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연구원, 이분법 넘어서는 성 담론 강조
“다양한 위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성(性)에 대한 권리 모색해야”

#장애인은 무성적 존재?

 

몇 년 전 한 유명정치인이 복지시설을 방문해 뇌성마비와 지적장애가 있는 서른 살의 남성에게 ‘목욕봉사’를 하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다. 아마 비장애인 성인 남성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 그 장애인은 그 순간 ‘남성이 아닌 자’로 여겨진 것이다.

 

장애여성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장애여성은 출산과 양육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져 (장애남성과는 다소 다른 맥락이지만) 역시나 ‘무성적 존재’로 취급받는다. 설령 그의 장애가 유전이 아니라도 장애아를 낳을 것이라는 편견이 만연되어 있어 결혼과 출산, 양육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곤 한다.

 

#장애남성은 ‘가해자’, 장애여성은 ‘피해자’?

 

그러나 다른 맥락 속에서 장애인은 ‘성적 과잉’의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장애남성의 경우, 특히 지적장애 남성들은 성욕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쉽게 성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된다. 지체장애 남성의 경우도 평소에 성욕을 표출할 기회가 잘 없으니, 기회가 생기면 성욕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반면 장애여성의 경우, 특히 지적장애 여성들은 자기결정 능력이 부족하고 약하기 때문에 쉽게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장애남성과는 반대 맥락의) ‘성적 과잉’의 존재로 취급받는다.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이호선 연구원

 

27일 늦은 3시 이룸센터에서 장애학포럼이 주최한 “‘장애’ 새롭게 퍼즐 맞추기” 첫 번째 시간 ‘장애와 섹슈얼리티’ 강의에서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이호선 연구원은 장애인을 둘러싼 성(性) 담론을 위와 같이 정리했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무성적 존재’ 또는 ‘성적 과잉의 존재’라는 이분법은 모두 장애인이 성적 소외를 겪는 양상이라고 지적한다. 즉, 이 둘 다 장애인의 성을 고정되어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장애인 개인의 경험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원은 “(장애인의 성에 대해) 무성적 존재인가, 성적 과잉의 존재인가 하는 것은 이분화된 것이 아니라 연속 선상에 있는 것이며, 그 위에서 장애인들이 역동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오로지 ‘무성적인 존재’로써 평생 단일한 경험만을 하는 장애인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던지며 “어떤 장애여성은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여직원이 남아서 자리를 지켜라’라고 할 때는 여성으로 취급되다가, 회사에 생리대 후원이 들어와 여직원에게 지급될 때는 여성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처럼 한 장애인의 생애경험에서 성적 경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기존 장애인의 성에 관한 연구 주제가 지나치게 장애인을 ‘성적으로 부족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해, 비장애인의 성적 기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문제점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장애인계에서도 한때 누드사진이나 패션모델, 성적활동보조서비스 도입 논의 등의 활동으로 ‘무성적 존재’ 담론을 깨려고 해왔다. 그러나 논의가 여기에 머물러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장애인을 성적 측면에서 장애남성, 장애여성이라는 각각 동일한 정체성 집단으로 획일화했다.”

 

이 연구원은 “이는 장애를 ‘고정적이고 변화될 수 없는 몸’으로 보는 경향 때문”이라면서 “장애인들 중에는 자신의 성을 주어진 장소, 관계, 문화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협상하는 행위성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장애인이 기존 담론 속의 성적 주체로 포함되기 위한 노력, 예를 들면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한 이슈를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은 낄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과연 기존의 결혼제도에 들어가는 것만이 좋은 것인지, 상대적으로 장애여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측면은 어떻게 할 것인지, 장애남성의 양육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무성적 존재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는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가해자 또는 피해자’라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성적 주체로 인식되는 장애인의 성 담론 때문에, 상대적으로 장애인의 자유로운 성행위를 보장하는 논의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성 담론은 ‘보호’ 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 연구원은 기존 질서에서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활동을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왜 동성애 장애인이 등장하지 않는가? 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왜 자위만으로 욕구를 채우지 않는가”라고 물으며, 주류화된 성 담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 장애인의 성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장애인이) 성(性)에서 배제되어 있는 위치에서 비장애인만큼의 위치로 이동하자는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다양한 위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성(性)에 대한 권리를 모색해 봐야 할 것”이라고 제기했다.

 

한편, 장애학포럼은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에 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며, 11월 20일부터 22일까지는 ‘장애와 치료’라는 주제로 국제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강의를 경청하는 청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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