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땅의 소녀와'
불행과 빈곤의 그림자로 뒤덮인 검은 땅, 탄광촌에 사는 한 가족이 있다. 광부인 아버지 해곤과 지적장애를 가진 동구, 그리고 엄마의 부재로 가족 내에서 그 역할을 짊어진 여덟 살 막내 영림. 그러나 이들의 현실은 나날이 악화되어 갈 뿐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내리막길을 향해 굴러간다. 그리고 이 불행의 연쇄는 가족의 해체한 이후에야 멈춰 서지만, 단지 그것은 그 비극의 눈덩이를 개개인의 몫으로 분산시키는 것일 뿐, 결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 소녀가 꿈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장면이 바뀌면 한 명의 광부가 구급차에 실려 가고 남겨진 이들은 다시 갱도로 돌아가 작업을 이어간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마치 죽은 영혼처럼 움직이고 있는 검은 땅의 사람들, 그들의 고된 작업을 한동안 묵묵히 응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가족에서 출발하지만, 이들의 삶이 사회로부터 끝없이 내몰리기 시작하면서 서로 지탱하던 가족이 서로에 의해 서서히 붕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탄광에서 일하던 아버지 해곤이 진폐증으로 해고되면서 가족의 불행은 점차 가속화된다. 회사로부터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 새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만, 광부로 살아온 그에게 다른 일자리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해곤은 철거 보상금으로 트럭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트럭과 새로 산 암탉 한 마리를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해곤의 검은 두 눈에는 내일에 대한 한 줄기 빛이 어른거린다.
‘깊은 산 속엔 뻐꾸기가, 높은 하늘엔 종달새가, 부뚜막 위엔 고양이가, 마루 밑에는 강아지....’ 설경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해곤과 영림의 노랫소리. 그러나 낮고 우울한 배경 음악은 불행의 전조를 암시하듯 이들의 노래 위로 서서히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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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줌 싸서 추웠겠다. 앞으론 빨리 말해야 돼."
영림은 동구의 곁에 함께 하면서 이름 쓰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같이 놀고 보살피며 지낸다. 장사를 시작한 해곤은 어느 날 동구를 트럭에 태우고 배달을 나간다. 그가 잠깐 물건을 가게로 옮기는 사이 차 안에 홀로 남겨진 동구의 만지작거림으로 트럭은 언덕 밑으로 굴러간다. 설상가상으로 임대한 트럭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해곤은 차도 잃고 보상금까지 물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불행의 원인이 되고만 동구는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 술만 마시며 보내는 해곤과 그로 말미암아 집안에 감도는 암울한 분위기에 불안을 느끼고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며 가족을 점점 더 수렁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는 거듭되는 불행이 인물과 현실에 밀착하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겉도는 부분들이 존재하면서, 이 비극을 극대화하려는 결말 또한 여덟 살 소녀에 의해 마무리되는 과정에 무리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인물과 비극이 한 데 뭉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눈덩이처럼 부푼 비극만이 관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는 곳곳에서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주며 사실적인 생의 현장 속에서 삶의 비극을 포착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거대한 비극을 만들어냈음에도 이 비극이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쉽게도 과도한 절망에 짓눌린 인물의 비명이 소녀 홀로 남겨진 하얀 눈밭 위에 먼저 닿음으로써 범작에 머물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