점 등 고전소설, 가요에도 천민 장애인이 생업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정부에서 특별히 이들을 위한 직업을 마련해 수많은 시각장애인이 점복(미래의 길흉을 알기 위해 점을 치는 일), 독경(개인의 수복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위), 악사로 살았다. 정부는 시각장애인에게 중인 이상의 대우를 했으며 벼슬을 제수하기도 했다.

일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가족의 부양을 받았으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버려지진 않았던 듯하다. ‘열녀전’에 앉은뱅이 남편을 부양한 부인의 이야기가 실리거나, 이야기집 ‘용재총화’에 심한 발달장애가 있는 형과 우애 있게 지낸 동생의 미담이 수록되는 등 장애와 상관없이 부모·형제자매·부부 등 가족관계 속에서 한 구성원으로 대접받은 듯하다.

이렇듯 전통사회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았고 설령 일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더라도 지역사회에서 보호받으며 살았다. 특히 전통사회에서 장애인의 장애 정도를 고려해 역할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천편일률적인 등급으로 장애를 분류하고 기계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것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

다만 전통사회의 시대적 한계로 장애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다고 보았기에 사회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은 장애인을 불쌍하게 보고 측은지심을 발휘하는 정도에 그쳤다. 또한 장애가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따른 것이 아니었지만, 특정 장애인에게는 차별과 낙인이 가해졌다. 예컨대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를 함께 지닌 사람, 생식기가 불완전한 사람의 경우 여성과 남성으로 구성된 음양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멸시의 대상이 되곤 했다.

또한 장애여성의 경우 남성과 같이 생업에 종사하기 어려웠던 시대 상황과 더불어 아이를 낳고 기르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혼에서 배제되는 등 이중적 차별을 겪기도 했다.

▲조선 말 풍속 화가인 김준근의 '판수 독경하는 모양'. 덴마크 국립박물관 소장.

#시대의 흐름 속에 소외되는 장애인

그러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장애인은 점차 사회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장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유교적 인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점차 배제됐다.

인조 때 유지방이라는 이는 지적장애를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배척당했으며, 유학자 송시열(1607~1689)은 1673년 민세익이라는 사람이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친상 상주 노릇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소를 올린 바 있다.

이후 문학에서도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한다. 봉산탈춤에서는 양반의 위선과 교양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양반이 구순구개열(입술이나 입천장이 갈리는 장애로, 비하하는 표현으로 언청이가 있다) 등 장애가 있음을 보여준다. 심청전에서는 심청의 아버지인 심학규가 시각장애인이라 심청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인이 사회에서 배제된 근본적인 이유는 이 사회가 조선 후기 이래로 근대 개화기, 일제강점기, 현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급격하게 개편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장애인을 ‘몸이 불편한 사람’ 정도로 보았던 듯하나 근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장애인을 평가하는 척도는 노동생산성이 되었다. 예컨대 미국의 사회보장법에서는 장애인을 ‘장기적인 신체적 손상으로 인해 실질적인 소득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로 규정하며 스웨덴에서는 ‘신체적·정신적 결손, 사회적 장애(알코올·약물 중독, 언어장애 등)로 인하여 취업이나 직장유지가 곤란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저자는 근현대 사회에서 장애인이 ‘노동하지 못하는 몸’,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규정되면서 점차 사회에서 밀려나게 된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장애인은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였다. 경제력과 효율성, 상품성만을 최고로 여기는 사회에서, 그들은 서서히 경쟁력을 잃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한 것이다.” - 정창권,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2쪽

갑오개혁이 일어난 1905년 점복을 하는 시각장애인과 망건(상투를 틀 때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받치던 머리띠)을 팔던 지체장애인이 급격한 사회 변화로 실업자가 된 사연이 대한매일신보 연재소설 ‘소경과 앉은뱅이의 문답’에 드러나 있으며 1935년 발표된 계용묵 소설 ‘백치 아다다’에는 언어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확실(아다다)이라는 여성이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과정이 묘사돼 있다.

현대에 접어들어서는 급격한 사회변화가 일어나면서 장애인은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저자는 소아마비와 구루병 증세가 있던 당편이라는 여성의 생애를 그린 이문열 소설 ‘아가’(2000)를 통해 장애인이 사회에서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했다.

“그사이 세상은 또 변해 정육점 식당 주방에서 당편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불 때는 일은 연탄과 석유곤로가 대신하고 있었고, 나중에는 가스까지 거들었다. 음식 재료를 다듬거나 장만하는 일도 한꺼번에 대량의 수요가 몰리는 상황이 되면 당편이의 아둔하고 굼뜬 손놀림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 이문열, ‘아가-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

결국 소설 ‘아가’에서 길바닥으로 쫓겨난 당편도 결국 주변 사람들에 의해 시설로 보내지게 된다. ‘아둔하고 굼뜬 손’의 장애인은 사회에서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에 정부가 주도하는 시설 위주 장애인정책에 따라 유폐되듯 시설로 보내지거나 집에 갇혀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더욱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장애인, 홈리스 등을 수용한 시설인 형제복지원에서 수많은 사람이 강제노역, 인권침해를 겪으며 죽어간 사건, 2000년대 원주귀래사랑의집에서 ‘장애인을 가족처럼 사랑한다’라는 명목으로 방임과 학대를 자행한 사건 등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은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의 폭력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근현대사회에서 수많은 장애인들이 시설로 보내졌다. 사진은 동아일보 1987년 2월 2일자 11면 기사. ⓒ동아일보

#‘쓸모’와 상관없이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장애인이 차별받고 배제됐던 시기는 역사 전반이 아닌 근현대 사회에 국한되는 일로 장애인이 버려졌던 것이 역사 속에서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애인은 전통사회에서 나름의 쓸모를 인정받아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어울려 살았지만, 근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과 생산에 효율적으로 이바지하지 못하는 장애인은 버려졌다.

그렇기에 저자는 전통사회에서 장애 문제 해법을 찾아 오늘날 장애인이 노동을 통해 쓸모를 인정받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할 것과 비장애인의 인식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전통시대처럼 장애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창출하여 그들이 자립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장애 문제도 해결책에 있어서는 여성 문제와 서로 유사하다고 본다. 장애인의 경제적 능력이 수반되어야 그 사회적 지위가 향상될 수 있고,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어야 궁극적으로 비장애인의 인식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정치인들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난계 박연의 지적을 다시 한 번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 정창권,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8쪽

그러나 장애인들이 쓸모를 인정받도록 하자는 저자의 호소는 역사를 되짚어볼 때 위험한 측면도 있다. 주류사회 혹은 권력자가 판단하는 ‘쓸모’에 따라 전통사회에서는 장애인이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았고 근현대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장애인의 ‘쓸모’를 주류사회나 권력자가 판단하는 한 장애인은 언제든 버려질 수 있으며 설령 사회에 편입되더라도 주류사회의 시혜를 받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호소에서 한 발짝 나아가 장애인의 ‘쓸모’를 재단하는 주류사회의 관점을 비판하고 ‘쓸모’와 상관없이도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방법들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