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침해 피해자 쉼터 마련을 위한 토론회 열려
피해자들 ‘갈 곳 없어’ 결국 피해 현장으로 되돌아가기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후, 피해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다수 언론은 사건만을 보도할 뿐 이들이 염전을 떠나 어디로 향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라는 공분이 피해자들 삶에 대한 것이라면 사건 조사 및 가해자 처벌만큼 피해자들에 대한 조치도 중요하다. 피해자들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폭력에 대한 치유, 그리고 지역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았던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임시거주시설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곳 중 하나가 쉼터이다. 하지만 현재 전국에 있는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은 24개, 가정폭력 쉼터는 68개이며 이중 장애인 쉼터는 6개뿐이다. 턱없이 부족하다.
수요는 많으나 공급이 적으니 폭력 상황에서 구출된 피해자들 스스로 입소를 포기하고 폭력이 일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거나 까다로운 입소 요건으로 입소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염전 노예 사건에도 해당한다.
염전 노예 사건 후, 피해자들 일부는 ‘갈 곳이 없어’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쉼터에 들어갔다. ‘모두’를 위한 지원체계는 없었다. 운에 맡길 뿐이다. 또한 현재 쉼터에 머무른다 해도 쉼터 이후의 선택지가 없다. 쉼터 퇴소 후,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 ‘있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장애인 쉼터
장애인 인권침해 피해자 쉼터(아래 장애인쉼터)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15일 늦은 2시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장애인쉼터에 대한 문제와 함께 ‘있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시설 입소 요건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다. 그리고 쉼터 내에서 요구되는 지원체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 안은자 팀장은 “장애인 쉼터는 전국에 6개뿐이다. 인권침해를 당하는 장애인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비장애인보호시설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미흡하고 시설종사자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장애인은 들어가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장애인쉼터라고 해도 모든 장애인이 입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안 팀장은 “혼자 신변처리를 할 수 없거나 자녀를 동반하는 경우 입소는 불가능하다”라며 “결국 폭력을 당하는 장애여성들은 자녀와 떨어지기를 원치 않아 쉼터 입소를 거부하고 지속적인 폭력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사례① 뇌병변장애인 ㄱ씨는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을 견딜 수 없어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ㄱ씨는 경찰에 의해 가해자와 분리조치 됐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장애인 쉼터는 스스로 신변처리가 불가능한 장애인은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며 거절했다. 해당 시에 바로 입소 가능한 시설을 알아봐 줄 것을 요청했으나 해당 시엔 장애인 주거시설이 없었다. 결국 ㄱ씨는 본인이 다니던 요양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사례② 정신장애여성 ㄴ씨는 16년 동안 함께 살았던 부부에게 장애수당 및 기초생활수급비를 빼앗기고 폭력을 당했다. 가해자와 분리조치 되었으나 ㄴ씨는 갈 곳이 없었다. ㄴ씨는 어릴 적 시설에서 받은 폭력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장애인시설 입소는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ㄴ씨는 동생 집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사례③ 지적장애남성 ㄷ씨는 아버지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어머니의 폭력 때문에 집을 나와 노숙생활을 하던 중 간질 때문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 집에 들어가길 거부하고 있으나 남성이 입소 가능한 쉼터가 없어 거주지가 마련될 때까지 머물 공간이 없다. |
![]() ▲장애인쉼터 마련을 위한 토론회 중 이에 대해 논의하는 토론자들 |
# 쉼터 퇴소 후 갈 곳 없어 다시 폭력의 현장으로
이러한 피해자들이 모여드는 장애인쉼터엔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자활을 위한 심리적, 의료적, 법률적 지원 및 직업교육 외에도 주택, 세금, 아동의 양육 등 다양한 사회지원체계도 요청된다.
오랜 시간 성적 또는 가정 폭력 및 인권침해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안정된 환경 속에서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한 자존감 회복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장애유형 및 욕구, 피해 상황에 따라 기간별(일시 및 중장기)로 입소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여성만 입소할 수 있는 쉼터를 비롯해 장애남성, 장애아동, 자녀 동반 가족쉼터 등 유형별 쉼터도 마련되어야 한다.
장애인쉼터 내 종사자들의 전문성도 중요하다. ‘장애인’ 쉼터라면 장애에 대한 이해 및 지식과 함께 장애감수성을 가진 이들이 운영해야 하며 장애인의 욕구에 맞는 개별화된 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쉼터 퇴소 후에는 또다시 갈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장애인시설 혹은 폭력이 일어난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생긴다.
안은자 팀장은 “장애인은 ‘자립’보다 ‘시설’에 머무는 것이 좋다는 잘못된 편견이 있다”라며 “퇴소 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관할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한 자립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즉, 퇴소 후의 자립지원 및 이에 대한 사례관리를 통해 이들의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장애인의 경우, 인권침해 당했을 때 바로 쉼터에 입소 가능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가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인복지법, 아동복지법 등에 근거해 쉼터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쉼터에 대한 견제의 눈도 필요하다. 안 팀장은 “현재 쉼터 정보는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고 있다. 지자체와 관련 기관들이 어떤 모니터링을 하는지 밝혀진 자료가 없다.”라며 “피해자 보호 목적도 중요하나 쉼터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의 피해 및 장애 유형에 따른 적절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 또한 “쉼터의 ‘시설화’를 막기 위해 쉼터에 머무르는 기간을 정해야 한다. 쉼터에서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선택할 기회와 조건을 주지 않는 한 쉼터는 시설화될 수밖에 없다.”라며 “장애인 쉼터의 관리 부처로서는 복지부가 나서야 한다”라며 정부 및 관련 기관의 노력을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